동성애는, 아니,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는 난감하다. 비유하자면 사회가 금지한 마약과 같다. 경험한 사람은 그것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고, 알고 있지만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말이 거짓말처럼 들릴까 두려워 발언을 삼가거나 에둘러 표현한다. 물론 존재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들도 다수다. 그래서 이송희일 감독은 꽤나 오랫동안 외로웠다. 1999년 방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커밍아웃하고 첫 번째 단편 <언제나 일요일 같이>(1998)가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에서 상영된 지 8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게이감독’의 대표주자다. 그런데 그의 첫 번째 장편 <후회하지 않아>는 조금 다를 것 같다. 11월16일 개봉을 앞두고 미리 관객을 만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200석 규모의 상영관에서 3회에 걸쳐 상영되는 동안 평범한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고, 열렬하게 애정을 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난감한 소재를 둘러싼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좋은 의미의 ‘문제작’ <후회하지 않아>를 설명할 수 있는 텍스트 안팎의 몇 가지 질문과 이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통해 영화를 살펴본다. 더 많은 말을 하기 위해서이고, 다양한 이야기가 더욱 무성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 다른 질문과 대답이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후회하지 않아>는 본격 퀴어멜로영화?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는 고아가 재벌 2세를 만난다. 둘은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계급 차이는 그 사이를 꽤나 오랫동안 가로막는다. 고아는 공장에서 나와 몸을 팔고, 재벌 2세는 애타게 그를 찾아다닌다. 우여곡절 끝에 진심을 확인한 두 사람은 잠시의 행복을 맛보지만 우유부단한 부잣집 도련님은 결국 집안의 반대 앞에서 사랑을 외면한다. 버림받은 이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복수를 꿈꾼다.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얻고, 그 사랑을 배신하고, 그리고 어떤 깨달음이 찾아오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 숱한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와 노래의 줄거리를 짐짓 진지하게 반복하는 <후회하지 않아>는 그러나, 흔한 영화가 아니다. 그 사랑이 두 남녀가 아닌 두 남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두 남녀가 아닌,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
<후회하지 않아>는 ‘본격 퀴어멜로’를 표방한다. 여기에는 ‘첫 번째’라는 또 다른 수식어가 감춰져 있다. 물론 <후회하지 않아>가 동성간의 연애를 다룬 최초의 한국영화는 아니다. 중년의 동성애를 과감하게 묘사한 <내일로 흐르는 강>이 있었고, 사회 밖으로 내몰린 두 남자의 사랑을 다룬 <로드무비>가 있었다. 그러므로 방점은 ‘본격’에 찍힌다. 이는 돌아가지 않는 직설화법을 구사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말한다. <내일로 흐르는 강>은 한국 현대사의 상흔으로서 동성애를 끌어들였고, 동성간의 섹스신으로 시작하는 <로드무비>는 퀴어영화라는 호칭을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이것은 사랑과 소통에 대한 이야기”임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며 두 주인공의 육체적 관계는 끝까지 유예시켰다. 최초의 동성애영화를 둘러싼 논란은 매번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아>는 다르다. 감독 자신이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감독은 육체적 관계를 있는 그대로 거칠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영화 속 아름다운 두 남자의 섹스신은 실제로 아름다운 편에 속한다. 과격한 것은 동성애를 묘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르의 통속성을 끌어안는 태도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사랑 이야기가 들어 있는 사회구조는 사랑 그 자체만큼 중요하다”는 멜로드라마의 대가 더글러스 서크의 믿음, 서크 영화의 말랑말랑함에 정치적 색채를 거칠게 삽입한 파스빈더의 방식은 <후회하지 않아>가 지닌 대책없는 문어체적 전형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변명이 될 수 있다. CF 화면처럼 그저 예쁘게 묘사된 두 남자의 데이트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이송희일 감독은 “그걸 만일 이성애 멜로에서 썼으면 재미없고 그저 통속적이기만 했겠지만 이 영화에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게이 입장에서 자신들의 사랑이 그런 식으로 그려지는 것을 보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뻔한 화면의 피사체가 게이로 설정됐을 때 뭔가 엇나가는 느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사랑에 드리운 계급의 그림자
네이버 카페 ‘씨네마 게이클럽’ 회원 jdb1970은 “영화를 보면서 기분이 쓸쓸하더군요. 불나방 같은 그들의 사랑이 참 부러웠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한 자신이 좀 싫더라고요. ‘나 같은 사람이 훨씬 많을 거야’라고 혼자 위안을 했습니다”라며 감상을 적었다. “이번 영화 역시 게이 관객은 싫어할 것”이라는 감독의 자조적인 예상은 빗나간 듯 보이지만, 자신들의 사랑을 솔직하게 묘사한 이 영화를 보는 게이 관객의 시선은 반갑고도 씁쓸하다. <후회하지 않아>를 비롯한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가 품은 공격의 화살은 이성애자의 편견을 넘어 솔직한 욕망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커밍아웃의 복잡다난한 과정에 집중한 <슈가 힐> 등 동성애 멜로물은 달콤한 연애의 판타지를 체험하고픈 게이 관객을, 30대 여자와 남자 고등학생의 연애를 다룬 <굿 로맨스>는 남자 이성애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후회하지 않아>를 제외한 그의 멜로영화는 이미 시작됐거나 예전에 마무리된 사랑이 사회와 갈등하는 과정에 집중했다. 달콤한 시기를 생략한 그의 영화 속 연애는 괴로운 반추의 도구처럼 보였다. <후회하지 않아>는 연애의 시작지점을 명확히 밝히고 그저 향기로운 연애의 절정까지 공들여 묘사하지만, 계급갈등과 대도시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시선 역시 감추지 않는다. 아니, 감춰지지 않는다. 굳이 “원래 생각한 주제가 많았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의도대로 찍지 못했고, 편집 과정에서 다 잘라내고 멜로로 압축하려 했지만 잔재가 남았을 것”이라는 감독의 말을 듣지 않아도 이는 명백하다.
결국 <후회하지 않아>는 유례없는 직설법과 함께 솔직한 복화술을 구사하는 영화다. 이송희일 감독은 동성애를 그 어떤 비유로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멜로드라마 장르의 정치적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때문에 진부해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영화의 거친 엔딩은 감정적인 카타르시스와 영화적인 쾌감을 동시에 자극한다. 그러므로 <후회하지 않아>가 해피엔딩이라는 것은 스포일러가 될 수 없다. 중요한 반전은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방식에 있다. 본격 퀴어멜로라는 수식은 그저 선정적인 광고문구가 아니라, 장르를 둘러싼 게임을 포기하지 않은 결과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