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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과 비전을 가진 정치영화, <여름궁전>

천안문 사태 이후 세계화로 이르는 지도를 펼쳐 보인 <여름 궁전>

하이, ‘전영객잔’ 오랜만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나는 사실 로우예의 <여름 궁전>에 사로잡혀 있다. 부산영화제 동안 그리고 그 이후로도 인상적인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지막 장면의 처절한 아름다움이 어김없이 눈물을 쏟게 만드는 차이밍량의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아>, 전작에 비해 큰 진전은 없으나 그래도 여전히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브루노 뒤몽의 신작 <플랑드르>, 프라티바 파마의 장편 <니나의 천국의 맛>(영화적으로 재앙, 그래도 그녀의 건재가 반갑다) 그리고 북한, 인도 남부, 부르키나파소, 미국 와이오밍의 영화관, 영사기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울리 가울케의 <꿈의 동지들>- 애활가들에게는 정말 꿈처럼 애달픈 영화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흠잡을 데 없이 딱 떨어지는 여성주의 윤리멜로 <나 없는 내 인생>과 퀴어멜로 <후회하지 않아>를 보았다. <후회하지 않아>는 11월에 개봉하는데 정말 강추다. 감독이 서울을 바라보고 분할하는 공간감이 탁월하고, 신인 이영훈의 연기는 다정하다. 퀴어영화로서 가릴 것 없는 성묘사에 계급 적대, 염치 불구하는 통속적 서사에 70년대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의 과감한 계승(이라 함은 당시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를 호스트로 바꾸고 거기에 잔혹성과 모든 것은 페니스로!라는 페니스 로맨스를 접합)을 이루어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좋은 가을영화들을 보면 볼수록 <여름 궁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여름 궁전>은 천안문 사태와 성적 묘사 등으로 논란이 된 작품으로, 중국 당국은 상영 불허는 물론이고 감독 로우예와 프로듀서에게 5년간 영화 제작 금지령을 내렸다. 물론 천안문이나 성문제 때문이라고는 하지 않고, 검열용 시사에 적합한 필름을 제출하지 않은 채 칸영화제로 날아갔다는 것이 공식적 이유다.

<여름 궁전>을 걸작이라거나 완벽한 영화로 전환시킬 생각은 없다. 칸에서 이 영화를 본 여러 평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2시간이 훌쩍 넘는 상영시간 중 한 시간을 넘기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언제 그 처음의 격렬함의 수위로 영화가 다시 돌아갈 것인지를 초초하게 기다리게 된다. 종결 부분 어느 지점에서 그 격렬함은 어떤 비극으로 뜻밖의 장소와 인물을 통해 스크린으로 돌아오긴 하지만, 10년에 걸친 이야기 구성이 모두 활기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서사 구성이 엉망이라는 질타가 있다. 성에 관한 대담한 이야기인가 하면 정치영화이기도 하고. 그래서 혹자는 정치 부분은 핑곗거리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천안문 사태를 서구, 특히 영화의 자본을 댄 프랑스 아트영화의 구미에 맞추어 각색한 것이라는 비꼼도 있다. 나는 이 혹평들이 싫다. 왜냐하면 <여름 궁전>의 아름다움, 그 미색은 성숙과 완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성의 혁명과 정치적 혁명이 교차하는 지점에 대한 빌헬름 라이히적 사유가 아니다. 서구의 시선을 위한 아트영화라고 이 영화를 폄하하는 사람들에게는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이나 실컷 보라고 악담해주고 싶다.

젊은 이상주의자들이 세계화를 통과하는 이야기

<여름 궁전>은 결코 완벽하지 않은 젊은 이상주의자들이 중국의 사회·경제 개혁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통과하는 이야기다. 예컨대 87년 자유 섹스라는 대학의 하위문화가 이들의 젊은 몸을 안절부절못하게 한 다음 89년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다. 이 젊은이들 중 세명은 베를린으로 가고, 여주인공은 베이징을 떠나 자신의 고향인 투먼으로 갔다가 우한, 베이다이허, 심양과 같은 중국 도시들을 전전한다.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의 저자 왕후이는 중국의 1978년부터 1989년 사이를 가리켜 ‘혁명’이라는 말로 그 변동의 심도를 표현하는 것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한다. <여름 궁전>의 주인공들은 바로 이 시기에 자신의 10대와 20대를 보낸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핸드헬드 카메라와 롱테이크 이후의 점프컷 등을 뒤섞어 10년이라는, 영화적으로는 장구한 역사적 시간과 벼락같이 짧은 젊음의 시간, 전광석화적 질풍노도를 교직시키고 있다. 영화의 섹스장면들은 어둡게 처리되어 친밀성이나 낭만보다는 은밀함과 혼돈을 시사한다. 천안문이 등장하지만 간단한 자료화면 등에 실려 당시의 열기만 분위기로 느껴진다. 반면에 여름 궁전의 인공 호수인 곤명호에 떨어지는 만월이 수면에 흩어지고 그 곁을 연인들이 배를 저어가는 장면들은 유치하지만 아름답다.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는 유홍(레이하오)이라는 중국과 북한의 경계지대, 투먼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게 된다. 그녀는 조선족 남자와 첫사랑을 나눈다. 그리곤 베이징대학에 입학한다. 1987년 베이징의 청년문화가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이 영화에서 그녀는 저우웨이(궈샤오둥)와 사랑에 빠진다. 이들 사랑의 광기와 혼돈 속으로 1989년 천안문 사태가 섬광처럼 들어왔다가 빠져나간다. 저우웨이는 군 입영을 하게 되고 유홍은 베이징을 떠나 투먼으로 돌아갔다가 우한, 베이다이허, 심양 등을 전전하다가 평범하고 가난한 회사원이 된다. 반면 저우웨이는 군대를 나온 뒤 대학 동기들이 있는 베를린으로 간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베를린 거리의 시위대와 함께 저우웨이는 사회운동에 참여한다. 이때 리티라는 유홍의 친구가 옥상에서 돌연히 자살을 하게 되는데 섬뜩하고 불가해한 장면이다. 젊음과 정치, 사랑의 불안정성으로 돌릴 수밖에…. 영화의 마지막, 저우웨이는 유홍이 있는 중국으로 돌아오지만, 미래는 그 둘이 공유하기 불가능한 그 무엇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갈라진 두개의 혀로 중국의 가까운 현대사를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갈라진 혀로 능히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내부의 중심(베이징)과 지역 혹은 변방(투먼과 우한, 심양 등) 그리고 베를린으로 표상되는 세계와 중국과의 동시성과 연관성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갈라진 혀로 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교묘한 절합을 천안문과 포스트 천안문 시대, 국면을 통과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광적 사랑이라는 사적 영역을 표시하는 절정의 드라마로서의 감정과 몸의 극적 표출은 천안문 사태라는 정치적 분출과 중첩된다. 이 영화에서 재현과 현시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으로 이분화됐다가 역사적 전환점이 되는 천안문 사태에서 겹치고 이후 모든 것은 그 효과 속에 놓인다. 유홍과 저우웨이는 천안문 사태의 역사적 행위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생존자다.

<괴물>과 비교되는 공간적 정치학의 대비

1989년 6월4일 전세계를 놀라게 한 천안문 사태 이후 동유럽과 소련이 해체되어 냉전이 종식되고 (한국과 몇곳을 제외하고) ‘역사’가 종결된 국면의 변화를 간접화법으로 드러내는 이 영화의 무의식적 역사성과 정치성은 공간적 이동과 그 공간들에 있다. 반면, 한국의 <괴물>에서 괴물과 그 희생자들이 우왕좌왕하는 공간은 한강을 넘지 못한다. 마치 광장공포증에라도 사로잡힌 것처럼 괴물은 한강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이것은 파괴의 영역을 점점 넓혀가기 때문에 종래 ‘괴물’이 되는 일본이나 할리우드의 <고질라>와는 딴판이다. 한국에서 1960년에 만든 <대괴수 용가리>는 DMZ에 출현해 서울로 움직인다. 6·25전쟁과 근접한 시기에 만들어진 괴물영화답다.

2006년 만들어진 <괴물>의 공간적 이동의 제한 속에 글로벌한 포스트 냉전 시기에도 분단과 북한핵 위기, 미국 지배 등으로 냉전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의 봉쇄적 공간에 대한 정치학이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이 <괴물>은 대고질라가 아닌 작은 괴물이라고 역설하던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여름 궁전>이 천안문 사태 이후의 정치적 망명과 중국의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의 세계화에 대한 서사라고 한다면, 유홍과 저우웨이는 이 격변의 역사적 주체이며 또 비주체가 되어간다. 반면, <괴물>에서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은 미군의 독극물 방류 사건의 효과 속에서 작동한다. <괴물>과 중국의 <여름 궁전>을 짧게 비교한 것은 두 영화가 그려내는 공간적 정치학의 대비가 너무 뚜렷하기 때문이다. 가장 역설적 사실은 100억원이 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괴물>은 포스트 냉전의 공간 정치학의 징후, 봉쇄된 공간의 억압적 괴물성을 드러내고 있는 반면에 독립영화인 <여름 궁전>은 천안문 사태라는 정치적 봉기와 그 이후 세계화에 이르는 지도를 펼쳐 보인다는 것이다. 금융 투기, 포스트 냉전,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왜소해진 소시민이 세상에 대해 가진 공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괴물>은 정치적인 영화지만 <여름 궁전>은 중국 당대 10여년의 성찰과 비전을 가진 정치영화다.

위의 공간의 역사화, 정치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여름 궁전>이 보여주는 영화적 열정이다. 영화의 원시적 열정이라고 부를 만큼 사운드와 이미지의 연결, 비 연결, 통합과 분리가 자유롭다. 이제껏 이란영화의 음악을 맡았던 페이만 야즈다니안이 한국 가요부터 미국 팝, 중국 가요 그리고 바로크까지를 종횡무진하며 음악을 쓰는 것도 그 원시적 열정을 격앙시킨다. 영화평론가 정성일도 헌사를 바쳤던 중국 문화 전공자이며 프랑스에서 저널리즘 비평의 신경지를 열었던 <카이에 뒤 시네마>의 세르주 다네는 50년대의 작가주의, 알튀세르와 라캉과 푸코를 ‘야만적’으로 영화에 적용했던 60년대 후반, 그리고 70년대 말 시네필의 귀환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고전영화의 에로틱한 패러독스, 달빛의 해쓱함과 기묘한 앵글로 꺼져버린 휘도를 반영해내는” 것이다.

2006년 가을, <여름 궁전>이 불현듯 생각나게 한 것이 바로 그 시네필의 귀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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