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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5] - 박수진
박혜명 사진 오계옥 2006-10-19

<양아치어조>(각색), <뚝방전설> 박수진 작가

언저리 사람들을 희곡에, 시나리오에 담는다

조범구 감독의 장편영화 두편 <양아치어조>와 <뚝방전설>의 시나리오를 작업한 박수진 작가는 감독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한살 터울인 친형의 친구이기도 해서 중학교 때부터 알아왔고, 근 20년을 본 사이라 이제는 같이 술을 마셔도 2시간만 지나면 할 얘기가 없을 만큼 서로를 많이 안다. <뚝방전설>은 제작사 싸이더스FNH와 먼저 계약을 맺은 조범구 감독이 “남자 이야기를 해보자”는 권유를 받고 박수진 작가에게 각본을 맡긴 경우다. “감자탕에 소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우리 고등학교 때 얘기나 해볼까 해서 쓰게 됐다. 경희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때 있었던 노타치파, 물레방아파에다가 친구들 실명까지 다 끌어왔다.”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20일 만에 써내려간 <뚝방전설>의 시나리오는 비록 주인공의 실패를 담고 있어도 덧칠된 추억 덕에 따뜻하다. “양아치 청춘과 양아치 같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인 <양아치어조>도 감독 원안의 침울한 분위기가 작가의 각색을 거치면서 남루한 현실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조폭과 고등학생을 내세운 청춘의 경쾌한 실패담. 여러모로 닮은 두편의 시나리오를 연달아 작업하게 됐지만 희곡작가로서 박수진이 썼던 이야기들은 조금 다른 세계와 걸쳐 있다. 1998년 삼성문학상을 통해 등단한 그는 탈북소녀, 베트남전 참전 군인, 비전향 장기수, 옌볜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글을 써왔다. 등단작품인 <춘궁기>를 비롯해 <용병> <영광의 탈출> <초야> 등 지금까지 무대에 올린 그의 희곡들 속에서 주인공들은 죽거나 고향을 잃거나 꿈을 잃었다. 시나리오와 희곡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그 속에 나약한 개인이 있다는 점이다.

박수진 작가는 부모, 형과 함께 오랫동안 단칸방 생활을 했다. 영화광인 아버지가 <토요명화>를 틀어놓으면 그 어깨 너머로 불 꺼진 방 안을 비추는 TV화면에 빠져들곤 했다. “특히 서부영화광이셨다. 내가 물으면 일일이 설명을 해주셨다. 저 배우 누구야? 그러면 ‘쟤는 쫀 웨인’, ‘저 배우는 크린트 이스트우드’, 제목은? ‘<황야의 7인>.’” 영화과를 지망했다가 여기저기 다 떨어지고 서울예대가 마지막 보루였을 때, 입시설명서를 뒤지고 있는데 영화과 소개글 옆페이지에 극작과가 나왔다. 교수로 있는 오태석 연출가의 이름을 보고 주저없이 그 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렇게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도 두 일을 병행하고 있다.

“법칙은 없고, 기술적인 원칙이 하나 있는데, 오태석 선생님이 <심청전>이나 성경의 한 구절을 원고지에 펜으로 정서해오라고 숙제를 내주셨다. 그걸로 점수를 매기셨다. 컴퓨터 화면만 보면서 글을 쓰다보면 그럴듯한 편집 때문에 종종 내 글에 내가 속는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그러면 잘 쓸 수 있을까 하고 꼭 지키기 시작했다. 원고지건 백지건 종이에 먼저 쓰고 타이핑을 한다.” 박수진은 지금 희곡 <나뭇잎 사이로>와 함께 조범구 감독의 신작 시나리오를 동시에 쓰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는 20대, 30대, 40대 커플의 이야기이며 조 감독의 신작은 한창 사랑이 왕성할 때인 20대 중후반 커플의 이야기다. 자신의 커리어에서는 드물었던 사랑 이야기를 빌려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의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그는 설명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그런 거 같다. 언저리를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 실패한 사람. 가난한 사람. 헤어진 사람들. 그들이 왜 그렇게 살게 되었는지 나 스스로도 더 파헤쳐보고 싶다.”

막힌 대목, 이렇게 뚫었다!

밋밋하게 프린트해 죽어라 읽는다

“프린트해서 죽어라고 읽는다. 컴퓨터에 쓰면서 두 가지 버전을 항상 만들어놓는데, 하나는 서체, 폰트, 간격을 다 그럴듯하게 편집한 버전이고 하나는 대표글꼴에 아무 편집요소 주지 않은 버전이다. 예쁘게 디자인돼 있지 않아서 뜯어보고 싶지 않은 선물처럼 밋밋한 버전. 그걸 프린트해서 읽는다. 또 한 가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준다. 희곡 쓰는 선배들도 있고 주위에 글 쓰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친하니까 잘 들어주는 척하지면 사실 그 사람들은 대충 듣는다. (웃음) 그러고선 ‘그건 그렇게 하면 되겠네’ 하고 툭 말을 던진다. 그러면 나는 내 이야기라 몰입해 있어서 몰랐던 부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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