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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가디언> LA 시사회 및 주연배우 인터뷰
옥혜령(LA 통신원) 2006-10-12

해안경비대, 할리우드의 새로운 영웅으로 등장하다

미국은 영웅을 좋아한다. 미국만큼 영웅이 흔한 곳도 없다. 서부영화의 고독한 총잡이부터 슈퍼맨, 스파이더 맨 그리고 뉴욕 소방관에 이르기까지 ‘영웅적’ 존재들이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평범한 개인도 고결하고 뛰어난 ‘신화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미국적 의미의 영웅이다. 개인의 삶을 결정짓는 사회적 시스템의 영향력은 종종 무시된다. ‘영웅 만들기’의 내러티브는 미디어뿐 아니라 일상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다. 한때 영웅들은 공권력이나 초능력을 등에 업고 나타났다. 9·11 이후 영웅들은 일상에서 ‘발견’된다. 공공서비스를 담당하는 소방관이나 의료진의 활약상은 이미 스크린과 텔레비전을 점령했다. 더이상 남아 있는 영웅이 있을까 싶지만 할리우드는 기어이 새로운 영웅을 찾아냈다.

소박하지만 철저하게 미국적인 영웅 신화

이번에는 ‘해안경비대’(Coast Guard)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인명구조대(Rescue Swimmer)가 소방관의 뒤를 이어 미국의 ‘보호자’(The Guardian)로 선을 보인다. 케빈 코스트너 애시튼 커처 두 배우를 내세운 <가디언>은 그런 의미에서 시의적절하다. 해안경비대를 일반인들의 시야에 등장시킨 것은 2005년의 카트리나 재앙이었다. 총칼을 든 군인과 경찰이 무력하게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를 배회하고 있을 때, 해안경비대는 3만명에 이르는 수재민들을 구하고 대피시켰다. 세계의 경찰, 미국이 자기네 땅에서 일어난 대재앙에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일사불란한 시스템으로 시민들을 구조한 해안경비대의 활약은 예견치 못한 것이었다. <가디언>은 칭송받지 못했던 숨은 영웅, 해안경비대 구조팀 이야기를 스크린에 불러낸 첫 번째 시도다. 첫 시도가 흔히 그렇듯, <가디언>은 폭풍 몰아치는 심해에서 조난당한 선원들을 맨몸으로 구해내는 이들은 누구일까, 이들은 어떻게 훈련받을까, 이들의 일은 그리고 생활은 어떨까라는 많은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물론 디즈니가 제작한 할리우드영화답게 영웅되기의 고뇌와 어려움, 극적인 활약상 등의 전형적인 드라마로 얼개를 짰다. <도망자> <언더 씨즈> <홀> 등에서 드라마틱한 상황에 처한 강인한 인물들의 활약상을 주로 다뤄온 앤드루 데이비스 감독을 매혹시킨 것도 바로 누구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영웅의 세계였다. “60m가 넘는 얼음장 같은 베링해에 뛰어들어 조난당한 사람들을 구해내는 영웅의 모습은 지금껏 누구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할리우드의 새로운 아이콘을 만들기 위해 세명의 베테랑 해안경비대 구조팀이 영화에 기술고문으로 참여했다. <가디언>은 이례적으로 장시간 공을 들여 해안경비대 훈련학교의 훈련과정을 그려낸다.

물탱크 속 폭풍의 스펙터클

전설적인 베테랑 구조대원 벤 랜들 역을 맡은 케빈 코스트너는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게 임무인, 그러나 해병대나 해군처럼 화려하고 섹시하지 않은” 이 특수한 부대에 마음이 이끌려서 <가디언>에 참여했다. <늑대와 춤을> 이후 <포스트맨> <오픈 레인지>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전작에서 비슷비슷한 ‘미국적 영웅’을 연기해온 케빈 코스트너가 다시 ‘보호자’라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오십을 넘긴 이 노익장은 예전의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듯한’ 영웅이 아니라, 어느덧 담담하게 나이 먹은 어른의 풍모를 보여준다. “배우가 자신의 나이에 맞는 역을 연기할 때 영화가 성공적일 수 있다”고 믿는 스크린 밖의 케빈 코스트너는 그의 스크린 속 페르소나들보다 한결 매력적이다. <70’s 쇼>의 코미디 배우로 스타의 후광을 손에 넣은 애시튼 커처에 대한 선입견을 우려해서일까. 기자회견에서 케빈 코스트너는 애시튼 커처의 어른스러움을 친절히 강조하는 걸 잊지 않는다. 촬영 첫날, 물탱크 속에서 10시간을 보내고 나서 자신의 트레일러로 일부러 와서는 힘든 점과 불편한 점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건 입지 말고, 저건 하지 말고 끝도 없이 당부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단다. 영화에서 랜들이 구현하는 ‘소박한 영웅’의 전설을 계승하게 될 애시튼 커처(제이크 피셔 역)는 언제라도 “맘만 먹으면 케빈이 내 볼기를 후려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농담으로 선배 배우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다.

두 배우가 극진히 서로를 배려해야 했을 만큼 <가디언>의 실제 촬영은 배우들에게 육체적으로 도전이었다. 평소에도 물속에 들어가길 꺼리는 애시튼 커처의 입장에선 8개월 전부터 시작된 트레이닝이나 수영장에서 보낸 많은 시간들이 쉽지 않았을 터이다. <타이타닉>의 특수효과 담당이었던 스콧 피셔와 앤드루 피어스 감독의 오랜 파트너인 마히르 아메다 프로덕션디자이너가 만들어낸 거대한 물탱크 속의 베링해도 녹록지 않은 적수였다. 테마파크의 인공 파도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물탱크 속의 폭풍은 스크린 속 영웅들에게 할리우드가 제공할 수 있는 스펙터클로는 손색이 없다. <가디언>의 애초 촬영 예정지였던 뉴올리언스 해변을 쓸어버린 카트리나의 위력에 버금갈까마는. 새로운 영웅 탄생에 박수를 보내는 <가디언>은 그래서 철저히 미국적이다. 아마도 영화 개봉 이후 해안경비대 지원자가 늘지 않을까.

“패배 속에서 진정한 영웅이 탄생한다”

주연배우 케빈 코스트너, 애시튼 커처 인터뷰

-영웅에 대해, ‘언더독’의 경험에 대해. =케빈 코스트너: 누구나 인생에서 재점검을 하는 순간이 있다. 애시튼은 지금 막 그 순간을 경험하고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애시튼 커처가 과연 심각한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지켜보는 때니까. 그런데 나는 그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보이려고 한다는 게 바로 실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멋진 미국 영웅의 정신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비난하지 말 것, 해명하지 말 것” 아닌가. 인생이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습일진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든 영화가 돈을 많이 벌면 그 영화는 성공한 걸까. 성공이 모든 걸 정당화할까. 영웅에 관한 진실이 하나 있다면 그들도 때때로 실패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영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자이언트>에 미국 영화사상 가장 영웅적인 순간이 등장한다. 록 허드슨이 바에서 힘에 부치는 싸움을 하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당신, 지금까지는 한번도 당신보다 큰 사람들과는 상대하지 않았잖아요.” 나는 패배 속에 진정한 영웅이 탄생하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드는 것뿐이다. 물론 우리도 상처는 받는다. =애시튼 커처: 성취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 장애물이 있어야 더 의미가 있다. 내 목표는 항상 다음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전보다 더 나은 다음 단계에.

-영화에 대해서, 영화배우로서의 다음 선택에 대해. =케빈 코스트너: 아직도 돈을 내고 영화를 보러 다닌다. 사람들이 왜 영화를 볼까 종종 생각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팔에 소름이 돋고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는 그런 느낌 때문이 아닐까. 영화의 마력은 거기에 있다. 나는 아직도 ‘바보처럼’ 그런 경험을 한다. 그리고 여전히 영화의 마력을 믿는다. 산타클로스라든가 바다 밑에 사는 요정이라든가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들도 일단 스크린에서 소리쳐 외치고 나면, 그 순간만큼은 믿게 된다. 지금까지 장르영화를 많이 했는데, 사람들이 내가 계속 자기 복제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걸 안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버전으로 계속 만든다는 거지. 그런데 난 만족한다. 분명 영리한 사업 전략은 아니지만. 난 계속 이 장르를 ‘방문’할 것이다. 또 다른 나이대의 내 모습으로. =애시튼 커처: 영화 보면서 운 적은 한번도 없다. 어릴 적 어드벤처영화를 보러 간 일이 기억난다. 우리 가족은 시골에서 넉넉지 않은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극장에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많이 봤다. <구니스>는 지금도 기억난다. 나도 그 모험에 같이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게 아니라 이미 같이 가고 있었다. <꿈의 구장>을 봤을 때는, 우리집 뒤에 있는 옥수수밭에서 야구 선수가 걸어나올 것만 같았다. 난 정말 믿었다. 내가 그 속에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직접 그 세계를 경험할 수 없는 사람들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준다. 나에게는 이것이 영화의 매력이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용감했던 순간에 대해. =케빈 코스트너: 아마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내 심장의 울림’에 따른 것이다. 어릴 적에 비즈니스도 학문에도 소질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가야 했겠지만, 연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다. 나는 매우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연기자가 된다는 것은 부모와 연을 끊는다는 걸 의미했다. 게다가 연기를 한다고 해서 성공할 거라는 보장도 없었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한다고 모든 것이 잘될 거라는 어떤 확신도 없었다. 그래도 내 인생에 한번, 관습을 깨뜨리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인 게 가장 용감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 일이야,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라고 말이다. =애시튼 커처: 영웅적인 일을 기대할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아니다. 제일 용기가 필요한 일은 나의 감정과 약점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이다. 나의 상처를 타인에게 내보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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