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전철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요코하마는 인천이나 부산에 비할 만한 일본 제1의 항구도시다. 1859년 개항 당시,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관문이었던 오래된 도시는 일본 최대의 차이나타운이며 유난히 아담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건물들로 관광객의 눈길을 잡아끈다. 세계화를 넘어 획일화가 판을 치고,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영화만이 국경을 넘나들며 돈을 끌어모으는 21세기. 도시의 곳곳마다 타 문물을 향한 관대함이 느껴지는 아늑하고 쾌적한 요코하마는 동아시아 3개국의 학생영화를 소개하는 영화제를 위한 장소로는 최적인 셈이다.
환경운동가 에노키다 류지가 이끌고 있는 요코하마 프로젝트 그룹이 기획하고, 요코하마시가 후원하는 요코하마학생영화제는 올해로 5회째를 맞이했다. 극장에서 개봉할 수 없는 새로운 영화를 소개하는 지역영화 상영회로 시작해 5년이 흐른 올해. 과거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학교로 유명했고 현재는 일본 영화평론계의 거목 사토 다다오가 교장으로 재임 중인 일본영화학교, 첸카이거며 장이모 등 굵직한 중국의 거장을 배출했고 졸업생들이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휩쓴 상의 개수만도 750개를 헤아린다는 베이징전영학원, 오늘날 한국영화가 누리고 있는 르네상스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한국영화아카데미 등 한·중·일 동아시아 3개국의 대표적인 영화학교 졸업작품을 통해 아시아영화의 미래를 엿보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지난 9월22일부터 24일까지 요코하마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센터의 200여석 규모의 상영관에서 진행된 제5회 요코하마학생영화제 기간 내내 <NHK> 카메라는 행사장 구석구석을 누볐다. 올해의 행사는 오는 2009년 요코하마 개항 150주년을 주제로 3개국 영화학교가 장편 합작영화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중국과 한국의 영화학도들이 요코하마를 소재로 완성한 단편다큐멘터리 두편을 공개하는 국제적인 자리였기 때문이다. 일본영화학교의 실습작들과 함께 중국의 베이징전영학원, 장쯔이, 장원 등의 배우를 배출한 연기학교로 더 유명한 중앙희극학원의 졸업영화 13편,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역대 졸업작품 중에서 선정된 단편 5편, 베이징전영학원과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애니메이션 졸업작품 11편을 상영하는 기본 라인업 역시 푸짐하다.
<구씨의 카메라>(3기 임상수)부터 <토끼와 곰>(20기 김효정)까지, 한국 단편영화의 변화까지 엿보게 만드는 한국영화아카데미의 다섯 작품 대부분은 허진호, 봉준호 감독 등 일본에 장편영화가 소개된 감독의 학생 시절 영화. 작품을 최종 선정한 사가라 미도리는 “무엇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국 감독의 초기영화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며 프로그래밍의 기준을 에둘러 설명한다. 이중 상영관 안에서 관객에게 가장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재기발랄한 풍자극 <지리멸렬>(봉준호). 일본과 중국의 학생영화로 상영된 작품에 속한 동포 및 유학생의 작품들도 눈에 띈다. 일본영화학교 졸업생인 40대 재일동포 하진선 감독이 한국과 일본 국적 사이에서 고민하던 아들이 입대를 선택하기까지를 다룬 다큐멘터리 <우리나라>, 베이징전영학원 감독과 석사과정의 홍주현 감독이 영화감독이라는 꿈과 성실한 사회인으로서의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 이야기를 그린 <The First Scene> 등이 그 작품들이다.
요코하마 소재, 한국·중국 단편다큐 2편 선보여
뭐니뭐니해도 올해 영화제의 가장 큰 이슈는 요코하마를 소재로 완성한 25분짜리 단편다큐멘터리 두편일 것이다. 애초 일본영화학교를 포함하여 베이징전영학원과 한국영화아카데미 학생들이 각각 한편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공개하려 했지만 일본이 자체적인 사정으로 인해 완성하지 못했고, 두편만이 관객을 만났다. 공식 상영을 앞두고 3개국 영화학교 관계자들이 참석한 시사 및 평가 자리에서는 따뜻하고 신랄한 코멘트가 오갔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소상민 감독의 <사랑하는 항구 요코하마의 게집애야!>는 임화가 1928년 나카노 시게하루의 시 <비내리는 品川驛>에 화답하여 쓴 <우산받은 요코하마 부두>를 모티브로 하는 에세이풍 다큐멘터리. 시에 나타난 정서를 담기 위해 낯선 땅을 밟은 제작진의 발걸음을 고스란히 따라잡은 이 작품은 요코하마를 알지 못하는 관객에게 “요코하마를 방문하지 않았던 임화의 시를 추체험하게 만들었다”(일본영화학교 교장 사토 다다오), “요코하마라는 도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만든 이들의 정서는 확실히 전달됐다”(베이징전영학원 촬영과 주임교수 무더위안), “이야기하려는 주제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쉬운 길을 가지 않겠다는 애초의 약속을 지켰다는 점이 중요하다”(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 박기용) 등의 평가를 받았다. 베이징전영학원에서 완성한 <요코하마의 만남>은 영화제 주최자인 류지 에노키다의 독특한 삶과 가족을 소재로 한 인물다큐멘터리였다.
한국과 중국의 다큐멘터리 상영 직전 무대에 오른 나카다 히로시 요코하마 시장은 “150년 전 각종 물건이 드나드는 작은 항구였던 요코하마는 350만명이 사는 대도시가 됐다. 이제는 한·중·일의 젊은 영화학도들이 스스로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며 2년 뒤 만들어질 3개국 영화학교의 합작영화를 향한 계속적인 지원의 의지를 밝혔다. 한국과 중국의 영화학교 관계자들은 “3개국이 함께한 첫걸음으로 완성된 다큐멘터리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만, 이후를 기약하게 만드는 소중한 기회”라며 입을 모았다. 영화제 폐막 이후 향후 계속될 합작을 위한 논의의 자리를 가진 관계자들은 2009년까지 한·중·일이 부산과 칭다오, 요코하마에서 각각 두편씩 총여섯편의 영화를 만들 것을 합의하고 헤어졌다. 작은 오고감이 거침없는 물꼬를 트는 법이다. 상업성을 앞세우지 않은 3개국 영화학교의 소박한 교류가 기대를 모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요코하마 프로젝트 대표 에노키다 류지
"영상과 음악으로 교류하는 젊은이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
에노키다 류지와 그의 부인은 요코하마 프로젝트의 모든 것이다. 각종 음악 공연과 영화제,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손님을 맞이하고 행사를 진행하는데,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초대손님을 소개하는 일부터 도시락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일까지, 그가 손대는 일의 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덕분에 생후 1년부터 8살에 이르는, 그의 세 아이는 분주한 엄마아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거나 언제나 끊이지 않는 손님들의 품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당신의 직업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겠나. =우선은 음악가라고 적어달라. 그리고 환경운동가. 내가 책임지고 있는 요코하마 아트프로젝트 자체가 환경문제를 영상으로 접근하는 일을 하는 NPO 단체다. 음악이나 영화제, NPO 활동 모두 새로운 사람을 만나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원래 영화에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고 들었다. 요코하마학생영화제는 어떻게 시작했나. =실습작품 음악작업을 해주면서 일본영화학교 학생을 알게 됐다. 학생영화를 보다 보니 의외로 재미있는 영화가 많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들은 학교를 졸업해도 영화를 찍을 수 없고, 찍더라도 영화를 보러오는 사람이 별로 없는 힘든 상황이라더라. 요즘 관객은 TV에서 광고하는 영화만을 보러 간다. 젊은 영화학도들의 미래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영화제를 직접 열게 됐다.
-처음부터 중국과 한국영화를 소개했나. =첫회 영화제를 열었는데 일반인은 물론이고 영화학도들도 별로 찾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2회부터 NGO나 NPO 활동가들에게 영상제작 교육을 실시했다. 그들이 다시 영화를 만들게 되면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운동도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2회가 끝난 뒤 베이징전영학원 관계자와 일본영화 관계자를 초대해서 심포지엄을 열었고, 이후 베이징전영학원의 영화는 물론 뉴미디어 작품까지 영화제 동안 일본 대중에게 소개했다. 그때의 인연으로 베이징전영학원의 명예교수로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젊은이들이 영상과 음악을 통해 쉽게 교류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주입식 입시교육 때문에 일본 아이들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데, 그 해결을 학교나 나라에 기대할 수는 없다. 큰딸은 원래 초등학교 2학년이어야 하는데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집에서 교육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래도 되겠냐고 걱정하지만, 나는 오히려 묻는다. 애들을 그렇게 학교에 보내도 괜찮겠냐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