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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회 베니스영화제 중간결산 [2]
박혜명 사진 이혜정 2006-09-15
전성기 성룡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같다

류승완 감독의 <짝패> 현지 반응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시키는 영화다.” “성룡의 전성기 시대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같다.”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류승완 감독의 <짝패>에 대한 베니스 현지의 평가가 대단히 호의적이다. 지난 9월1일 현지에서 기자시사와 공식상영이 있은 뒤 현지 언론들은 류승완 감독의 <짝패>가 매우 개성있으면서도 대중적인 재미를 품은 액션영화라는 데 공통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젊은 비평가들로 구성된 잡지 <아르카>는 영화제 데일리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홍콩 액션이나 무협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보더라도 충분히 좋아할 만한 장면들이 많다. 류승완 감독은 유머를 잘 사용한다. 류승완 감독은 홍콩영화의 영향을 받은 감독이지만 인물들의 결투장면에서 CG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캐릭터들도 흥미롭다.” 또 다른 현지 언론은 “이런 종류의 영화는 ‘메트로폴리탄 웨스턴’이라고도 부를 만하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친해질 수 있는 영화”라고 <짝패>를 평했다. 이탈리아의 평론가 빈첸초 몰리카는 <짝패>가 폭력을 다루는 방식이 “매우 리얼하다”는 점을 높이 샀다.

<짝패>팀을 고무시킨 결정적인 순간은 9월1일, 그러니까 류승완 감독이 스크린쿼터 1인 시위 첫 타자로 나섰다가 현시 경찰에 연행되는 황당한 사건을 겪은 날 자정이다. 정두홍, 이범수 등과 함께 레드 카펫 행사 이후 관객과 함께한 살라 그란데 공식상영 때 “관객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웃고 열심히 호응해줘서 깜짝 놀랐다”고 류승완 감독은 말했다. “보다가 도중에 나간 사람도 거의 없었던 걸로 안다. 정두홍 감독이 세어봤는데 딱 10명 나갔다고 하더라. (웃음)” 상영 종료 뒤 관객의 기립박수도 오랫동안 이어졌고, 상영관 밖에는 류승완 감독의 사인을 받기 위해 일찌감치 나가 기다리는 관객도 상당수 있었다.

영화제 데일리 <차크> 9월3일자에 실린 올해 영화제 상영작 선정과 관련한 논평에도 <짝패>가 언급되고 있다. 이 논평을 쓴 영화평론가 안토넬로 카타치오는 상영작 최종 선정을 위해 마르코 뮐러 집행위원장을 포함한 영화제 관계자들이 봐야 하는 영화가 1400여편인데 이를 몇개의 그룹이 나눠서 보고 최종 상영작과 부문을 결정한다고 쓰면서 마지막에 “만약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다른 그룹이 봤다면 (비경쟁보다 나은) 다른 부문으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마르코 뮐러의 말을 인용했다.

9월1일 기자시사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짝패>에서 폭력을 다루는 방식과 그것을 액션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관한 질문들이 주로 이어졌다. 한 기자는 식당 마당에서 내부로 이어지는 마지막 액션 시퀀스에 대해 질문하면서 “나는 아름다운 마지막 시퀀스라고 생각한다”라는 인상을 전했다.

“싸움의 기술보다 싸움의 정서를 보여주려 했다”

류승완 감독 기자회견

-한국적 액션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나는 한국에서 대표선수 자격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 영화로 한국적인 액션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하기는 무리다. 다만 한국영화의 전통 안에서 내 영화를 이야기하면 나는 싸움의 기술보다 싸움의 정서를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화려한 테크닉으로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싸움은 어디까지나 폭력이다. 거기에 휘말린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보여주고자 클로즈업을 많이 썼고, 몹신에서는 혼란에 빠진 상태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 <킬 빌 vol.1>을 연상시킨다. =한국에서도 그런 질문을 받았다. 마지막 액션 시퀀스나 세트를 보고 그런 공통점을 찾는 것 같다. 막상 영화를 보면 구조는 정반대다. <킬 빌>은 좁은 곳에서 시작해 점점 넓은 곳, 야외로 나가 해방의 의미가 되고, 내 영화는 넓은 곳에서 시작해 지하에 갇히는 것으로 끝난다. 복수라는 테마를 놓고 보자면 <킬 빌>은 그것으로 장르적 쾌감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고 <짝패>는 그 테마를 좀더 절실한 것으로 보고 현실적으로 접근했다.

=왜 총기 대신 곤봉과 막대기를 무기로 쓰는가? 그것이 한국식 액션의 특징인가. =일단 한국에서는 총기가 불법이다. 내가 총을 가지고 싸워본 적이 없다. 그리고 막대기로는 싸우다가 내가 잘못됐다 싶으면 화해라도 하면 되는데 총은 쏘고 나면 끝이지 않나.

기억을 다룬 최고의 경지

알랭 레네의 <공공장소에서의 개인적 두려움>

군 복무를 마친 댄은 여자친구 니콜에게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니콜은 댄과 결혼할 생각이지만 그의 무능력과 애주는 싫어한다. 댄이 잘 가는 바의 바텐더 라이오넬은 지병이 있는 아버지 아더와 둘이 살고 있고, 아더를 간호할 사람으로 종교심 깊은 샬롯이 취직한다. 샬롯은 티에리와 함께 부동산에서 일하고 있으며, 티에리는 샬롯에게 수작을 걸었다가 TV 종교프로그램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받는다. 티에리의 여동생 가엘은 사랑을 찾아 방황하다 댄과 조우한다. 샬롯은 라이오넬의 괴팍한 아버지 아더에게 시달리다 돌발 행동을 결심한다. 영국 작가 앨런 아이크본의 동명 희극을 영화화한 알랭 레네의 신작은 감독의 표현에 따라 7명의 인물들이 “수족관 속의 고기들” 혹은 “실험실의 쥐들”처럼 서로 복잡하게 얽혀들어 있다. 이 영화엔 야외 촬영이 없다. 댄과 니콜의 집, 댄과 라이오넬이 어울리는 바, 라이오넬과 그의 아버지의 집, 샬롯과 티에리의 부동산, 티에리와 여동생 가엘의 집, 댄과 니콜이 이사하려고 알아보았던 아파트. 영화 속 공간은 이렇게 여섯개로 제한된다. ‘공공장소’라는 제목이 역설적이게도, 완전히 개방된 공간을 드나드는 인물은 하나도 없다. 인물들은 좁은 공간에 갇혀 있고 감정들은 타이트하게 부딪친다. 모든 시퀀스들이 제한된 조건 안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간다 해도 반복에 의한 기시감 또한 계속된다. 영화적인 시간과 그 안에서의 기억을 구조화하는 알랭 레네의 가장 놀라운 솜씨는 매 시퀀스 사이에 동일한 장면을 집어넣은 편집이다. 하얀 눈이 내리는 까만 밤풍경은 눈송이처럼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가 후반부의 한 장면에서 놀라운 지적 유희를 터뜨린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억과 상기의 두뇌활동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이 영화는 우아하고 모던하다. 심지어 굉장히 코믹하다. <르몽드>는 이번 신작을 두고 “레네는 자신의 예술적 세계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썼다.

“마음은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한다”

알랭 레네 감독 기자회견

-영문 제목이 <Private Fears in Public Places>인데 프랑스어 제목도 원래 같은 뜻이었다가 <Coeurs>(프랑스어로 ‘heart’라는 뜻을 지녔음. 복수형)로 바꿨다. 왜 바꿨는가. 영어 제목도 매우 훌륭한 제목이라고 생각하는데. =편집을 끝내고 나서 제목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Private Fears…>라는 영어 제목도 좋아하지만 이를 프랑스어로 바꾸었을 때의 제목이 맘에 들지 않았다. ‘coeurs’를 포함해서 제목의 후보로 정해진 것들이 104개였다. 프랑스어로 ‘coeurs’를 고집한 이유는 이 제목이 모든 캐릭터들을 다 설명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제목은 캐릭터들의 감정을 축소시키지 않는다.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 알았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사적인(작은) 두려움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크고 넓은 범위의 감정이다. 두려움을 포함해서 두근거리는 마음, 상처를 입은 마음,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그런 모든 종류의 마음을 포함한 순수한 의미의 마음(pure heart)이란 뜻이다. 제목으로도 간단해서 좋았다. 마음은 삶의 동력이고 그것은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한다.

-<지난해 마리엥바드에서> 이후 45년 만에 다시 이 자리에 온 소감이 어떠한가. 게다가 당시 베니스영화제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는데. 다시 와서 기쁜가. =일단, 당연히 기쁘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그때 베니스에서 별난 경험을 했다. <지난해 마리엥바드에서>의 상영이 시작되고 40분쯤 지났을 때 관객이 발로 바닥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고 크게 웃고, 아우성이었다. 영화 상영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 반응은 나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폭력이었다. 그런데 영화관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다른 모든 소리가 멈출 때까지 박수가 계속됐다. 나는 감독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더이상 감독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베니스에도 오지 못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일의 결말이 어떻게 됐는지 아는가. 그 영화가 그해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 보면 알코올 중독자와 종교적인 사람 등 온갖 종류의 다양한 인간들이 한데 섞여 서로 관계를 만든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당신의 견해로 고독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 =매우 복잡한 질문이라서 제대로 대답하려면 오늘 오후를 다 보내야 할 것 같다. 어쨌거나 내 캐릭터들은 늘 최선을 다한다. 끊임없이 노력해서 그들에게 주어진 것들을 바꾸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달라질 수 있다. 우린 종종 우리 운명이 이미 정해진 것이라고 하지만 인생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사람을 앞으로도 결코 만날 수 없다면 그때에는 운명이 정해진 것이다.

-연극을 원작으로 했다. 영화와 연극의 차이는 무엇인가. 영화로 옮기면서 어떤 점에 노력을 기울였는가. =(왜 이런 무용한 질문을 하는 것일까 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느 것과 어느 것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언어와도 비슷하다. 우리는 언어가 모두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공부를 하고 말을 사용하다보면 비슷한 감각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논란 자체가 영화와 연극 모두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연극의 예술적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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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지원 김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