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는 프랑스에서 선보인 지 8개월 뒤 멕시코에 클로드 페느낭 봉 베르나르(Claude Fernand Bon Bernard)와 가브리엘 베이르(Gabriel Veyre)를 파견하여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영화를 상륙시켰다. 당시의 멕시코 대통령이던 포르피리오 디아스(Porfirio Diaz)의 모습을 담는 것으로 시작된 멕시코 영화사는 10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유럽과 미국와의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나갔다. 멕시코는 때로는 에이젠슈테인과 루이스 브뉘엘 같은 유럽의 감독들에게 영화 제작을 위한 정신적인 영감과 현실적인 환경을 제공하기도 했고, 알폰소 아라우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같은 감독들은 자국 내에서의 성공을 할리우드에서까지 이어가고 있다. 9월16일부터 20일까지 나흘간 서울아트시네마와 멕시코 대사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7회 멕시코영화제는 간소하게나마 이런 멕시코 영화사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하다.
페르난도 데 푸엔테스의 1936년작 <가자, 판초 비야와 함께!>(Vamonos con Pancho Villa!)는 멕시코 영화사에서 주류영화로는 처음으로 멕시코 혁명을 다룬 영화로 꼽힌다. 에이젠슈테인의 <비바 멕시코>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멕시코 혁명 당시 북부 게릴라군이었던 판초 비야군에 합류하게 된 6명의 농민들을 다루고 있다. 1930년대 멕시코의 모든 문화적 활동은 멕시코 혁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혁명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가 당시 문화계와 지성계의 화두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혁명에 대한 낭만적인 시선이나 무조건적인 동조를 배제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객관성을 획득한다. 독재정권은 분명 민중을 억압하는 존재로 그리고 있지만 혁명군 역시 절대적인 선으로 묘사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쓸쓸하게 판초 비야의 진영을 떠나는 농민의 모습을 담고 있는 엔딩과 세월이 흐른 뒤 다시 혁명군과 조우하게 되는 농민의 가정에 찾아온 비극이라는 두 가지 결말을 마련하고 있는데, 두 가지 모두 혁명군의 목적지향적이고 비인간적인 면모를 폭로하고 있다.
알베르토 고트의 <모험가>(1949, Aventurera)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엘레나라는 여성이 어느 날 어머니의 외도와 아버지의 자살을 한꺼번에 겪으면서 카바레의 댄서로 전락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웰메이드 멜로영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누아르적인 색채와 뮤지컬의 화려함을 동시에 선보인다. 엘레나 역의 니논 세비야의 아름답고 현란한 댄스와 이에 어우러지는 라틴음악은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며, 그녀를 둘러싼 음모와 복수의 플롯은 드라마틱한 재미를 선사한다. 멕시코 카바레영화의 전형적인 틀 안에서 할리우드 장르의 규칙들이 어떻게 유지되고 변주되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스페인에서 태어난 브뉘엘은 50살이 다 된 나이에 멕시코에 도착한다. 파리와 할리우드를 거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세계를 구축했던 이 거장은 멕시코에서 빠른 속도로 많은 저예산영화를 찍었다. 그 가운데 세 번째 작품이 1950년에 만들어져 51년 칸의 감독상을 거머쥐게 한 <잊혀진 사람들>(Los olvidados)이다. 멕시코의 빈민가 아이들의 삶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는 이 영화는 브뉘엘의 정치지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꿈과 환상 장면들을 통해 특유의 상징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색채까지도 담아낸다. 브뉘엘은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이 현실의 비참함에 눈뜨게 만드는 것은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라 사실의 적확한 포착임을 확인시켜준다.
카를로스 카레라의 <벤자민의 여자>(La mujer de Benjamin)는 90년대 새롭게 대중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멕시코영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골 마을에서 누나와 식료품점을 하는 벤자민이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이 영화는 소시민들의 욕망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카레라의 단편애니메이션 <히어로>(El heroe)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르네 카스티요의 애니메이션 <원조 없음>(Sin sosten), <뼛속까지>(Hasta los huesos)와 이냐리투 감독 작품의 작가로 활동하는 기예르모 아리아가의 단편 <로헬리오>(Rogelio) 등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