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년대라는 시절에 대한 할리우드의 가장 훌륭한 연대구분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은 유일무이한 내러티브 패턴을 가지고 있다. 엄혹하고 힘들었던 제작환경을 이만큼이나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이것은 희열에 가까운 경이로움과 무시무시한 회의주의로 감상해야 할 영화다.
<지옥의 묵시록>은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된 지 1년이 채 안 돼 제작에 착수됐다. 1979년 여름 개봉됐을 때, 이 영화는 미국 역사상 남북전쟁 이래 가장 충격적이었던 에피소드를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결정한 정치인들 못잖게, 코폴라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데에도 엉뚱한 계기가 있었다. 그 스스로는 나름대로 매우 고귀한 작업이라고 믿은, 자신의 조트로프 스튜디오를 만들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역시 미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코폴라 역시 그 스스로가 자신의 결정과 행동에 대해 당황하게 됐다. 또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불미스런 독재자들에게 은혜를 입었으며,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서사적 수렁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또한 코폴라는 자신의 하급자들에게 아주 엄격했다. 그는 하비 카이틀을 해고했으며 그의 후임자인 마틴 신을 심장마비로 몰고갔다. 그리고 마치 닉슨처럼, 코폴라는 그의 엄청난 광시곡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비이성적인 정신이 주기적인 광적 발작을 또 시작하자 그는 말론 브랜도를 고용하고 구원자 역할을 기대하며 불러왔다. 그가 도착할 때쯤 해서는 뭔가 클라이맥스라고 부를 만한 것이 일어나기를 기도했던 것이다. 브랜도를 쫓아나서는 데 대부분이 소요되는 마틴 신의 캐릭터는 그의 감독을 대변하는 듯한 한마디를 한다. “내가 그를 찾아낸 뒤 뭘 할 건지 난 실은 정말 몰랐다….”
그로부터 22년 뒤 다시 개봉하면서 53분가량의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이고 영광의 표식인 양 ‘리덕스’라는 꼬리표를 얹은 이 영화는, 마치 섬뜩하고 끔찍한 ‘귀신의 집’에 놀러온 양, 너무나 무모해서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믿을 수 없는 그런 영화가 됐다. 아마도 이런 방식으로 이 영화는 베트남전을 그대로 반복해 요약하고 있나보다. 물론 나의 어떤 부분이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중에서 좋아하는 대목도 있다. 푸르고 금빛나는 수풀 위로 오렌지빛 불길이 겹쳐지는 대목인데, 이것은 스탠리 카우프먼이 다 들어내버렸던, 정글 디스코텍장면이다. 그리고 짐 모리슨의 ‘This is the end’라는 노래가사가 나오며 열을 지어선 나무들이 폭파하는 대목은 영화사상 가장 훌륭한 음악 싱크 중 하나일 것이다(나는 초짜 영화평론가로서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지그펠트 극장 셋쨋줄에 앉아 이 장면을 보던 때의 충격을 영원히 못 잊을 것이다).
되살린 부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두 장면은, 태풍으로 풍비박산이 된 세트에서 찍은 것이 분명해보이는, 버니와 만나는 장면과 프랑스인들의 플랜테이션 농장장면이다. 여기서 나오는 한 대사는 정말 심금을 울린다. “당신 미국인들은 인류역사상 가장 거대한 무(無)를 위해서 싸우는 거요!” 이것은 이 영화에도 얼마나 어울리는 말인가.
브랜도가 나오는 모든 장면들은 다 실패다. 상상력도 실패고 대사도 그렇다. 단 하나 새겨둘 만한 좋은 대사는 이것이다. “너는 식료품점 직원들이 보낸 심부름꾼 소년이다. 계산서를 받아가는 것이 네 일이다.” 그의 나머지 대사들은 도어즈 노래 중 상당히 별로인 어떤 곡의 가사와 닮아 있다(“나는 날카로운 면도날의 끄트머리를 기어오르는 달팽이를 보고 있었다….”). 또는 그보다도 못하다. 데니스 호퍼의 바위같이 굳은 낄낄거림과 괴짜행각은 분위기를 좀 밝게 만든다. 코폴라가 이 장면들을 다 편집해버리라고 요구할 만큼 미쳐 있지는 않았다는 건 참 유감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리덕스>는 브랜도가 <타임> 잡지를 크게 읽어대는 장면을 더함으로써, 고문의 길이를 더욱 늘려놓았다.
최초의 상영 이래로, <지옥의 묵시록>은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엔딩을 선보였다. <…리덕스>는 70mm “평화”버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이걸 대체 뭐라 해야 할까? 마조히즘적인? 유령을 보는 듯한? 절망적인? 이전의 모든 버전들과 마찬가지로, 코폴라는 강박적으로 브랜도의 불쌍한 목소리로 내뱉는 “공포, 아아, 그 공포”(the horror, the horror)를 반복해댄다. 이 세상 그 무엇도 이 영화의 마지막 40분을 빛으로 밝혀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최고의 공포는 아닐지 모르지만, 바로 실제 공포, 진짜 공포인 것이다.(<빌리지 보이스> 20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