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힘을 빼. 겁먹지 마. 절대 안 무서워. 숨을 크게 들이쉬고….” 28살 되던 해에 갑자기 무병(巫病)을 앓게 된 황인희씨는 대무(大巫) 이해경을 찾아온다. 30여년간 암을 비롯한 온갖 무병으로 고통받아온 손영희씨가 대무 이해경을 찾아온다. 갑자기 왼쪽 눈을 실명한 뒤로 신을 보게 된 영험한 소년 김동빈이 대무 이해경을 찾아온다. “내림굿 할 때까지도 난 안 한다고, 무당 안 한다고 울부짖었다니까….” 대무 이해경은 갑자기 찾아든 숙명을 어쩌지 못해 주저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거둬들인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서성이는 그녀의 삶 또한 한 꺼풀씩 드러난다. 무속인을 다룬 이색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영매: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가 떠오르지만, 접근방식은 상이하다. 인물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하되, 대상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Q채널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 시카고 예술학교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한 이창재 감독의 데뷔작. “손에 신이 그려준 운명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이에서>가 안내하는 무속의 또 다른 세계는 의지를 맹신하는 인간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진짜 무속인 이해경
“20대부터 60대까지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출중한 외모라 선택했다.”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재 감독은 대무(大巫) 이해경을 주인공으로 삼은 까닭에 대해 농담으로 응했지만, 사실 말처럼 간단한 인연은 아니다. 이창재 감독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앞서 만난 무속인은 모두 60여명에 이른다. 무엇보다 진짜 무속인을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러나 무속에 대한 약간의 관심으로 그걸 가려내기란 쉽지 않은 일. 결국 이창재 감독은 종교학과 교수 등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아 황해도굿 전문가 이해경을 택했다. 진도굿, 서울양반굿 등과 달리 황해도굿은 “옛부터 험한 뱃사람을 상대로 하기에 단조롭지만, 전투적인데다 가짜가 자리잡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해경 선생은 돈이 없는 이들에게는 때때로 공짜 굿도 마다않는다. 아픈 이들을 외면하면 자신의 몸이 먼저 아프기 때문이다.” 진짜 무속인을 만나 치러야 하는 대가도 컸다. 촬영 때에도 감독이 굿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찍고 있으면 화를 냈고, 편집 때는 굿을 소재로만 접근했다며 자신의 출연 분량을 모조리 회수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