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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 <시간>
이종도 2006-08-24

세희(성현아)는 남자친구 지우(하정우)가 자신을 지겨워한다고 느낀다. 세희는 사랑을 되찾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그 방법은 성형수술을 해서 자신의 얼굴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세희는 종적을 감춘다. 지우는 휴대폰도 정지시키고 집도 이사한 세희를 찾아다닌다. 다른 여자를 만나기도 하고 옛사랑에 빠져보고 싶기도 하지만 지우는 세희를 잊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만 확인한다. 세희와 추억을 나눈 섬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얼굴을 천으로 휘감은 여인을 만난 지우는 새로운 사랑의 희열을 느낀다. 그러나 지우는 이 낯선 여자 새희(박지연)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지우는 세희의 흔적이 발견되자 새희에게 헤어지자고 하고, 새희는 세희의 존재에 절망감을 느낀다. 새희는 또 성형외과를 찾아간다.

여기서 시간은 일정 구간 사이의 경과 시간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가깝다. 얼굴을 바꾸기 전까지의 시간. 얼굴을 수술해서 바꾼 뒤의 시간. 그 두개의 시간은 이어져 있는 것 같지만 두개의 시간들은 이어지지 않는다. 또는 이어지게끔 이해되지 않는다. 지우는 새희와 세희가 같은 사람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는 성형수술을 거쳐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또는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다가,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돌아간다고 할 수 있을 때 그 돌아간 나는 예전의 진짜 나인가? 마치 심각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 같지만 김기덕 감독은 구체적인 이미지들과 구체적인 상황을 들여온다. 이것은 사랑의 지겨움이나 운명의 지겨움을 벗어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지우(하정우)에게 내가 지겨운 거냐고 절망하며 세희가 이불을 얼굴에 칭칭 감는 이미지. 얼굴 없는 얼굴. 얼굴을 바꾸면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는가. 또 나를 사랑하는 연인이 질리지 않고 나를 사랑하게끔 할 수 있는가. 정말 소름끼치는 무서운 질문이고, 누구나 떠올렸음 직한 괴로운 질문이다.

촬영지 모도

영화에서 눈길이 가는 조각들로 가득한 섬 이름은 모도다. 두 연인이 헤어지고 만나고, 또 만나고 헤어지는 영원한 정박지 같은 곳이다. 영종도 북쪽 삼목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10분 거리의 섬으로 신도, 시도, 모도 세섬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시도는 <풀하우스>, <슬픈 연가> 등의 드라마를 찍은 곳으로 세트장이 남아 있다. 모도는 시도와 다리로 이어져 있다. 세섬 중 가장 작은 모도는 조각가 이일호씨의 작업실로 유명하다. 이일호씨는 자신의 작업실 앞 잔디밭에 20~30점의 조각을 설치했다. 다 합해봐야 30가구를 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섬이다.

드디어 입 연 김기덕 감독

김기덕 감독은 한국에서의 <시간> 개봉에 대해 “한국이 <시간>을 판매한 30개국 중 한 나라일 뿐”이며 “어쩌면 <시간>이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제 영화가 될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어떤 영화제에도 영화를 출품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그는 “13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그 영화들 대부분에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관객 숫자의 부가가치가 아니라 한국 영화 관객들이 제 영화를 받아들이는 이해의 부분에서 제가 부가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인지도 모르겠습니다”라며 관객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 감독은 마지막으로 “20만은 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제 생각이 조금 바뀔 수도 있겠죠”라며 아직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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