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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 대한 우화,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

중·고등학교 시절에 유행하던 공포 이야기 중 만년 전교 2등이 전교 1등을 제거하고 전교 1등의 혼령에게 복수를 당한다는 레퍼토리가 있었다. ‘전교 2등만 돼도 어디냐’, ‘죽이는 방법 고민하는 시간에 공부하면 충분히 전교 1등 되겠다’라는 자조 섞인 빈정거림이나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전교생을 일렬로 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권위인 ‘성적’에 짓눌려 있던 때라 전교 2등의 마음에 대체로 어느 정도는 공감했던 것 같다. 사회로 나오면 ‘성적’이라는 기준에서는 다소 자유로워지지만, ‘취업’이라는 또 다른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취업’이란 결국 한 인간이 얼마만큼의 경제적 가치를 갖느냐를 보여주는 잣대이며, 직함과 연봉이 한 인간의 삶과 인격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트> <미싱> <뮤직박스> 등을 통해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슈들을 영화를 통해 담아냈던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이번 영화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에서 ‘취업’ 문제를 통해 자본주의 생리를 해부한다. 한 회사에서 15년간 근속했던 성실하고 능력있는 제지업 전문가 브뤼노 다베르(호세 가르시아)는 정리해고로 직장을 잃는다. 그의 전문적인 지식과 뛰어난 실적 때문에 회사 동료들은 물론 그 자신까지도 재취업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지만, 2년간 실업 상태가 계속되면서 그는 자신감과 의욕을 상실하고 신경질적이고 무능한 가장으로 전락한다. 도대체 자신이 취직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브뤼노는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기로 마음먹는다. 그것은 자신이 자리를 미리 꿰차고 있는 ‘아카디아 제지회사’의 간부를 제거하고, 자신의 경쟁상대가 될 법한 유능한 지원자들을 없애는 것이다. 그는 가짜 제지회사를 만들어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받아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이들을 선별해 살인명부를 만든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저장하라며 선물받은 디지털 녹음기에는 이제 브뤼노가 취업을 위해 저지른 살인에 관한 처절한 고백이 녹음된다.

이 작품은 시나리오 작가이자 추리, 범죄 소설가인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를 영화화한 것으로, 감독은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담고 있던 원작을 프랑스로 무대를 옮기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그 체제 안에서 왜곡된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인간 군상들을 비판하는 블랙코미디로 완성시켰다. 주어진 업무를 질적으로 훌륭하게 완성시킬 수 있는 숙련된 기술자보다는 저임금으로 단기간 부려먹을 수 있는 노동자를 선호하는 고용주들 앞에서 연륜과 기술은 무용지물이 된다. 기업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삶과는 무관하게 생산성과 효율성만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기업의 합병과 구조조정, 그 결과 노동자들에게 강요되는 선택들.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들은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돼 있으면서도,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브뤼노의 신경증은 실상 이런 부조리한 논리에서 비롯됐지만, 그의 공격성은 기업을 향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자신의 동료나 가족을 향해 발현된다. 브뤼노가 살인명부에 올린 실직자들은 그와 똑같은 피해자들이므로, 그들을 죽인다고 해서 그야말로 살인적인 자본주의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는다. 다만 수레의 바닥에서 중간쯤 어딘가로, 혹은 맨 위로 순간적인 위치 이동이 있을 뿐이다.

감독은 이러한 메시지를 영화 곳곳에 배치해놓았다. 우선 브뤼노가 살인행각을 벌이거나 구직을 위해 여기저기로 이동할 때마다 배경을 이루는 다양한 간판들을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매우 선정적인 광고사진 속에서 모델의 벌거벗은 육체는 다양한 상품들과 뒤얽혀 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소비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자신이 소비의 주체라고 착각하지만, 결국 이 사회 안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매매의 대상은 인간의 육체이다. 그리고 브뤼노가 손에 타인의 피를 묻혀가면서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기업에 자신을 확실하게 팔아넘기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가장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브뤼노가 아내 마를렌(카렝 비야)과 상담을 받는 장면이다. 자신이 저지른, 혹은 저지를 살인과 아내의 불륜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한 브뤼노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가 카운슬러의 집요한 추궁 끝에 자신의 분노와 좌절감을 폭발시킨다. 브뤼노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아내가 위로하려고 하지만 그는 “당신이 나에게 직업을 줄 수 있어?”라는 한마디로 거절한다. 그는 일을 통해서만 행복해질 수 있고, 일을 가져야만 완전한 인간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노동은 그의 삶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 아니라 삶 전체이며, 그 자신이기도 하다.

실직과 동시에 경제권을 상실함으로써 가장의 지위가 흔들렸던 브뤼노가 그것을 다시 획득하는 계기들은 매우 비윤리적이고 비사회적인 방식을 통해서이다. 그는 실직 뒤 신경질적이고 무관심한 태도 때문에 잃었던 가족들의 애정을, 아들이 저지른 절도의 증거들을 은닉해주면서 회복한다. 또 연쇄살인을 통해 직장을 획득함으로써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제공하는 능력있는 가부장으로 돌아간다. 결국 감독은 아주 평범한 듯 보이는 중산층인 브뤼노 가족이 도달한 행복이 범죄 은폐와 살인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아이러니한 결론을 통해 현대의 폭력적인 경제·사회적 구조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고 볼 수 있다. 브뤼노의 살인명부는 비틀린 욕망과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로 가득한 현대사회에 대한 일종의 우화이다. 관객은 목적지향적인 브뤼노를 통해 어떻게든 체제에 적응하려는 인간이 겪게 되는 윤리적 타락의 과정을 목도하는 동시에, 각양각색의 피살자들에게 접근함으로써 실업의 구체적 양상들을 마주하게 된다. 브뤼노는 행복해지지만, 그것은 현재일 뿐이다. 그의 뒤에는 너무나 많은 브뤼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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