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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남다은이 <비열한 거리>를 비판하는 이유

물신화된 폭력은 있으나, 인간은 없다

<비열한 거리> 최대의 화두는 이런 것이다. ‘폭력을 미화하지 않는 조폭영화’ 나아가 ‘폭력을 사유하는 영화’. 이건 평단의 반응이기도 하지만, 유하 감독이 누차 강조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 영화 속 싸움장면의 처절한 사실성을 이야기한다. 혹은 영화가 폭력성을 조폭에 가두지 않고 인간 욕망의 네트워크 속으로 확장시킨 것에 대해, 현실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의문이 생긴다. 사실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것을 폭력에 대한 사유와 쉽사리 동일시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영화 속에서, 사실적인 액션은 도대체 얼마나 ‘사실적’인가? 왜 우리는 이 불가능한 ‘사실성’을 숭배하고 그것으로 영화의 정치성을 판단하는가?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오직 하나다. 영화 속의 감독인 민호의 이야기. 두명의 유하가 존재한다. <비열한 거리>를 만드는 감독 유하와 <남부건달 항쟁사>를 만드는 감독 유하(민호). 한명의 유하는 영화 밖에 있고 다른 한명의 유하는 영화 안에 있다. 한명은 액션의 사실성과 영화의 현실성을 말하고 다른 한명은 조폭의 생활을 취재하고 녹음하고 그걸 그대로 베낀다. 한명은 영화의 냉혹한 사실성을 통해 폭력성의 진실에 도달했다고 평가받고 다른 한명은 병두와 황 회장을 둘러싼 숨겨진 진실, 말하자면 진짜 조폭들의 현실을 그대로 재연했다고 처벌받는다(하지만 그걸 계기로 재도약한다).

어떤가? 말장난 같지만, 둘은 동일한 인물인가? 유하의 진실과 유하(민호)의 진실은 같아 보이는가? 정성일은 유하는 “민호의 자리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씨네21> 558호). 그는 이 영화가 “병두의 자리에서 민호를 보는”, 다시 말해 “조폭의 자리에서 쳐다보는 충무로에 관한” 영화라고 지적했다. 물론 수긍할 만한 지적이지만, 나는 일단 이 영화가 병두의 이야기가 아니라 민호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 밖 유하가 자신(충무로)을 바라보는 타자(조폭)를 바라보는 영화를 만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러한 이중의 바라보기를 다룬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오히려 조폭을 그리면서 자기 반성적인 길을 택한 조폭영화의 한 예가 되었을 것이다. 유하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유하의 시선은 조폭성을 소비하며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민호, 그러니까 또 다른 자신에게 향해 있다.

그렇다면 다시 위의 질문에 대하여. 영화의 중반 정도까지, 그러니까 민호가 여우의 탈을 쓰고 친구의 사생활을 엿듣고, 엿보고, 내밀한 고백을 유도할 때까지만 해도 민호는 유하였다. 영화 밖 유하와 영화 속 유하(민호) 사이에는 경계가 부재했다. 유하는 민호를 통해 자기 안의, 나아가 <비열한 거리>라는 영화의 태생적 폭력성을 마주하려고 애쓰고 있는 듯했다. 조폭들의 대화가 담긴 녹음기를 틀어놓고 그대로 베끼는 민호의 모습은 마치 유하 자신의 취재 방식, 나아가 창작력에 대한 조롱처럼 느껴졌다. 조폭의 폭력성을 사유한다는 빌미로 그 조폭성을 착취하는 자의 비애. 거기에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자기변명이 함축되어 있더라도 그건 자신의 결핍을 회피하지 않는 자의 태도에 가까웠다. 그때까지 유하라는 감독은 민호없이 존재할 수 없는 자이며, <비열한 거리>는 <남부건달 항쟁사> 없이 태어날 수 없는 영화임을 유하는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후반부, 민호가 자신에게 모멸감을 준 자가 병두라고 확신하며 극단적인 증오감에 휩싸이는 순간부터다. 민호는 더이상 감독 유하의 분신이 아니라, 그저 수치심에 치를 떨며 복수심에 사로잡힌 ‘나쁜 친구’가 되어 유하로부터 떨어져나간다. 민호는 폭력의 메커니즘에 휩쓸린 수많은 인간들 중 하나가 된다. 이야기는 갑자기, 냉정한 폭력의 논리 속에서 우정, 진실이란 애초 가능할 수 없다는 폭력에 대한 보편적이고 냉소적인 진실로 건너뛴다. 영화 속에서 감독 유하(민호)와 <남부건달 항쟁사>는 돌연 그렇게 자취를 감춘다. 특정 인물에 갇히지 않고 인간세계를 장악한 익명적 폭력성의 비열한 생리만으로 영화는 검게 드리워진다. 그러므로 유하가 이 영화를 “조폭성을 소비하는 인간들”에 관한 영화라고 했을 때, 이 “인간들” 속에는 결국 인간도, 유하도 없다. ‘사실성’이라는 좀더 교묘해진 ‘스타일’에 의해 또다시 물신화된 폭력의 세계. 이 영화의 가장 무시무시한 진실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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