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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즐겁게 보기만 하면 되는 서부극, <밴디다스>

부의 불평등한 분배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억압받는 이들의 계급의식을 고취하고, 노동자 여성 인종을 넘어선 계급간 동맹을 맺은 뒤 사회 체제를 전복한다. 의도는 좋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단계들을 거치는 동안 굶주리고 있는 백성의 배는 누가 채워줄 것인가? 어쩌면 가난한 이들이 가장 바라는 혁명가는 이상적인 사상가나,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성인군자가 아니라 홍길동처럼 부자들의 곳간을 털어 가난한 이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해줄 의로운 도적일지도 모른다. 영화 <밴디다스>는 멕시코의 가난한 서민들의 재산을 강탈해간 해외 자본, 미국 은행을 털어서 민족과 국가의 번영을 도모한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설정에서 시작한다. 물론 시간적 배경은 복잡한 사법체계와 국제적인 협조 수사망이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서부 시대이다.

유럽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부잣집 딸 사라(샐마 헤이엑)와 가난한 농촌 처녀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즈)는 첫 만남부터 티격태격한다. 하지만 철도 건설을 위한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멕시코 농민들의 농토를 빼앗는 미국 은행에 의해 농토를 잃은 마리아와 아버지를 잃은 사라는 어쩔 수 없이 손을 잡는다. 그들은 신부님의 추천으로 베테랑 은행털이 빌 벅(샘 셰퍼드)을 만나 그에게 특수훈련까지 사사받은 뒤 멕시코 각지를 돌며 미국 은행을 턴다. 그들의 목에 걸린 현상금은 점점 커지고 급기야 미국에서 과학수사로 정평이 난 퀸틴 쿡(스티브 잔)이 급파된다. 그러나 퀸틴은 그녀들의 박애정신 혹은 달콤한 키스에 매료되어 사악한 자본가 집단에 저항하는 정의로운 강도단(밴디다스)에 휘말리게 된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관계지향적’인 존재라고 한다. 마리아와 사라가 미국이라는 대자본의 횡포로부터 농민을 지켜내기 위해서 결심하는 것도,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도 ‘국가’나 ‘민족’ 같은 숭고한 가치를 지켜야겠다는 의지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두 여성간의 미묘한 우정 때문이다. 옆에 있는 앙큼한 계집애에게 질 수 없어서 더 정확하게 총을 겨누고, 더 날카롭게 칼을 던지고 더 정열적으로 남자에게 키스한다. 이미 완성된 그녀들의 실력을 알고도 “그냥 너희들하고 노는 게 즐거워서” 붙잡아두었던 샘 셰퍼드의 대사처럼, 이 영화는 두 여자가 신나게 노는 걸 즐겁게 보기만 하면 된다. ‘델마와 루이스’가 인상적이지만 안타깝게 절벽으로 추락했던 것과 달리, ‘사라와 마리아’는 신나게 평원을 질주하며 비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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