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에서 깨어난 동물들은 천지가 개벽했음을 깨닫는다. 인간들이 겨울 동안 숲을 개간해 교외 주거지를 건설한 것이다. 이제 숲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 울타리(hedge)로 둘러싸인 도시 속의 섬이 되어버렸고, 동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될 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 경험 많은 너구리 ‘알제이’(브루스 윌리스)가 나타나 인간들로부터 음식을 훔치자고 제안한다. 꺼림칙해하는 거북이 ‘번’(게리 샌들링)과는 달리 다른 동물들, 주머니쥐 부녀, 고슴도치 가족, 스컹크와 다람쥐는 처음으로 맛본 인간의 음식에 반해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마을의 부녀회장은 잔인한 동물 포획 전문가를 고용해 동물들의 생명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CG애니메이션계의 기술적인 발전은 기술적인 평등 또한 가져왔다. 얼마나 새로운 애니메이션 기법이 얼마나 잘 사용되었냐는 보도자료의 글귀들은 의미가 없어졌고, CG애니메이션 역시 맞춤 기성복에 다름 아니다. <헷지> 역시 별다른 야심없는 상업적 태도를 견지한 드림웍스의 기성품 CG애니메이션이다. 머천다이즈 상품으로 만들어내기 좋은 동물 캐릭터들이 등장해 고난과 오해를 극복하고 즐겁게 고향에 머무르기까지, 76분의 단출한 상영시간이 경쾌한 리듬으로 흐른다.

<헷지>를 ‘드림웍스적’인 기성품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는 것도 크게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드림웍스는 픽사, 디즈니나 폭스의 스카이 스튜디오로부터 스스로를 특징화하기 위해 조금 더 성인 취향의 유머감각을 전략적으로 심어두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헷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너구리 알제이가 동물들에게 교외 도시생활의 안락함을 동물의 시각으로 설명하는 장면이다. 그에 따르면 전화기는 음식을 주문하기 위한 기계이고, 자동차는 음식을 배달하기 위한 기계이며, 다이어트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먹기 위해 벌이는 행위다. 결국 사람이란 족속들은 식욕을 더욱 간편하게 충족하기 위해 문명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문명의 안락함에 빠진 동물들은 변해간다. 새끼 고슴도치들은 피자만 먹고 살겠다 떼를 쓰고, 카페인과 타우린이 잔뜩 들어간 에너지 드링크를 마신 다람쥐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다닌다. 이렇게 미국 교외생활을 슬그머니 비꼬는 솜씨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치킨 런>의 각본을 썼던 공동감독 캐리 커크패트릭의 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