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폭력의 거장’ 와카마쓰 고지의 영화는 철저하게 60년대적이다. 혁명의 열기로 들끓었던 60년대의 카오스를 말하기 위해서 성과 폭력과 정치는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유를 위해서는, 저예산의 핑크영화가 되어야만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범해진 백의> <가자, 가자 두 번째 소녀> <적군-PFLP:세계전쟁선언> <천사의 황홀> 등은 동세대 청년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끌어냈고, 와카마쓰 고지의 영화는 시대의 전설이 되었다. 와카마쓰 고지의 영화는 기존의 어떤 질서와 관습에도 복종하지 않고, 혁명의 열정을 담아 만든 폭탄이었다.
1936년에 태어난 와카마쓰 고지는 고등학교 2학년에 가출하여 도쿄로 상경한다. 신문배달과 야쿠자 등 사회 밑바닥을 거쳐 핑크 영화계로 들어간 와카마쓰 고지는 63년 <달콤한 함정>으로 데뷔한다. 65년 <벽 속의 비사>가 베를린영화제에 소개되어 논란을 빚은 뒤, 와카마쓰 고지는 좌파 활동가였던 오키시마 이사오, 아다치 마사오, 야마토야 아쓰시 등과 영화작업을 함께한다. 인텔리의 합세로, 와카마쓰 고지의 영화는 관념색이 짙어진다. 하지만 노골적인 정치선언들도, 와카마쓰 고지의 격렬한 에너지와 함께 존재할 때는 묘한 설득력을 지닌다. 와카마쓰 고지는 관념보다 행동이 앞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세계를 묘사하는 데 열정을 쏟는 예술가였다. 밀실극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면서도, 밀실을 넘어서는 풍경을 통해 시대의 초상을 그려냈던 와카마쓰의 영화는 ‘세계관이 담긴 추상화로 될 때 와카마쓰의 영화는 빛난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와카마쓰 고지의 영화에는 ‘풍경과 섹스의 오버랩’이 자주 등장한다. <처녀 게바게바>와 <가자, 가자 두 번째 처녀>처럼 열린 공간이 오히려 밀실로 그려지기도 한다. 내밀한 섹스가 순수한 자연의 풍경과 오버랩되는 것처럼, 무소불위 좌파 활동가들의 혁명 활동은 비상구없는 밀실 속의 유희로 그려진다. 와카마쓰 고지는 단정을 내리기보다는 그 모든 것을 하나의 풍경으로 그려낸다. 와카마쓰 고지의 영화는 선전보다 선동에 가깝고, 카오스 전체를 포용한다. 와카마쓰 고지의 영화들에 깔리는, 프리재즈의 자유롭고도 파격적인 선율처럼.
와카마쓰 고지는 왕성하게 연출을 하는 동시에, 1965년 와카마쓰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제작에도 능력을 발휘했다. 자신의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물론, 시대가 진정되던 70년대 후반부터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을 비롯하여 야마시타 고사쿠의 <계엄령의 밤>(1980) 등 문제작을 만들어냈다. 와카마쓰 고지 역시 <성모관음대보살>(1977), <13인연속폭행마>(1978) 등의 문제작을 만들어냈고, 82년에는 <물이 없는 풀>로 ‘인간의 내면을 선명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핑크영화가 아닌 일반영화 감독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폭탄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와카마쓰 고지는 영화라는 표현을 통해 싸우고 있다. 60년대의 시선으로, 전공투의 발걸음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와카마쓰 고지 초기 걸작선’에서는 <벽 속의 비사>부터 <천사의 황홀>까지 격동의 시대를 증언해주는 초기 걸작 12편과 초기 영화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는 2005년작 <17세의 풍경: 소년은 무엇을 보았나>가 상영된다.
성과 폭력의 광란의 질주
와카마쓰 고지의 세계 보여주는 초기 걸작 12편과 2005년작 <17세의 풍경…>
와카마쓰 고지는 “어른들의 유희, 어른들의 첫 번째 장난감”으로 자신의 영화작업을 설명했다. 이번에 상영되는 12편은 그의 유희가 얼마나 강렬한 것이며, 그 장난감이 얼마나 정치적인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와카마쓰 고지의 대표작 <적군 PFLP: 세계전쟁선언>(1971)을 비롯하여 1972년작 <천사의 황홀>까지 60, 70년대에 만들어진 11편의 작품과 2005년 신작 <17세의 풍경: 소년은 무엇을 보았는가?>를 모두 소개한다.
<벽 속의 비사>(1965) 황막한 아파트 단지. 한 수험생이 날마다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유부녀를 훔쳐본다. 원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애인과 유부녀가 벌이는 정사를 몰래 지켜보며 자위행위를 하는 수험생. 광기에 사로잡힌 수험생은 마침내 맞은편 아파트로 찾아가고, 유부녀를 강간한 뒤 살해한다. 성장제일주의의 상징이었던 아파트 단지를 무대로, 중산층의 나른한 일상과 변절한 좌익의 기만 등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성과 폭력’이라는 와카마쓰 고지 영화의 낙관이 확실하게 드러난 화제작. 당시 베를린영화제에 공식 출품된 일본영화를 제치고 선정되었지만, 일본 내에서는 ‘일본을 욕보이는 영화’로 비난받았다. 반면 젊은이들에게는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태아가 밀렵할 때>(1966) 한 남자가 여자를 유인하여 맨션에 감금한다. 채찍으로 때리고, 동물처럼 네발로 기게 하는 등 잔학한 행위를 견디던 여자는 마침내 칼로 남자를 찌르고 도망친다. 남자주인공의 이름이 마르키 드 사드의 이름을 변주한 마루키도 사다오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디즘의 의미를 일본적으로 변형시킨 영화다. 좁은 맨션 안에서 일종의 밀실극으로 진행되는 <태아가 밀렵할 때>는 8일간, 7명의 스탭과 함께, 단돈 210만엔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
<더렵혀진 백의>(1967) 시카고에서 일어난 대량살인사건을 모델로 한 <더럽혀진 백의>는 간호사 기숙사에 들어간 소년의 만행을 그리고 있다. 총을 가진 미소년은 동성애를 하던 간호사를 죽이고, 나머지 간호사들도 차례로 강간하고 학살한다. 밀실에서 벌어지는 학살극은, 개성적인 연극배우인 가라 주로의 광적인 연기를 살리기 위한 롱테이크로 표현되면서 더욱 처절한 기운이 감돈다. 일부분을 컬러로 처리하고, 연극 형식을 빌리는 등 다양한 형식 실험도 보인다. 시니컬하지만, 죽인 여자들을 둥글게 늘어놓고 가운데에서 태아의 모양으로 잠들어 있는 남자의 모습은 아주 편안해 보인다. 마지막, 기동대의 진입장면이 그 평온을 깨는 폭력으로 느껴질 만큼. 와카마쓰 고지 영화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초기작.
<광란의 질주>(1969) 전학련 활동가인 남자가 집으로 돌아가, 형사인 형과 싸운다. 둘의 싸움을 말리던 형수는 실수로 총을 발사하여 형을 죽인다. 시체를 버려두고 도망친 남녀는 도호쿠로, 홋카이도로, 끊임없이 북쪽으로 올라간다. 계속해서 살인의 의미를 묻던 두 사람은, 죄의식을 달래기 위해 섹스를 하게 된다. 그리고 남자는 아이처럼 펑펑 운다. 하지만 형수의 고향까지 함께 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간다. 눈 위를 발거벗고 달리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고, 두 사람의 도피장면에서 보이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와카마쓰 고지의 영화에서 ‘풍경’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그 시대의 표상으로 그려진다.
<처녀 게바게바>(1969) 야쿠자 보스의 애인과 사랑에 빠진 남자가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을 눈치챈 보스는 연인을 납치하여 황야로 끌고 간다. 여자는 십자가에 매달리고, 남자는 난폭한 여인들에게 놀잇감으로 주어진다. 남자는 겨우 도망치는 데 성공하지만, 그가 다시 만난 사람들은 야쿠자 보스 일행이다. 아무것도 없이 텐트와 십자가 하나만 우뚝 서 있는 황야에서 진행되는 <처녀 게바게바>는 황야 자체가 하나의 밀실로 작용한다. 남자가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성과 폭력이다. 오시마 나기사가 영화제목을 붙였다.
<가라 가라 두 번째 처녀>(1969) 와카마쓰 고지 특유의 성과 폭력이 넘치는, 충격적인 청춘영화. 한 소년이 윤간당하는 소녀를 지켜본다. 아침이 되자 두 사람은 친구가 되고, 하루종일 옥상에서 지낸다. 자신을 죽여달라는 소녀에게, 소년은 이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년은 자신을 학대했던 두 남녀를 이미 죽인 뒤이고, 다시 소녀를 윤간한 청년들을 죽인다. 그리고 함께 투신자살한다. 모든 것이 보이는 옥상을 역설적으로 밀실이라고 말하는 와카마쓰는, 당대 젊은이들의 내면을 예리하면서도 서정적으로 표현한다.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걸작.
<현대호색전: 테러의 계절>(1970) 전학련 활동가인 남자는 아파트 단지에 잠입하여 두 여자와 함께 생활한다. 날마다 정사에만 몰두하는 척하자 도청하던 두 형사가 마침내 철수한다. 그러자 남자는 폭탄을 만들어 몸에 감은 채 총리의 미국방문을 저지하기 위해 하네다공항으로 향한다. 폭력과 테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당대 젊은이들의 정치적인 상황을 뜨겁게 그려낸다.
<신주쿠 매드>(1970) 언더그라운드 극단의 배우였던 아들이 살해당하자, 우체국 직원이었던 아버지가 시골에서 올라온다. 아들이 왜 죽었는지를 밝히려는 아버지는 신주쿠 이곳저곳을 방황한다. 결국 아들의 죽음은 조직 내부의 음모와 배신 때문인 것을 알게 된다. 신주쿠는 당시 일본의 경제 급성장을 증명하는 최고의 번화가인 동시에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반문화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낯선 풍경을 접하는 아버지의 시선을 통해 이미 비등점을 넘어버린 정치와 문화운동의 이면을 파고들어간다.
<성의 도적: 섹스 잭>(1970) 노동자인 스즈키는 수배 중인 학생 활동가 그룹을 숨겨준다. 날마다 노동을 하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스즈키와 달리 학생들은 논쟁을 일삼으며 치고받는가 하면, 장밋빛 연대라 부르는 프리섹스에 열을 올린다. 학생들 앞에서는 어떤 정치적 입장도 드러내지 않지만, 스즈키는 자신만의 테러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긴다. 관념적이며 자기만족적인 학생운동가들의 작태를 결연하게 비판한 작품.
<적군-PFLP: 세계전쟁선언>(1971) 영화의 혁명을 주창했던 아다치 마사오와 함께 만든, 와카마쓰 고지 최고의 문제작. 1971년 칸영화제에 참가한 와카마쓰 고지는 바로 중동으로 날아가, 테러조직이라는 비난을 받던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의 내부를 직접 촬영하여 그 실상을 알렸다. 일본에서 상영될 때에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어 ‘붉은 버스 상영대’가 조직되는 등 적극적인 자주상영이 전개되었다. 이후 1974년 아다치는 팔레스타인으로 향하여 혁명운동에 투신한다.
<성윤회: 죽고 싶은 여자>(1971) 죽을 위기를 겨우 넘긴 두쌍의 남녀가 눈 덮인 온천여관에서 재회한다. 모든 것을 포기한 남녀는 기묘한 사각관계를 이루면서 파국으로 달려간다. 삶의 파토스와 에로스적 열정, 죽음의 타나토스가 뒤엉키면서 섹스와 파시즘의 의미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자위대 궐기를 외치며 할복한, 미시마 유키오를 향한 와카마쓰 고지의 비판적 응답이라 할 영화.
<천사의 황홀>(1972) 팔레스타인에 다녀온 와카마쓰 고지는 고립된 투쟁을 감행하는 개인만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천사의 황홀>은 폭력과 테러에 대한 와카마쓰의 생각을 담은 영화다. 혁명군 ‘사계(四季)협회’의 가을군단은 미군 기지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한다. 그러나 10월이 부상을 당하자, 겨울군단은 가을군단의 무기를 빼앗아 직접 수도 총공격을 시도하려고 나선다. <천사의 황홀>이 공개될 당시, 현실을 예언이라도 하듯 과격파의 신주쿠 트리 폭탄 사건이 발생하여 논란이 일었고, 다른 극장의 상영이 취소되어 아트 시어터 신주쿠 문화(新宿文化)에서 단독으로 상영했다.
<17세의 풍경: 소년은 무엇을 보았는가>(2005) 야구방망이로 어머니를 때려죽이고 도주했던 17살 소년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 <광란의 질주>의 남녀처럼 자전거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만 올라가던 소년은, 청춘과 전쟁 체험을 이야기해주는 노인, 조국의 노래를 부르는 조선에서 온 노파, 동년배의 소녀 등을 만난다. 소년이 16일 동안 날마다 100km씩 달려갔던 에너지의 원천과 북쪽으로 여행한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것이 연출 이유. 와카마쓰 고지의 영화에서 언제나 중요하게 등장하는 ‘풍경’의 의미를 가슴 깊이 실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