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때 그 시절 추억도 다시 먹고
잡지를 보다 누군가 계속 실실거려서 뒤돌아봤더니, 한 젊은이가 <서울의 지붕밑> DVD를 보며 세 할아비들이 ‘이놈 저놈’하며 아옹다옹하는 것에 폭소를 터트리고 있다. 나도 하나 꺼내 봐. 300여편에 달하는 한국 고전영화 DVD를 둘러보다, 결국 택한 건 김기영 감독의 <하녀>. 창피한 이야기지만, 수차례 기회를 놓쳤고, 지금껏 보지 못했다. 편당 5천원. 비싸긴 하지만 고스란히 DVD 제작에 쓰여지는 돈이라고 한다. 한때 <씨네21>도 DVD 이용료가 너무 비싼 것 아니냐고 영상자료원을 공격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지만,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정부를 상대로 예산을 책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면 모르겠지만.
DVD도 봤겠다, 김기영 감독 시나리오 선집 1권을 봤더니 재밌는 일화가 있다. 1960년 11월. <하녀>가 서울 명보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당시 여자관객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나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저년 죽이라!” ‘비로드’ 저고리를 입었든, ‘나일롱’ 치마를 입었든, 가릴 것 없었다. 음악선생 집을 파탄으로 몰아간 하녀(이은심)를 향해 여자들은 집단 저주를 퍼붓느라 정신없었다. 그런 살풍경까진 아닐지라도, 고전영화관 단골 관객의 반응 또한 꽤 격하다. 3일째 되는 날. 이강천 감독의 사극 <살아야 한다>를 보는 관객. 김지미, 신영균 등이 나올 때마다 큰 감탄으로 반기더니 “김지미는 요즘 혼자 사나?”“신영균은 아직도 정치를 하나?” 하는 식으로 돌발 코멘터리와 깜짝 퀴즈를 이어간다. 이젠 익숙해져 꽤 쏠쏠하다.
내친김에 주말도 헌납키로 한다. 자료원쪽은 김수용 감독의 <돌아온 사나이>(1960) 상영에 앞서 <미워도 다시 한번>(1968)을 비디오로 틀어주고 있다. 30만명 넘는 초대형 히트작이어서 그런지 어렸을 때 TV로 꽤 여러 번 봤고, 그때마다 울었던 것 같다. 유년 시절 봤던 한국영화 중 기억에 남아 있는 건 <두 아들>(속)(1971)과 <미워도 다시 한번>이 전부다. 모니터 주변으로 10명이 넘는 단체 관람객이 쭉 둘러앉았는데, 부여여고 동창회 모임이란다. 그들은 문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아니, 미니스커트를 입고서 명동거리를 활보했을 자신들의 20대를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녀>에서 ‘허무하고 무력한 훼이스’ 연기를 보여준 김진규는 <돌아온 사나이>(1960)에서도 엇갈린 운명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괴로워하는 인물로 나온다. 이 영화에서 재밌는 건 혹시 PPL이 아닌가 싶은 장면이 있어서다. ‘강장제는 네오톤, 폐결핵은 하이파스.’ 극중 김진규의 새 일터인 제약회사를 카메라가 비추는데 인물 뒤 걸린 액자를 오랫동안 잡고 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여진다. 4·19 장면이 삽입되어 나오는데, 군사정권이 들어서기 전 잠깐 맞았던 해빙기가 아니었다면 사용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강력구충제 디게시나’,‘오리온 카라멜’ 등 PPL이라 의심(?)할 만한 장면은 <해바라기 가족>에서도 여러 차례 클로즈업된다.
그리고 일요일. 청춘물이 대거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지만, 정창화 감독의 <위험한 청춘>(1966)은 좀 독특해 보인다. 액션장면을 서너 차례 집어넣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 템포가 빠르고 숏도 많다. 대사가 끝날 때까지 카메라가 요지부동인 영화들과는 다르다. 누나의 복수를 위해 한 여대생을 꾀어내어 비참하게 차버리려고 하는 트럭운전사 역할은 신성일이 맡았는데, 1960년대 신성일이 출연한 청춘물만 헤아린다고 해도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신성일이 고집을 피우는 남정임을 트럭 뒤칸에 태운 채 달리는 장면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비가 트럭 위에만 내리고, 주위 땅은 말라 있다. 제작비 절감인가, 기술 부족인가. 혹시 두 남녀만을 따라다니는 비구름은 불행을 예고하는 복선?
일요일 저녁, 극장 바깥으로 나와보니 이미 어둑해져 있다. 오페라하우스와 음악당에서도 공연이 끝났는지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귀가를 서두르고 있다. 지하철역까지 마을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의 줄은 어지럽게 얽혀 있다. 고전영화관을 무심히 지나친 저 사람들이 모두 한국 고전영화의 열혈관객이 되기란 불가능하고, 또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다. 그러나 단 한번 정도는 자신이 거한 시공간의 태생을 더듬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많은 돈이 필요한 것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단 한번, 2천원 내고 타임머신을 타는 수고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타보고 난 다음 재미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고, 그 반대면 한번 더 타는 것이고. 중요한 건 그 한번이 아닐까. 그 한번의 경험이야말로 <귀로>의 서울역을 다시 보게 만들지도 모른다.
한국 고전영화 마니아①_ 제니퍼 브라운(21)
“과도기 패션과 한국 건축미를 맛보는 재미도 솔솔”
매주 수요일 오후 7시30분. 외국인을 위한 고전상영이 열린다. 영문자막이 달린 프린트를 보기 위해 이날 고전영화관을 찾은 외국인들이 적지 않다. 미국 뉴욕 출신으로 4년째 한국에서 영어강사 일을 하고 있는 제니퍼 브라운도 얼마 전부터 한국 고전영화 열혈광이 됐다. 서울셀렉션이라는 관광 책자를 통해 외국인을 위한 고전상영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그는 3년 전 우연히 이곳에 들렀다 신상옥 감독의 <지옥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꿈> 등 3편을 몰아 보고서 매료됐던 기억을 떠올렸다. “1950년대부터 신상옥 감독은 여성을 메인 캐릭터로 내세웠다. 당시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그다지 높지 않았음을 염두에 둔다면 대단한 설정 아닌가?” 최근 2주 동안 본 영화도 모두 신상옥 감독의 작품.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와 <자매의 화원> 중 어느 것이 더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더니 “둘 다 좋은데 그래도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가 조금 낫다”고 한다. 이유는 하나. <자매의 화원>의 인물들이 다소 비현실적이라는 것. 여성 캐릭터도 희생을 위해 자신을 내버리는데다 그녀를 흠모하는 남성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줄 만큼 지나치게 친절하다는 것이다. “자식이 없는 여자와 미혼모를 대립시켜서 표현한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가 당시 사회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더 주고 싶다”는 그는 “고전영화를 통해 양장과 한복을 번갈아 입고 나오는 여성들의 과도기 패션이나 한국 건축물의 미를 맛보는 재미도 있다”고 말한다. 아직 김기영, 김수용 감독의 작품들을 하나도 보지 못해서 아쉽다는 그는 얼마 전부터 한국 학원생들까지 수요일 상영회에 끌어들이고 있다. “외국인을 배려한 상영을 좀더 늘리고 좀더 광범위한 프로그램 홍보를 해달라”는 게 그녀의 바람.
한국영화 고전 마니아②_ 이무명(48)
“변변한 극장 하나 없던 결핍이 지금의 열정을 만들었다”
외모가 이상(李相)을 닮아서 점찍었는데, 알고 보니 대어급 마니아다. 그림 그리는 일을 한다는 그는 영상자료원 ‘10년 단골’. “정말 큰일난다니까….” 얼굴 나고, 이름 알려지면 안 된다는 무명씨. 요 몇년 집에서 좋아하는 그림만 그리다가 얼마 전부터 돈 좀 벌려고 새 회사에 출근했는데, 그토록 보고 싶던 <춘몽>을 놓칠 순 없었다고. 결국 회사에는 “부모님이 시골에서 올라오셨다”는 거짓말을 하고서 몰래 빠져나왔단다. 톰과 제리처럼 몇 차례 승강이 끝에 김기영 감독의 <양산도> DVD를 선물로 쥐어주고서야 가까스로 몇 마디 나눌 수 있었다. “내가 한이 맺혔다니까.”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 변변한 극장 하나 없던 결핍이 지금의 열정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공터에서 떠돌이 영화사들이 가져온 프린트 보는 게 전부였다”는 그는 비내리는 프린트지만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는 몇 장면 기억에 남아 있다고. “<춘몽>은 스토리텔링은 관심없었어. 형식미 보려고 왔던 거지. 독일 표현주의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 궁금했는데, 실내 세트에서 입체적으로 빛을 쓰는 게 맘에 들더라고.”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김기영 감독 그리고 문정숙이 출연한 영화를 좋아한다는 그는 “자신이 혼자서 맘껏 즐기기 위해” 영화 속 장면들을 그림으로 옮겨내는 작업도 취미로 갖고 있다. “<황혼열차>는 안 하더라고. 신청을 몇번 했는데. 유실된 필름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봐. 한동안은 일 때문에 거의 못 올 텐데. 보고 싶어도 참아야지, 뭐.”
한국영화 고전 마니아③_ 이충근(28)
“<짝코>가 나의 인생 행로를 바꾸었다”
이 남자, 배포 한번 크다. 영상자료실에 들어갔더니 테이블 하나를 거의 독차지하고 있다. <한국영화측면비사>를 비롯해 한국 영화사 관련 서적들 10여권을 찜하고서 좌판 벌이듯 깔아뒀다. 게다가 평일인데도 전투적인 트레이닝 차림이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대학원 석사 1학기인 이충근씨. 초창기 영화강의라는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 그는 “내일까지 끝내야 하는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면서 한숨부터 쉰다. ‘신파와 리얼리즘’이라는 주제에 걸맞은 기초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라 헤맬 때가 많다”는 그는 1주일에 한번은 꼭 영상자료원에 들러 영화를 보고 자료를 챙기는 습성을 갖고 있다.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했던 그는 영화이론이 아닌 한국 영화사 연구를 위해 연극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데올로기 연구를 한국영화 역사에 본격적으로 적용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는 그가 첫손에 꼽는 감독은 임권택. <짝코>가 그의 인생 행로를 바꾸었다. “얼마 전 <명동잔혹사>라는 영화도 봤는데, 볼 때마다 신기하다. 이전에는 기술과 영화의 발전은 정비례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거 한국영화들을 조금씩 보면서 그 시대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니, 하고 놀라게 된다. <군용열차>와 <미몽> 같은 초창기 영화들도 나를 깨우친 자극이었다.”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영화들을 특히 좋아한다는 그는 아직은 “수업을 쫓아가느라 시간이 많지 않지만 거장이라 불리기 전 임권택 감독의 영화들을 차근차근 챙겨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