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영(문희)은 신호(신영균)와 사랑하는 사이지만 신호는 기혼자였다. 시골에서 신호의 아내(전계현)와 자식이 상경해서야 혜영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신호 곁을 떠나 혼자 신호의 아들, 영신(김정훈)을 낳아 기른다. 하지만 8년 후 아들의 장래를 위해 신호를 찾아와 아이를 길러줄 것을 부탁한다.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엄마만을 찾는다. 결국 신호의 가족들은 영신을 혜영의 품으로 돌려보내기로 하고 혜영은 신호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간다.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1960년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이다. 한 자료에 의하면 당시 서울의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어 서울에서만 36만 이상의(당시 서울인구 450만) 관객이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그때까지의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작은 1961년작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었는데 약 36만명 이상의(당시 서울인구 180만) 관객동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이 <성춘향>의 기록을 간발의 차로 깼다고 하겠다.
수많은 관객들, 특히 주부관객들을 눈문 바다로 만들었던 이 영화는 홈 멜로 드라마의 여러 가지 특징들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영향으로 비슷한 제목의 영화들이 한 때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정소영 감독은 이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이후에도 <속 미워도 다시 한번(1969)>, <미워도 다시 한번 3편(1970)>, <대완결편 미워도 다시 한번(1971)> 등 시리즈를 계속해서 만들었고 변장호 감독에 의해 1980년대 2번, 그리고 최근 정소영 감독이 다시 <미워도 다시 한번 2002>를 만들었다.
안창복 촬영감독의 증언에 의하면 국내의 성공에 힘입어 이 영화는 대만 등 아시아에 수출되기도 하였는데 안타깝게도 그 때 보내진 네가 필름(영화를 해외로 수출할 때 필름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었던 터라...)이 현재는 남아있지 않고 프린트만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의 상태가 썩 좋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지만 1960년대 후반 우리 관객들의 취향과 홈 멜로 드라마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문희, 신영균, 전계현의 멜로 연기와 당시 아역 영화배우였던 김정훈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는 재미는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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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1960년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이다. 한 자료에 의하면 당시 서울의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어 서울에서만 36만 이상의(당시 서울인구 450만) 관객이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그때까지의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작은 1961년작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었는데 약 36만명 이상의(당시 서울인구 180만) 관객동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이 <성춘향>의 기록을 간발의 차로 깼다고 하겠다.
수많은 관객들, 특히 주부관객들을 눈문 바다로 만들었던 이 영화는 홈 멜로 드라마의 여러 가지 특징들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영향으로 비슷한 제목의 영화들이 한 때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정소영 감독은 이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이후에도 <속 미워도 다시 한번(1969)>, <미워도 다시 한번 3편(1970)>, <대완결편 미워도 다시 한번(1971)> 등 시리즈를 계속해서 만들었고 변장호 감독에 의해 1980년대 2번, 그리고 최근 정소영 감독이 다시 <미워도 다시 한번 2002>를 만들었다.
안창복 촬영감독의 증언에 의하면 국내의 성공에 힘입어 이 영화는 대만 등 아시아에 수출되기도 하였는데 안타깝게도 그 때 보내진 네가 필름(영화를 해외로 수출할 때 필름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었던 터라...)이 현재는 남아있지 않고 프린트만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의 상태가 썩 좋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지만 1960년대 후반 우리 관객들의 취향과 홈 멜로 드라마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문희, 신영균, 전계현의 멜로 연기와 당시 아역 영화배우였던 김정훈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는 재미는 남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