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결단>은 <바이 준>과 <후아유>를 만들었던 최호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우선 선택한 소재의 성격만 보면 두편의 전작과 많이 다르다. 젊은 날의 사랑과 상처에 쏟았던 관심은 부산의 뒷골목을 헤매는 범죄자와 형사의 피냄새 나는 동업으로 초점을 옮겼다. 여기에 두 남자의 교감 혹은 우정이 있을 리 없다. 단지 살기 위해서, 쟁취하기 위해서 서로를 취하는 거짓 계약과 그 끝만 있다. 그렇게 같이 위태롭게 발딛고 서 있는 이곳은 마약의 세계다.
환락과 범죄가 지배하는 부산의 유흥가 뒷골목. 그곳에 이상도(류승범)가 산다. 유년 시절 마약제조자 삼촌의 심부름을 하다가 도리어 마약업자가 되고 만 그는 약삭빠르면서도 야비하다. 자기는 결코 약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에 처하면 언제든 친구라도 팔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다. 상도를 쫓아 나타나는 부산 강력계 경장 도진광(황정민).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면 법과 법 아닌 것 사이의 구분이 없는, 과정보다는 오로지 목적만 있는 자다. 그러나 그에게는 4년 전 거물급 마약책 장철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동료 형사를 잃고 범인을 놓친 전력이 있다. 도 경장은 오로지 장철을 체포하는 일만이 인생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에게 이상도는 더없이 적당한 끄나풀이다. 도 경장과 이상도의 계약은 영화 초반에 한번 어긋난다. 검찰의 개입으로 이상도는 감옥살이를 하고, 도 경장은 정직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돌아온 장철의 출현으로 둘의 계약은 본격적인 상황을 맞는다. 도 경장은 이상도를 이용해 장철을 잡으려 하고, 이상도는 이번 사건만 끝나면 버젓이 마약업을 해도 괜찮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이상도는 그것을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라고 표현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국제통화기금(IMF) 시기 즈음에 나온 뉴스들이 빠르게 화면을 채운다. 그러나 <사생결단>은 사회에 던지고자 하는 거창한 전언을 지닌 영화는 아니다. 그러니 IMF라는 이 시기의 선택은 영화의 장르성을 좀더 현실감있게 밀어붙이고자 하는 의도에서 선택된 것이라고 봐야 맞을 것이다. 사회적 의미보다 영화적 효과 면에서 취해진 출발점인 셈이다. 그걸 반영하듯 거리의 개처럼 어슬렁거리며 등장하는 이상도의 모습이 거친 줌잉과 빠른 커팅으로 잡힌다. 그건 마치 1970년대 미국과 일본에서 유행했던 범죄액션영화의 주인공 모습과 겹친다. 영화 내내 그런 느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70년대 범죄액션영화의 차용은 후반부 자동차 추격전에 이르러 다시 한번 강조된다.
70년대 범죄액션 장르가 보여준 한 가지 특징이라면, 거기에 선과 악이 아니라 악과 악의 대립 혹은 악을 물리치기 위해 필연적으로 도입된 차악의 힘을 인정했다는 것에 있다. 도 경장과 이상도가 짝이 되어 벌이는 위험천만한 수사 역시 끝도 없이 펼쳐질 잔인한 그 ‘악’의 순환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 점은 감독이 ‘세계관으로서의 누아르’라는 말을 새기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태도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세계관으로서의 누아르? 그건 선이 존재할 구석이 없고, 승자가 서 있을 자리가 없는 파괴된 운명의 패배자들만이 득실거리는 존재론적 세계다. 이 장르적 계율을 한층 더 밀고 나가도록 덧붙여진 것은 현실성이다. 감독이 직접 어렵게 취재하여 모았다는 디테일의 채집이 여기 더해진다. 예컨대 마약세계의 잔인한 생리를 보여주는 일화와 마약 제조업자를 체포하기 위해 도 경장 일행이 벌이는 수사장면 등은 직접 몸으로 뛰어 얻은 정보가 아니라면 표현력이 떨어졌을 장면이다. 더불어 이곳이 특정 지역인 부산이라는 점이 이 영화를 지역성에 기대어 현실적으로 느껴지도록 하고 있다. 몇몇 알아듣기 힘든 대사들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인물들의 말투는 강력한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동원된 것이 사실이다. 말하자면, <사생결단>의 장르적 세공술과 현실세계에서 채집한 꼼꼼한 디테일은 마치 도 경장과 이상도가 맺고 있는 관계처럼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에 놓여 있다.
<사생결단>은 감독 최호의 영역 외에도 황정민, 류승범이라는 두 배우의 기질이 잘 배어난 영화다. 황정민과 류승범은 얼굴 자체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배우들이다. 그 자체로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다소 과장된 장르적 공간에 서거나 극한의 이야기 구조로 들어서면 그 흐름과 결을 같이하며 힘을 발휘하는 장점이 있다. 무슨 일이든지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고, 윤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도 경장의 행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온갖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이상도의 행실. 황정민과 류승범의 얼굴과 몸의 움직임은 영화가 요구하는 그 점을 충분히 수행한다. 한편으론, 그래서 <사생결단>은 보는 자의 육체를 힘들게 하는 구석이 있는데, 그건 영화의 빠른 속도감과 더불어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면서 영화를 봐야만 하는 경험이기 때문에 그렇다. 모든 영화에 에너지가 다 어울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것이 힘이 되고 있다.
감독은 이상도와 도 경장이 살고 있는 이곳을 “비열한 구역”이라고 칭한다. “이 영화는 그 특별한 구역을 질주하는 열혈악당들에 대한 서사시”이고, “그들의 모습에서 언뜻 우리의 자화상을 비추어줄 것”이며, “비열한 구역은 광포한 자본주의로 대변되는 한국사회 전체의 축소판”이라고 연출의도를 썼다. 그러나 이 말의 재현은 영화 속에 없다. <사생결단>은 오히려 그런 사회적 기능을 포기했기 때문에 일정한 장점을 취득한다. <사생결단>은 스타일과 리얼함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영화다. 영화적으로 진일보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 채집에서 뻗어나간 힘있는 ‘수사극’으로서, 또는 악의 운명으로 태어난 두 주인공에 관한 ‘르포’로서의 면면은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