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는 픽사없이 만든 디즈니의 두 번째 3D애니메이션이다. 픽사와 디즈니가 또다시 통합을 제창한 지금에 와서는 조금 늦은 듯도 하지만, 디즈니가 유능한 파트너 없이 어떤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치킨 리틀>의 뒤를 이어 개봉하는 <와일드>는 디즈니 3D애니메이션의 미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뉴욕 맨해튼의 동물원. 새끼사자 라이언은 아빠 샘슨처럼 사자다운 포효를 낼 수 있기를 바라며 야생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절망적인 십대처럼 굴던 라이언은 결국 우연한 사고로 컨테이너에 실려 아프리카로 보내지고, 샘슨과 동물원 친구들(기린 브리짓, 아나콘다 래리, 코알라 나이젤, 다람쥐 베니)은 그를 뒤쫓는다. 명확한 기시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와일드>의 이야기는 지난해 개봉한 드림웍스 PDI 스튜디오의 <마다가스카>를 쌍둥이처럼 빼닮았다. 뉴욕 동물원의 동물 친구들이 배를 빌려 타고 아프리카로 향하고, 사자는 고난을 거치며 야성을 되찾고, 우정을 다시 확인한 동물들은 뉴욕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사실 <와일드>의 제작진이 독창성을 그리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경쟁사의 히트작을 노골적으로 복제한 이야기는 디즈니 역사상 최고의 수익을 거둔 셀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으로 귀결되니 말이다. 사자 부자는 먹이사슬의 밑바닥을 벗어나보려 반란을 꾀한 영양 무리를 물리치고, 결국 야생의 황제임을 포효하며 모험을 끝낸다. 능수능란하게 정치적 공정성을 비꼬거나 정치적으로 공정하려고 애쓰는 최근 3D애니메이션의 경향을 거스르는 복고적 마무리인 셈이다. 프랜차이즈화하기 쉬운 동물 캐릭터들은 언제나처럼 유쾌하지만, 캐릭터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은데다가 각자의 성격이 명확하지가 못한것은 지적할 만하다. 영국 코미디언 에디 리저드가 유쾌하게 그려낸 코알라 나이젤만이 톡 쏘는 대사의 맛을 전해줄 뿐이다.
<와일드>는 양산체제로 돌입했던 셀애니메이션이 고만고만한 작품의 질로 인해 관객을 잃고 무너진 지난날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미 3D애니메이션의 기술력은 모든 회사들이 비슷비슷해진 상황이다. 한정된 3D애니메이션 시장을 지속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픽사처럼 끊임없이 관객의 신용을 지켜내는 기술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