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에 다리까지 불편한 형사 잭(브루스 윌리스)은 마지못해 증인 호송 임무를 떠맡는다. 그는 두 시간 뒤인 오전 10시까지 흑인 청년 에디(모스 데프)를 법원에 데려가 증언대에 세워야 한다. 경찰서에서 법원까지 거리는 16블록. 그러나 잭이 술을 사기 위해 잠깐 멈춘 사이에 킬러들이 자동차를 습격하고,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잭은 에디가 경찰 내부 비리를 증명할 증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20년 넘게 잭의 파트너였던 프랭크(데이비드 모스)는 한번만 눈을 감으라고 잭을 회유한다. 그러나 동료들을 적으로 돌리기로 마음먹은 잭은 “길을 여섯번만 건너면 되는” 법원까지 가기 위해 모진 고생을 시작한다.
<식스틴 블럭>은 영화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과 실제 상영시간이 거의 일치하는 영화다. 그 때문에 이 영화는 잭의 과거나 경찰 내부의 음모를 설명하지 못한 채 6년 전 경찰 비리 사건의 증언을 거부했던 잭이 느닷없이 에디를 지키겠다고 결심하는 변화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난감한 숙제지만 <리쎌 웨폰> <컨스피러시> 등을 연출했던 감독 리처드 도너는 시나리오를 보고 이 점에 이끌렸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은 어떤 선을 가지고 있다. 그 선을 넘으면 삶은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한다.” 삶을 포기하다시피 했던 잭은 불행하게 살아왔지만 케이크 가게를 열겠다는 꿈을 간직한 에디를 만나 바로 그 선을 넘는 것이다. 리처드 도너는 카메라 열두대를 동원한 버스 충돌 장면처럼 긴박한 액션을 통해 관객을 잭과 에디 곁에 묶어두려 했다. 관객이 그들과 호흡의 속도를 맞추어야만 두 시간 동안 몇번이고 생이 뒤바뀌는 드라마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정한 무기라 할 만한 요소는 브루스 윌리스다. 오른쪽 발에 돌멩이를 묶어 절뚝거리는 잭의 걸음을 표현하기도 한 윌리스는 이미 여러 번 알코올과 무력감에 젖어 살다가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경찰을 연기해왔다. 그러므로 관객은 잭을 보며 그가 조만간 정신을 차릴 거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어느새 50이 넘은 윌리스는 더이상 <다이 하드>에서 그랬듯 비행기 날개에 매달리는 액션을 보여주진 못한다. 그럼에도 <식스틴 블럭>은 한때 활기찼던 액션감독과 스타의 후일담을 듣는 듯하여 어느 정도 쓸쓸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