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달빛처럼 찬란하지만 핏빛처럼 잔혹하다. 여름날의 애틋한 밀어로 시작한 <달빛 속삭임>의 연애담은 시간이 흐를수록 집착과 사랑이 뭉뚱그려진 혼돈으로 빠져든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붕괴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도 끝없이 뒤바뀐다. <달빛 속삭임>은 사랑의 감정과 현실의 광기를 뒤섞어놓고, 관객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영화다.
고등학생 타쿠야(미즈하시 겐지)는 동급생 사츠키(쓰쿠미)를 좋아한다. 두 사람은 매일 아침 함께 검도 연습을 하고 등하굣길에서 스쳐 지나간다. 타쿠야가 친구 마루켄의 러브레터를 전해준 사건을 계기로 그들은 사귀기로 한다. 자전거로 함께 등교하고 키스를 나누며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타쿠야의 집을 방문한 사츠키는 책상 서랍에서 몰래 찍힌 자신의 사진, 자위의 흔적, 화장실에서 자신이 용변을 보는 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발견한다. 모멸감을 느낀 사츠키는 결별을 고하지만 타쿠야는 그녀 주위를 맴돌며 집착한다. 타쿠야의 그런 행동에 사츠키도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달빛 속삭임>은 일본영화에서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순애와 첫사랑이라는 주제를 교묘하게 전복한다. 학교와 가정이라는 사회적 배경은 희석되고 타쿠야와 사츠키가 맺는 인간관계의 방식에 영화는 집중한다. 타쿠야가 드러내는 발 페티시와 마조히즘적 성향은 규격화된 성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며, 외적으로는 사회적인 낙오를 암시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조감독 출신이며 <환생> <카나리아>를 만든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은 “사회의 규약에 순응할 수 있는 사람과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간의 간극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간장선생> <우나기>를 촬영했던 고마쓰바라 시게루 촬영감독은 격렬하고 폭력적인 사건들을 아름다운 배경과 함께 포착하며 이러한 인간의 이중성을 효과적으로 대비시킨다. 사츠키가 타쿠야에게 ‘변태’라는 비난을 퍼붓고 모욕을 주면서도 관계를 지속하는 이유는 낙오에 대한 두려움과 타쿠야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가 동시에 작동했기 때문이다. 두려워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삶이라고 <달빛 속삭임>은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