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예술영화전용관 100개를 짓겠다.”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결정을 한 다음날 문화관광부 장관이 밝힌 영화진흥책 가운데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대한민국을 예술영화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이 놀라운 발표는 그러나 일고의 가치도 없는 웃음거리가 됐다. 영화계에 몸담은 사람들 모두가 이것이 현실성 0%의 제안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발상의 전제에는 공장을 만들면 생산이 는다는 제조업 중심의 마인드가 있다. 과연 영화도 극장만 있으면 관객이 생기는 것일까? 지금 예술영화전용관의 실태가 어떤지 보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올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선정한 극장은 전국 12곳이다. 한번 가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이들 극장은 흥행작에 집중하는 극장에 비해 훨씬 한산하다. 흑자는커녕 적자를 면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12개라도 이런데 100개로 늘리면 어떻게 될까? 기초적인 경제학만 알아도 공급과잉으로 인해 파리 날리는 극장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답이 나온다. 전체 관객 수가 좀 늘어난다 해도 늘어난 극장 좌석을 채우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만난 백두대간 대표 이광모 감독은 차라리 전국 도서관에서 예술영화 DVD를 구입하게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비디오와 DVD 시장이 몰락한 상황, 극장 개봉으로도 수익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에서 도서관 같은 공공기관이 제작, 유통쪽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도서관 시청각 자료실에 <쉬리>나 <쥬라기 공원> 같은 영화만 있다는 걸 고려하면 천만번 지당한 얘기다. 이번 특집기사를 보면 한국영상자료원도 한때는 비디오방과 다르지 않은 용도로 쓰였다고 하니 일반 도서관은 오죽하랴 싶다. 물론 도서관이 DVD를 구입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최근 영화계를 보면 작은 영화들이 처한 어려움은 마케팅 측면에서 두드러진다. 제작비로 10억원이 든 한국영화도 전국 200개관 이상 개봉관을 잡아 와이드 릴리즈를 할 경우 마케팅비가 20억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 그래도 그래야 조금이나마 시선을 끌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외화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다. 1천만원에 산 영화라도 제대로 마케팅하자면 몇 억원은 우습다. 예술영화를 수입, 배급하는 영화사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는 일반 영화랑 비슷한 규모로 개봉했다가 마케팅비도 충당 못한 영화들이 많다고 말했다. 스폰지가 종로 시네코아 극장에 이어 압구정동에 스폰지하우스를 만든 것(이번주 페스티벌 기사 참조)도 작은 영화에 어울리는 배급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함부로 와이드 릴리즈를 했다간 프린트 비용도 못 건지는 것이 비주류영화들이 처한 현실이다.
비주류영화를 살리기 위해 여러 모색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영화진흥위원회는 <씨네21>쪽에 새로운 잡지의 창간을 제안했다. 좋은 영화가 있어도 영화를 알릴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과 돈이 부족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조치이다. 우리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안을 환영했다. <넥스트 플러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넥스트 플러스>는 비주류영화에 대한 관객의 관심을 불러모으기 위한 책자다. 한달에 2번, 격주로 발행할 계획이며 전국의 예술영화전용관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또한 <씨네21> 정기구독자에겐 별책부록으로 배달될 예정. 창간호는 서울여성영화제가 열리는 신촌 아트레온에서도 배포될 것이다. <넥스트 플러스>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난 다른 영화 본다’이다. 아마도 다른 영화를 보면 다른 세상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옷도, 음식도, 일상도, 욕망까지도 남과 다르지 않게 규격화된 세상에서, 독자 여러분께 감히, 다른 영화를 보며 다른 세상을 꿈꿔보자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