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는 묘하다. 아직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어딘지 보호해줘야 할 것 같은 존재들이지만, 실제로 그들은 성년보다 더 강렬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힘을 어디로 분출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삶을 이끌어나가는 힘이 되기보다는 감당하기 어려운 열망에 머무르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열아홉이라는 나이는 한없이 아름답지만 불안하게 느껴진다. 그 나이에 우리는 망망대해와 같은 세상에 내동댕이쳐진다. 어디론가 헤엄쳐나가야 하지만 등대는 보이지 않고 세상은 거친 파도와 같이 밀어닥친다.
촉망받는 수영선수인 한수(온주완)은 전국 체전을 코앞에 앞둔 어느 날, “나 이제 수영 안 해요”라는 한마디를 던지고 수영장을 빠져나온다. 그는 대학은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코치의 현실적인 조언에도, 한수의 탈퇴 때문에 단체기합을 받는 동료들의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수영을 하느라 이제는 어색해져버린 교실에 앉아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던 한수는 엄마가 살충제를 마시고 자살 기도를 했다는 전갈을 받고 학교를 빠져나간다. 엄마는 유서를 통해 ‘허무해서’ 세상을 떠나기로 했다며, 한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의 주소를 남긴다. 이제 한수는 의식을 잃고 병상에 누워 있는 엄마를 돌보며 온갖 빚독촉으로부터 집을 지켜내야 하는 가장의 자리를 떠맡아야만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오가며 엄마의 병수발을 해야 하는 한수의 옆집으로 음악 교사 인희(김호정)가 이사 온다. 학교도 가정도 더이상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열아홉살 한수에게 인희의 피아노 선율은 묘한 위안을 준다. 한수는 자신이 인희를 여자로 사랑하는지, 단지 그녀의 육체를 욕망하는지 아니면 엄마의 대역으로 그녀가 필요한지를 알지 못한 채 그녀에게 쏟아지는 자신의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인희도 한수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둘의 연인도, 모자도 아닌 기이한 관계가 시작된다. 그녀는 섹스를 요구하는 한수에게 ‘단지 네가 안됐고, 너를 돕고 싶을 뿐’이라며, 한수가 자신의 손을 빌려 자위하는 것만을 허락한다.
상징적인 판타지와 현실이 혼재하는 영화 <피터팬의 공식>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키워드는 수영장을 떠나는 한수의 모습이 담겨 있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계가 없는 물을 인위적으로 갈라놓은 ‘레인’ 위를 숨가쁘게 질주하던 한수는 기록을 확인하는 감독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물속으로 잠수하여 여유롭게 유영한다. ‘레인’이 없는 물속에서 그는 자유롭고 아름답다. 그가 수영을 그만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기껏해야 아시아 일등밖에 더 되겠어요”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맥거핀이다. 그는 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규정된 삶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 세계 일등이든 국내 일등이든 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진짜로 자유롭고 광활한 공간인 바다에서 수영하다가 그는 익사할 뻔한다. 한수는 ‘레인’을 벗어난 삶을 꿈꾸지만, ‘레인’ 밖의 세상은 잔인하고 그는 아직 어른의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덜된 ‘피터팬’에 불과한 것이다. ‘레인’은 그가 벗어나고 싶어하는 ‘네버랜드’이다.
‘네버랜드’에서 살짝 나왔던 피터팬이 그림자가 떨어져나가 고생할 때 엄마 같은 여성 웬디를 만났듯이, 병원과 빚에 짓눌려 숨막혀하는 한수에게 인희가 나타난다. 웬디가 네버랜드의 가상적인 엄마 역을 수행하는 것처럼 인희는 한수에게 엄마 역할을 해준다. 아버지는 한수가 아들임을 부정하고, 엄마는 의식을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경제적인 압박은 점점 숨통을 조여오자 한수는 인희의 자궁 속으로 도망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네버랜드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인 것처럼 이미 다 자라버린 한수가 들어가 쉴 수 있는 자궁은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희의 의붓딸 민지(박민지)는 팅커벨과 같은 존재이다. 약간은 제멋대로이지만 한수처럼 연약한 미성년인 민지는 자기의 상처를 당차게 해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머물고 있는 공간도 현실이 아닌, 요양원이라는 또 다른 ‘네버랜드’이다. 한수는 그녀의 명랑함을 통해 자신의 어두움을 지워보려고 하지만 결국은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 방식이 아님을 알게 된다. 민지 역시 접근할 수 없는 등대를 갈망하고 있으며, 세상이라는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를 바다로 데려다줄 배는 모래사장에 정박당해 있다.
한수가 병원에서 만난 또 다른 여자인 미진(옥지영)은 한수에게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끊어버리는 법을 알려준다. 한수처럼 혼수상태에 빠진 엄마를 돌보는 그녀는 엄마의 불행을 자신의 것으로 물려받기를 거부한다. 한수는 그녀에게 어머니를 간호하는 방법을 배우지만, 어머니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감히 배우지 못한다. 그녀와 한수는 서로의 범행을 목격하지만 말없이 방조함으로써 일종의 공모자가 된다. 어른들이 부과한 과도한 짐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그러한 상처들이 한수와 미진의 그림자가 되는 셈이다.
<피터팬의 공식>을 연출한 조창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모호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작품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물간의 교감을 담고 있고, 섣불리 확정할 수 없는 환상적인 결말로 끝을 맺는다. 감독은 열아홉이라는 불투명한 성장기를 환상과 현실이 착종된 형식을 통해 구현한다. 그러므로 관객은 ‘피터팬’ 한수가 앞으로 무수한 팅커벨들과 웬디들을 거쳐 언젠가는 자신만의 ‘공식’을 찾아내 풀어나가리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