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모자의 진실>은 동화 <빨간 두건>의 현대적 재해석을 꿈꾸는 애니메이션이다. 영화는 빨간 모자가 할머니로 변장한 늑대와 승강이를 벌이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그러나 이야기는 원작 동화와 달리 조금씩 삐딱선을 탄다. 할머니는 늑대 뱃속이 아닌 벽장 안에서 뛰쳐나오고, 도끼를 든 거대한 사내가 집 안으로 난입한다. 넷은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너나 할 것 없이 비명을 질러댄다. 경찰의 개입으로 난동이 정리될 때쯤 등장하는 개구리 탐정. 알고 보니 이 마을은 제빵 비법이 담긴 요리책 도난으로 뒤숭숭한 터다. 빨간 모자, 늑대, 사냥꾼, 할머니는 도난사건의 용의자 선상에 오르고 영화는 미스터리물의 모습을 띤다.
이야기의 큰 구조는 탐정과 용의자가 진실게임을 벌이는 추리물을 따르지만 정교한 트릭과 추리를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범인은 예상보다 쉽게 밝혀진다. <빨간 모자…>가 가진 진짜 매력은 캐릭터가 가진 의외성에 있다. 천진한 소녀 빨간 모자, 사나운 악당 늑대, 거칠고 힘센 사냥꾼, 힘없고 늙은 할머니. 동화 속 캐릭터들이 가지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영화는 뒤집는다. 건방지고 당돌한 빨간 모자는 태권도 유단자다. 망나니인 줄만 알았던 늑대는 지적인 목소리로 “변호사를 불러주세요” 한다. 덩치 큰 사냥꾼은 발랄한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과 해맑게 뛰어다닌다. 기력이 쇠한 듯한 할머니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긴다. <빨간 모자…>의 이런 의외성은 각 캐릭터들의 사연에까지 기발하고 엉뚱한 매력을 불어넣는다.
재치와 유머가 빛나는 <빨간 모자…>는 대중영화의 상투성도 오락장치로 재활용한다. 여기에 주로 사용되는 것은 노래다. 행복하거나 슬픈 순간에 등장인물들이 부르는 노래는 뻔한 상황을 더욱 뻔하게 만들어 웃음을 준다. 상투성을 유머로 극복하려는 시도는 요즘 할리우드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들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경향이지만 뮤지컬영화의 관습을 빌려 그것을 연출했다는 점이 자못 신선하다. 이런 재미를 즐길 수만 있다면 허술한 추리물에 불만을 고집하기도 어렵다.
한국어 더빙도 괜찮은 편이다. 정신없이 구는 다람쥐의 입에서 노홍철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늑대가 빨간 모자(강혜정)더러 “너, 마이 아팠겠다” 할 때, 한국 관객은 웃지 않을 수 없다. 배급사 쇼박스도 그 점에 자신을 가졌는지 한국어 더빙판만으로 국내 개봉을 감행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