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IT기업의 홍보담당자 딕(짐 캐리)은 요즘만큼 행복한 때가 없다. 자신의 집도 마련했고, 곧 부사장으로 승진까지 하니 세상을 다 얻었대도 이만큼 행복할 순 없을 터. 그래서 사랑하는 아내 제인(테아 레오니)에겐 회사를 그만두고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도 했다. 하지만 행복의 짝꿍이 불행이라고 했던가. 딕이 승진하고 첫 출근을 한 바로 그날, 회사가 파산하고 만다. 재취업을 해서라도 생계를 유지하려는 이 가련한 가장에게 하늘은 무심하게도 고개를 돌린다. 결국 그는 강도로 분장해 ‘별다방’ 커피를 무전취식하고 편의점에서 푼돈을 털어 생계를 꾸리는 ‘뻔뻔한’ 생활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이들은 그간의 노하우를 동원해 이전 회장을 향한 사상 최대의 뻔뻔한 복수극을 계획한다.
웃기는 짐 캐리 vs 안 웃기는 짐 캐리
<마스크>_ 사실 짐 캐리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코미디영화에서 재기를 마음껏 드러낼 때다. 1994년 자작 시나리오로 만든 <에이스 벤츄라>에서 안면근육 연기(사방팔방 갈지 자로 움직이는 그의 눈과 코, 입을 보라)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그였으니, 이후 필모그래피에 <마스크>와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그린치> 등이 끼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평소에는 소심하기 짝이 없던 은행원이 고대 유물인 마스크를 발견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은 <마스크>. 이 영화로 그는 전미 박스오피스 1억달러를 돌파하는 흥행몰이도 했다.
<이터널 선샤인>_ 사실 우리는 <트루먼 쇼> 때부터 알아봤어야 마땅하다. 그가 단순히 안면근육을 이용해 웃기는 연기만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그 눈과 우수운 몸짓에 감정을 담아 연기할 수 있는 진정한 배우임을. <이터널 선샤인>은 그의 이런 재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작품이다. 그가 연인을 자신의 기억 속에 넣고 라쿠나사의 직원들과 숨바꼭질을 하던 장면은 특히 압권인데, 무너져가는 공간에서 종횡무진하는 그의 슬랩스틱 연기는, ‘너를 잃고 싶지 않다’는 절절한 외침보다 더한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때론 소리 나는 말보다 소리 없는 마음이 더 큰 힘을 지닌다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