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희(류연희)는 거리에서 김치를 파는 조선족 여인이다. 남편이 감옥에 가서 고향을 떠나온 그녀는 어린 아들 창호(김박)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애쓰지만, 노점상 허가서조차 받지 못해 생계수단인 자전거를 압수당하고 만다. 파출소 순경 왕위의 호의로 노점상 허가서를 받은 다음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순희와 관계를 맺어온 조선족 김씨(주광현)는 정사 현장이 아내에게 들통나자 그녀가 창녀라고 거짓말을 하고, 파출소에 끌려가도록 방치한다. 성관계를 요구하는 왕위에게 몸을 주고 집으로 돌아온 순희에게는 그보다도 더한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중국 농민에게 망종은 가장 바쁜 시기 중 하나라고 한다. 보리를 베어내고 볍씨를 뿌리는 절기 망종을 놓치면 보리 이삭이 지나치게 무거워져 쓰러지기 때문이다. 순희는 고향에서나 의미가 있었을 망종을 도시에서 통과하면서 차례로 닥쳐오는 고난을 겪고, 끝내는 세상을 향해 독극물을 살포하기에 이른다. 보리밭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는 순희의 뒷모습은 그 모든 고난을 두눈뜨고 지켜보아야만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식당에 김치를 납품하게 해주겠다면서 은근하게 성관계를 바라는 이웃집 남자, 자기도 조선족이라며 다정하게 다가왔지만 배신자로 떠나버린 김씨, 강제로 관계를 맺고서 약혼녀와 함께 김치를 사러온 왕위 그리고 황무지처럼 적막하고 황량한 소도시. 한번 울지도 않으면서 그걸 모두 견디어냈던 순희는 쓰러질듯 위태롭게 걸어가면서도 쓰러지지 않는다. 망종 무렵의 보리처럼.
이 영화가 두번째 장편영화인 장률 감독은 옌볜에서 태어난 조선족이다. 소설을 쓰다가 늦은 나이에 데뷔한 장률은 멀찌감치 순희를 지켜보며 눈물을 강요하거나 관객을 깊숙한 감정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순희가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되는 순간에도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을 포커스 아웃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 뒤에 존재하는 풍경만을 바라보도록 한다. 무표정한 순희의 얼굴에 감정을 가두어두는 <망종>은 그처럼 적막한 영화다. 오히려 그 때문에 <망종>은 침묵의 무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해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굳어져가는 슬픔의 무게를, 한결같은 호흡으로 전해준다. 보리밭 너머로 휘적휘적 걸어들어간 순희는 어떻게 되었을까. 민족적인 정체성을 소재로 택해 세상 이야기로 확대한 장률은 그렇게 한 여인의 안부를 묻고 싶어지는 영화를 우리에게 건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