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룸>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오만과 편견> <브이 포 벤데타>가 모두 OO극장에서 시사회를 하더군요. 다들 스코프 비율이고요. 알다시피 OO극장은 화면 손상이 굉장히 심합니다. 이런 영화들이 상영되면 양쪽이 잘릴 뿐만 아니라 한쪽으로 화면이 쏠리죠. 중심도 제대로 맞지 않으면서 영상 정보도 제대로 전달 못하는 말도 안 되는 화면을 제공하는 건데. 솔직히 전 이 따위 극장에서 영화를 첫 감상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군요. 첫인상은 저에게 무척 중요합니다. 평생 한번밖에 경험할 수 없는 거잖아요.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매트릭스> 시리즈 같은 영화들은 OO극장에서 일단 영화를 본 뒤 나중에 동네 개봉관에서 다시 보았는데, 영화가 달라 보이더군요. 왜 시사회를 봤는지, 그냥 화가 나더군요.”
<씨네21>에 영화평을 자주 쓰는 듀나가 보낸 이메일의 일부다. 그는 화면이 잘리는 극장에서 기자시사회가 이뤄지는데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 점을 의아하게 여긴 듯하다.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왜 기자들은, 관객은, 감독들은 창작자의 의도와 달리 잘려나간 화면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 것일까? 이번주 기획리포트에서 우리는 대부분 극장에서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수 극장의 화면 사이즈가 열악한 상황이니 다들 그러려니 체념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처럼 보인다. 나를 비롯한 많은 기자들도 이 문제에 무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모 감독이 화면비율이 맞지 않는다고 영사실에 항의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는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메가박스에서 기자시사회를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무턱대고 귀찮다는 심정부터 들었다. 마감시간에 쫓기는 입장에선 강북에서 강남까지 오가는 시간과 교통체증부터 떠올리게 마련이다. 강북에 있는 언론사 기자 가운데 일부는 영화사에 강력히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다. 왜 강북에 있는 가까운 극장을 놔두고 강남까지 가야 하냐며. 이번 기사를 통해 그런 항의가 부끄러운 행위임을 아는 것도 과외의 소득이 될 것이다.
영화의 역사에 따르면 시네마스코프는 영화가 TV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시네마스코프와 70mm 필름으로 대표되는 와이드 스크린은 TV화면으로 재현할 수 없는 스펙터클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극장으로 향할 이유를 제공했다. 광활한 캔버스는 한 화면에 풍부한 의미를 담아낼 수 있고 영화적 움직임이라 할 수 있는 좌우의 운동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이유로 비평계에서도 환영받았다. 와이드 스크린이 ‘더 영화적’이라는 말일 게다. 지금도 똑같은 이유로 영화적이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2.35 대 1의 화면비를 가진 영화가 다시 많아진 것은 분명하다. 한국영화도 90년 후반부터 시네마스코프 사이즈로 찍는 경우가 늘어났다. 배창호 감독의 <러브스토리> 같은 소품부터 <태풍> 같은 블록버스터까지 TV보다 넓은 화면비로 영화적 체험의 폭을 넓히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넓은 화면비를 제대로 구현할 극장이 별로 없는 현실은 극장이 TV와 경쟁할 강력한 무기 하나를 스스로 내던진 형국으로 보인다. DVD로 보는 편이 원래 화면비를 감상하기에 나은 상황이라면 극장의 호황도 오래가기 힘들지 않을까.
가끔 대한극장을 새로 짓기 전, 70mm필름을 마지막으로 볼 기회라며 선전했던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떠오른다. 그 광활한 화면 가득 펼쳐진 사막의 아름다움. 압도적인 크기의 대형스크린이 사라지고 작은 스크린을 지닌 멀티플렉스가 주류가 된 지금, 오히려 그 시절 극장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 불편한 좌석과 퀴퀴한 냄새를 다시 경험하고 싶진 않지만 그 거대한 스크린만은 다시 보고 싶다. 그게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PS. 아카데미 기사에 실린 <크래쉬> 수입사 타이거픽쳐스 조철현 대표의 글도 놓치지 마시길. 한국에서 외화 수입하는 어려움을 절절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