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인 사랑에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눈에 반하기, 반복되는 우연 그리고 죽음이다. 사람들은 몇년을 두고 은근하게 익혀온 감정을 두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상 내에서 이루어진 관계를 놓고, 또 지지부진 계속되는 연애에 관해서는 운명을 논하지 않는다. <로망스>의 윤희(김지수)와 형준(조재현)의 사랑은 바로 이런 삼박자를 다 갖추고 있다. 열혈형사인 형준은 상부의 고압적인 지시에 분노에 떨며 차를 몰다가 웨딩드레스 숍에서 슬픈 눈으로 밖을 내다보는 윤희와 시선이 마주친다. 그리고 몇년 뒤 다시 만난 그들은 서로의 불행한 삶을 한마디 말도 없이 알아채고, 서로의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싶어서 사랑에 빠진다.

윤희와 형준 사이의 사회적인 신분상의 격차는 <나쁜 남자>의 선화와 한기만큼이나 아득하다. 윤희는 부와 권력을 모두 소유한 남자의 아내이고, 형준은 이혼으로 아내와 자식을 잃고 보증으로 전 재산마저 잃은 강력반 형사이다. 하지만 선화와 한기가 둘의 마음을 확인하는 데 거의 두 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을 할애한 것과 달리, 윤희와 형준은 보는 즉시 마음이 통하고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이미 사랑에 빠지며, 세 번째 만났을 때 둘은 서로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기로 마음먹는다. 윤희와 형준의 사랑은 지독한 ‘자기연민’에서 비롯되며, 어떤 식으로든 이성이 개입할 여지를 막아버린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랑은,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그린 영화는 점점 현실이라는 땅 위를 벗어나 감성과 폭력만이 난무하는 비현실의 공간, 옥상으로 올라가버린다.

이 영화는 사랑을 절대화하기 위해서 온갖 클리셰를 총동원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빈부 혹은 권력을 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선악구도와 동일시하는 단순한 인물구조. 탱고를 사랑하는 부유층의 아름다운 여인과 사격을 잘하는 가난하지만 강직한 남자, 그리고 그들의 말 못할 상처들과 유토피아로서의 낯선 지명 ‘아르헨티나’. 이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지면서 윤희와 형준의 사랑은 조재현과 김지수의 안정적인 연기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설득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납득하기 힘든 것은 그들의 사랑이 왜 죽음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그들의 죽음은 단지 사랑의 불가능성을 완성하기 위해서 억지로 마련된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