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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내 손 안에 있소이다!
2001-08-16

<혹성탈출>의 특수분장 릭 베이커

아주 가끔은 배우나 감독이 아닌 제작 스탭이 스타로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영화의 반을 차지하는 음악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한스 짐머나 엔니오 모리코네 같은 여러 스타급 작곡가들이 활동중이고, 로뷔 뮐러나 크리스토퍼 도일처럼 촬영감독들 중에서도 스타로 인정받는 이들이 여럿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런 전통적인 영화의 제작 스탭들이 아니라 특수효과, 특수촬영, 특수분장 등 SFX와 관련된 분야에서 스타들이 많이 등장하는 추세다. 언젠가 한번 다룬 적 있는 특수분장의 대가 스탠 윈스턴이나 특수효과의 달인 데니스 뮤렌,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의 선구자 필 티펫 등이 대표적인 경우들. 이들의 특징은 1년에 한번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나타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중과 직접 만날 기회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폭적인 지지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팀 버튼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혹성탈출>의 특수분장을 담당한 릭 베이커 역시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스타급 제작 스탭 중 한명이다.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이름일 수도 있지만, 그가 참여한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일단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된다. 우선 그가 특수분장을 담당한 주요 영화들을 살펴보면, <킹콩>(1976), <스타워즈>(1977), <비디오드롬>(1983), <에드 우드>(1994), <울프>(1994), <배트맨 포에버>(1995), <너티 프로페서>(1996), <프라이트너>(1996), <맨 인 블랙>(1997),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1998), <그린치>(2000) 등의 다양한 작품이 포진되어 있다. 또한 <스타맨>(1984), <코쿤>(1985), <배트맨과 로빈>(1997), <데블스 에드버킷>(1997), <사이코>(1998) 등의 영화에는 특수효과나 디자이너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 화려한 경력은 당연히 상복으로 이어졌는데, 1982년 <런던의 늑대인간>으로 아카데미 분장상을 수상한 이후 모두 10번 후보에 올라 6번 수상의 영광을 안았을 정도다. 가장 최근 수상작은 짐 캐리를 도저히 알아볼 수 없게 분장해 화제가 되었던 <그린치>. 무엇보다 짐 캐리의 표정연기가 두꺼운 특수분장 위에서도 자연스럽게 묻어나왔다는 사실 때문에 릭 베이커의 수상은 일찌감치 예상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였기 때문에, 팀 버튼이 <혹성탈출>의 리메이크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연락을 한 이는 릭 베이커였다. 하지만 당시 <너티 프로페서2>와 <그린치> 작업을 함께하고 있었던 릭 베이커는 팀 버튼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 결과 <혹성탈출>의 초기 특수분장 작업은 또다른 스타 스탠 윈스턴이 담당했다.

그러나 이미 <에드 우드>에서 릭 베이커와 함께 작업을 해본 적이 있었던 팀 버튼은, 스탠 윈스턴의 작업이 어느 정도 마음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릭 베이커를 기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원숭이’에 대해서는 릭 베이커를 따라올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 실재로 릭 베이커는 <킹콩>에서 시작해 <그레이스톡: 타잔> <마이티 조 영> <정글속의 고릴라> 등에서 원숭이에 관련된 특수분장을 혁신해온 인물로 할리우드에 알려져 있던 중이었다. 결국 팀 버튼은 릭 베이커를 설득해 <혹성탈출>의 작업에 참여하게 만들었고, 릭 베이커는 다른 작품의 제작이 한창인 상황에서도 놀랄 만한 특수‘원숭이’ 분장들을 선보이며 팀 버튼과 제작자들을 흥분시켰다.

이번 <혹성탈출>에서 릭 베어커가 선보인 특수분장은 <그린치>를 통해 그가 이루어낸 자연스러운 표정연출을 극대화했다는 면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마스크 개념을 완전히 벗어나 배우의 피부와 똑같이 움직이는 원숭이들의 얼굴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할 정도. 재미있는 것은 그런 분장을 배우들에게 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스스로도 원숭이로 분장해서 영화에 카메오 출연을 했다는 사실. 늙은 원숭이들이 둘러앉아 카드를 치고 있는 장면에서 그는 ‘늙은 원숭이2’로 등장했다. 물론 웬만한 그의 측근들도 그가 나오는 장면을 찾지 못했을 정도로 작은 역할이었지만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릭 베이커가 <혹성탈출> 이전에도 배우로 출연한 경험이 몇번 있었다는 사실. 크레디트에 오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역할을 연기한 <킹콩> <스타워즈>뿐만 아니라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스릴러> 등이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여하튼 <혹성탈출>이 영화 자체의 재미와 더불어 뛰어난 특수분장으로 볼거리까지 제공해준다는 측면에서 릭 베이커의 공은 아주 크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그의 행보에 대해 관심이 안 가질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얼마 전 그가 TV시리즈 <두얼굴의 사나이>의 원작만화인 의 영화화 작업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난 뒤로는, 많은 이들이 다시 한번 그의 작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정도다. 결과야 영화가 개봉될 예정인 2003년이 되어야 알게 되겠지만, 벌써부터 녹색 헐크의 변신장면이 눈에 아른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혹성탈출> 한글 공식 홈페이지 http://www.planetoftheapes.com/ko/mainintro.html

<혹성탈출> 팬페이지.http://www.prophecysi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