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어느 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사실 난 숨겨진 천재 피아니스트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체르니 100번으로 넘어가면서 피아노 교습소를 나와야 했다. 결혼하고 요리에 맛들이기 시작했던 또 어느 날, 다시다로 맛낸 알탕을 끓이며 ‘엄마의 요리재능을 내가 쏙 빼닮았구나’ 했지만, 물김치가 되어버린 깍두기를 보면서 역시 요리는 저∼기 오버 더 레인보우의 세계에 속한 것이라며 나를 위로했었다. 누구나 한번쯤 이런 착각해본 적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처럼 착각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진짜 재능을 발견한 사람들이 여기 있다.
5위는 <워터보이즈>의 ‘보이즈’가 차지했다. 예쁜 선생님 하나 보고 시작했다가 그 학교의 명물이 되어버린 남자 수중발레부 소년들. 수중발레가 밥을 준 것도 대학 입학 자격증을 준 것도 아니지만, 좋아하는 소녀의 마음을 얻게 되었으니, 사랑을 쟁취하게 한 재능만큼 값진 것이 또 있을까.
4위는 <누구나 비밀은 있다>의 한선영(최지우).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 하였던가. 완전 순진녀 선영, 성교육 공부 열심히 하더니만 개인교습 선생님 수현(이병헌)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까지 받는 경지에 이른다. 성실만한 재능은 없다는 교훈을 몸으로 보여준 케이스.
3위는 <크래프트>의 낸시(페어루자 볼크). 겉보기엔 마녀클럽이지만, 사실은 학교 내 왕따클럽의 멤버였던 낸시는 마녀의 피를 물려받은 친구 사라(로빈 튜니)의 영향으로 마녀로서의 재능을 자각하게 된다. 낸시는 가장 늦게 마녀의 재능을 발견하고서도 사라만큼 강력한 마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마력에 너무 집착한 낸시는 불행한 최후를 맞는다. 재능은 넘쳤지만 마음을 못되게 쓴 관계로 3위에 랭크.
<브로드웨이를 쏴라>의 깡패 치치(채즈 팔민테리)를 기억하는가. 가슴만 큰 완전초짜 여주인공, 늙은 여배우에게 홀딱 반해 배가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도 모르는 각본가이자 연출자. 이러다가는 무대 자체가 성립될지 모르겠다는 위기의 상황. 그런 무대를 구원한 것은 여주인공의 보디가드 치치였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연극은 점점 훌륭해지지만, 그런 그의 재능은 그도, 누구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무식한 주먹쟁이의 탈을 쓴 가장 영민한 각본가였던 치치가 2위.
1위는 <음란서생>의 선비 윤서(한석규). 우아하고 품격있는 조선 제일의 문장가인 윤서는 우연히 음란소설의 세계에 빠지게 되고, 당대 최고의 야설 작가가 된다. 참으로 해괴망측한 일이로다, 하고 탄식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윤서는 문장 자체에 재능이 있는 선비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