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인터뷰
타탄 배급사 사장 헤이미시 맥알파인

영국 타탄 영화·DVD 배급사 사장 헤이미시 맥알파인은 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다. 영화제를 따라 계속 여행하고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다시 말해 일년 내내 거의 한곳에 머물러 있는 일이 드문- 이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타탄사의 홍보책임자에게 떼를 쓰기 시작한 게 지난해 8월부터였다. 그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가 스코틀랜드 최고의 건축 재벌 맥알파인사의 손자라서도, <키즈>(Kids)의 감독인 래리 클라크과 런던의 한 클럽에서 주먹다짐을 벌였다는 영화계의 가십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것은 타탄사가 배급해온 한국영화의 물량이나 성공적인 브랜드 마케팅, 획기적인 배급 방식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는 그가 도대체 어떤 생각에서 이런 일들을 벌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원초적인 관심 때문이었다.

영국의 주요 인디 배급사 중 하나인 타탄의 ‘아시아 익스트림’ 브랜드는 영국 영화·DVD 배급업계에서는 전설적인 성공 신화로 자리잡았다. 아류라고 말하는 것은 좀 미안하지만, 타탄의 성공에 영향을 받아 다른 영국 배급 회사들도 아시아영화를 배급하는 새로운 브랜드를 앞다투어 만들었다. 타탄의 성공은 영국영화 배급업계에서 참신한 배급 패턴과 자원을 형성한 데도 의의가 있지만, 더 크게는 소수의 컬트 문화적 성격이 강했던 아시아영화에 대한 관심과 소비를 영국의 주류 대중문화 안으로까지 끌어올리는 데 큰 공헌을 했다. 1월 말에 영국 <BBC>의 위성채널인 <BBC4>의 <아시안 인베이전> 시리즈는 ‘새로운 아시아영화들이 영국에 침입해 들어오고 있다’는 명제하에 한국, 일본, 홍콩 세 나라를 방문, 감독들을 만나고 각국의 영화들을 소개했다. 물론 여기에는 타탄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한국, 일본, 홍콩 등지에서 흥미로운 영화들을 계속 생산해내고 있다는 밑받침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단순히 수입할 만한 좋은 물건이 있다고 장사가 되는 것만은 아닌 게 영화 배급업의 생리가 아닌가? 타탄의 성공은 감격스럽고 멋져 보이지만 그 역시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일이었다. 2001년 가을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타탄에 의해 영국에서 처음으로 상업적으로 배급되는 한국영화가 되었지만- 그리고 타탄은 이 영화의 배급에 상당한 물량공세를 퍼부었지만- 영화는 결코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성적을 거뒀다. 그런데도 타탄이 ‘아시아 익스트림’이란 브랜드를 내세워 일본, 홍콩, 타이, 한국의 영화들을 꾸준히 배급해온 뚝심과 참신성을 발휘해온 데에는 대부분의 영화 선택을 본인이 한다는 이 맥알파인의 심성과 기호가 반영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밝은 햇살이 반가웠던 2월의 런던, 소호의 한곳에서 맥알파인을 만났다. 그는 약속 시간보다 20분 정도 늦고 있었다. 인터뷰 다음날인 2월9일에는 소호의 한 극장에서 <친절한 금자씨>의 프리뷰 스크리닝에 이어 박찬욱 감독과의 Q&A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한국 돈으로 1만8천원이 넘는 티켓은 진작에 다 동이 나 있었고 <친절한 금자씨>는 그 다음날인 금요일 <Lady Vengeance>란 제목으로 개봉될 예정이었으니, 그의 일정이 얼마나 바쁠지 추측해보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늦어서 너무나 미안하다고 다정한 미소로 계속 사과를 하며 간신히 자리를 찾아 앉은 맥알파인이 숨돌릴 겨를도 없이 그동안 쌓아뒀던 질문을 그에게 퍼부었다.

-먼저 ‘아시아 익스트림’이라는 브랜드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이런 브랜드명을 가지고 여러 필름을 거의 동시에 릴리스하는 것은 영화 하나하나를 릴리스하는 것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을 텐데요? 어떻게 이런 방식과 브랜드를 생각했나. =모든 것은 어느 날 오후 내가 두편의 일본영화인 <링>과 <오디션>을 연속해서 보면서 시작됐다. 일본에서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싶어서 회사의 구매 담당 책임자를 일본에 보냈더니 그녀가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미이케 다카시 등 일본에서도 멋진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한국에서도 그 못지않게 흥미로운 영화들이 나오고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부산영화제에 직접 갔더니 새로운 움직임이 아시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국이 새로운 흐름의 영화들을 가장 많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굉장히 많은 일본영화와 한국영화들의 배급권을 샀는데, 어떻게 마케팅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더라. 자막이 달린 공포영화는 한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으니까. 적어도 서구에서는. 자막이 있는 영화들이 가능한 마켓이란 중상층 부르주아 관객을 대상으로만 존재해왔다. 그런 사람들이 공포영화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다. 그래서 좀더 어린 ‘망가’(manga: 일본 만화) 세대를 대상으로 하기로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망가’가 서구에서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처럼. 그래서 ‘아시아 익스트림’이란 브랜드가 창조된 거다. 그게 잘 먹혀들어서 좀더 젊은 세대들- 25살 미만의 젊은이들, 대학생들, 고트족(goths), 헤비메탈 팬, 오타쿠- 이 무엇인가 멋지고 흥분되는 것들이 여기 있구나 하고 인지하게 됐다. 아시아에서 이렇게 멋진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동시에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PG13등급에 맞는 공포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공포영화를 보러 가장 많이 오는 사람들이 데이트하는 청소년들이라는 데 기인한 거였고. 그러고 나니 골수 공포영화 팬들은 더이상 볼 영화가 없어진 거다. 내가 보기에는 이 두 가지 현상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만약 이런 브랜드가 없이 이 영화, 저 영화를 띄엄띄엄 개봉했다면 인지도가 생길 수 없었을 거다. DVD 마켓에서도 브랜드 이름이 있고 그 브랜드로 한달에 한두개씩 영화가 나오니까, 브랜드 인지도가 생기고, 사람들이 매달 한번씩 들러 ‘아시아 익스트림’ 하나씩 사가게 되는 거고, 그렇게 해서 충실한 팬들이 생기는 거다. 마치 다음번 콜드플레이 앨범을 기다리듯.

차근차근 이어지는 그의 대답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던 까닭도 있겠지만, 그 자신이 ‘어둡고 뒤틀린’ 영화들에 끌리는 취향인데다 그쪽의 관객층과 마케팅, 배급 방식을 몸으로 익혀온 그의 경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타탄은 ‘타탄 테러’라는 레이블을 가지고 있기도 하며, 맥알파인이 1985년 타탄을 공동 설립했던 때는 그 당시 막 생겨나고 있던 비디오 시장을 노린 것이기도 했다. 현재의 타탄 역시 극장 배급을 하지만, 역시 DVD 판매와 렌털이 회사의 ‘엔진’이다. 사실 ‘아시아 익스트림’의 성공은 타탄이 공포영화에 대한 기호, 새로운 아시아영화의 등장과 이 DVD 중심의 마켓을 효과적으로 연결시킨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의 DVD시장은 유럽 안에서도 2위와 3위인 독일, 프랑스와 월등한 차이를 보이는 규모의 큰 시장이다. 이렇게 브랜드명을 이용해 영화들을 마케팅하면서 타탄이, 자신들이 DVD로 출시하는 모든 영화를 극장에 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등은 꽤 오랫동안 극장 상영을 했고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들었기에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을 해보았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도 타탄에서 배급해서 꽤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영화는 ‘아시아 익스트림’의 이미지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아니다. 잘 알겠지만 타탄은 ‘아시아 익스트림’만 하는 회사가 아니라 전통적으로 아트영화들을 배급해온 회사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왕가위의 모든 영화들을 우리가 영국에 배급해왔다. 왕가위 영화들은 우리 회사의 일반 타탄 비디오의 이름으로 나간다. 잉마르 베리만,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프랑수아 트뤼포, 세르게이 아이젠슈테인, 오즈 야스지로 등의 영화들과 함께. 김기덕 역시 ‘아시아 익스트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왕가위처럼 ‘작가 감독’으로 마케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김기덕의 <나쁜 남자>는 ‘아시아 익스트림’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결국에 가서는, 우리는, 아니다, 김기덕을 ‘작가 감독’으로 자리매김하려면 계속 일관성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기덕 영화는 하나도 ‘아시아 익스트림’으로 묶지 않았다. 일본의 미이케 다카시라면 좀 다르다. 그의 영화들은 완전히 ‘아시아 익스트림’에 들어맞으면서 동시에 우리는 그를 영국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이후에 가장 잘 알려진 일본 감독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홍보를 하기도 했고. 각각의 감독들에게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은 ‘아시아 익스트림’으로도, 작가 감독 영화로도 어느 쪽으로도 마케팅할 수 있는 영화다. 그런데 그의 영화들이 ‘아시아 익스트림’에 들어맞기도 하는 데다가 영화 팬들이면 그의 영화가 ‘아시아 익스트림’ 레이블로 나가건 그냥 타탄 레이블로 되건 상관없이 그의 DVD를 살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시아 익스트림’에 넣었다.

-한국의 감독들과 어떤 관계로 일하나. =감독들과 가깝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 개봉을 할 때 가능하면 감독들이 영국에 오기를 부탁한다. 개별영화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감독이 서구에서 자신을 알려나가기 위해서도. 그리고 전체 한국영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들이 오게 되면 매체에 더 많은 인터뷰와 리뷰가 실리게 되고 그러면 기존의 팬들 이외의 대중도 지금 한국영화에 정말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고 알게 되니까.

맥알파인에 따르면 타탄이 ‘아시아 익스트림’으로 일년에 극장에 내거는 영화는 대략 12편이고 그중 한국영화는 8∼9편이다. 2006년이 두달이 지나기도 전에 타탄은 <달콤한 인생>과 <친절한 금자씨>를 개봉했다. 2005년에는 <알포인트> <텔미썸딩> <원더풀 데이즈> 등을, 2004년에는 <올드보이> <장화, 홍련> <거울 속으로> <지구를 구해라!> 등을 개봉했다. 3∼4년에 걸쳐 영국시장에서 ‘아시아 익스트림’ 브랜드를 제자리에 올려놓는 데 성공한 그는 2004년 겨울부터 미국시장을 개척 중이다.

-규모나 경쟁 면에서 비교가 안 되는 미국시장에서 어떻게 해나가고 있나. =미국에서 아시아영화의 인지도가 영국보다 5년은 뒤져 있는 데다가 워낙 마케팅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생각한 것보다 ‘아시아 익스트림’이 자리를 잡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천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전에 미국에는 이런 영화들이 배급된 적이 없기 때문에 우선은 인터넷의 컬트팬 중심으로 인지도를 굳힌 뒤 좀더 주류로 들어가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미국의 월마트에 ‘아시아 익스트림’이 들어가게 되었다.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아시아영화 리메이크 판권을 살 때마다 너무 기분이 좋다. 그러고 나면 언제나 굉장히 질나쁜 영화들을 만들어내거든. 그래서 그 영화들이 개봉될 때마다 리뷰어들이 이렇게 형편없는 영화를 보지 말고 오리지널 영화를 보러가라고 쓴다. 그것만큼 좋은 마케팅 홍보 효과가 없다. 게다가 공짜고. (웃음) 미국시장과 관련해서 한국 정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 미국시장에서의 불법복제물에 관한 거다.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영화의 불법복제에는 민감하면서 아시아영화의 미국 내 복제물에 대해서는 관대하거나 그냥 모른 척 방치하고 있다. 몇몇 미국 회사들이 아무 권리도 없이 아시아영화 DVD를 불법복제해서 마치 자기들이 배급권이 있는 것처럼 타워레코드나 보더스에서 버젓이 팔고 있는 데도 말이다. 그런 문제를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한국쪽 정부기구나 한국 프로듀서협회 등의 협의 창구가 있었으면 하고 절실하게 바라고 있다.

-최근에 왜 이렇게 ‘아시아 익스트림’이나 당신의 취향에 맞는 흥미로운 영화들이 한국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나. =‘아시아 익스트림’이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관객에게 다른 문화를 커튼 뒤로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것이 그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만든 것이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이 유니크하게 한국적인 영화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 더 만족스런 결과를 가져온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단지 한국시장만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들 수 있고 그렇게 해서 돈을 벌 수 있잖나. 국내시장이 한국영화에 매우 충실한 시장이기 때문에. 그런 이유에서 ‘국제성’이라든가 다른 외국시장을 고려하면서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고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영화가 계속 그러기를 바란다. 한국영화가 미국 관객을 위해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면 정말 모든 게 끝나는 것이라고 본다.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고 그런 맥락에서 쿼터 시스템이 무너질 것이란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한국인을 위한 한국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한다는 면에서 쿼터는 정말 중요한 제도라고 생각했는데 외부자로서의 나에게는 정말 끔찍한 결정으로 보인다.

매력이 넘치고 말을 잘하는 게 유능한 배급업자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서의 몇번에 걸친 재촉에 못 이겨 총총히 인터뷰 장소를 떠나기 전까지, 맥알파인은 거의 한 시간에 걸친 인터뷰 동안 그의 비전과 지식, 경험과 노력을 요령있게 풀어놓았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이 조금은 풀렸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유창한 말보다도 박찬욱 감독이나 김지운 감독, 한국영화 이야기를 할 때면 열정에 찬 톤으로 ‘아시아 익스트림’의 충실한 팬들 중 하나처럼 말하는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 이 인터뷰는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영국 통신원 이민정씨와 공동으로 이루어졌고, 인터뷰의 원문 기사는 해외통신원 1월 보고서(영진위 웹사이트 해외진흥부 자료실)에도 기재되었음을 밝혀둡니다.)

관련인물

글 이민정·사진 앨런 데이비슨5(Alan Davidson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