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소설과 실사영화에 불었던 ‘자위대 바람’이 이젠 애니메이션에까지 옮아온 모양이다. 물론 오타쿠들의 애니메이션 문화에 ‘미소녀’와 ‘메커닉’의 조합은 항상 있어왔지만, 이 군사물들이 한 걸음 나아가 현실 속의 자위대를 소재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월부터 지바 텔레비전 등에서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 <택티칼 로어>(タクティカルロア)는 해상자위대를 꼼꼼히 취재해 만든 작품. 근 미래를 무대로 전원 여성승무원인 민간 호위함이 해상 테러리스트들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멋있거나 엉뚱하거나 섹시한 여성승무원으로 가득한 설정에서 알 수 있듯, 언뜻 보면 몇년 전부터 일본을 휩쓰는 ‘미소녀 모에’ 아니메(‘모에’는 열광하고 빠진다는 오타쿠의 신조어)로 보인다. 하지만 함 내의 지휘명령 계통 묘사 등은 상당히 실감나며 리얼한 전투 장면에서는 완전히 분위기가 바뀐다. <TV도쿄>가 일요일 심야에 방영하는 애니메이션 <되살아나는 하늘-레스큐 윙스>(よみがえる空-RESCUE WINGS)는 현실의 자위대를 그린 작품이다. 항공자위대 항공구조단의 신입 파일럿이 화재나 사고현장에서 인명구조를 하는 내용이다.
<‘모에’ 이해! 자위대 비주얼가이드>(萌えわかり!自衛隊ビジュアルガイド)라는 책까지 나왔다. ‘육상자위대짱’, ‘해상자위대짱’, ‘항공자위대짱’이라는 소녀의 모습을 한 신(神) 견습생 3명이 자위대의 제복과 장비부터 역사와 계급까지 귀여운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군사 마니아 위주의 전문서가 아니라 진짜 자위대 입문서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해상자위대 홍보실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영화 등에 ‘협력적 홍보’를 한 건수는 2001년 19건에서 2004년 84건으로 4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지난해 영화 <망국의 이지스>엔 육·해·공 전 자위대가 협력해 화제가 되었고, <남자들의 야마토>는 롱런하며 관객 34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자위대쪽은 “지금의 10대는 어려서부터 해외 파견과 재해 출동의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에 선입견이 없다”며 “특히 애니메이션은 시청자층이 젊어 딱딱한 이미지를 부드럽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계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전시하의 오타쿠>의 저자 사사키바라 고는 “메커닉과 미소녀가 나오는 80년대적 감각을 갖고 무자각적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위험하다. 이전엔 미소녀가 싸우는 작품도 보는 이들이 패러디 내지 비유라고 인식하며 즐겼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엔 그런 전제가 없어져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