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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짐 자무시, 길 위에서 시간을 묻다, <브로큰 플라워>
ibuti 2006-02-24

1980년대 초반 짐 자무시는 니콜라스 레이와 빔 벤더스의 도움으로 두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그 사이에 장 외스타슈는 자살했다. 그들의 흔적이 유난히 역력한 <브로큰 플라워>에서 20년 전으로 떠나는 돈의 발걸음은 자무시의 데뷔와 외스타슈의 자살이 벌어진 시간으로 향하고 있다. 중년의 시기를 통과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러스티 맨>의 제프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라는 영화제목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자무시는 자신이 막 지나온 사십대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떠난 외스타슈에게 <브로큰 플라워>를 바친다. 벤더스가 공간의 의미로 길 위를 떠돈다면, 자무시는 시간의 길 위에서 부유한다. 신세계의 막막함에 방황하던 청년(<천국보다 낯선>)과 세 갈래 길과 마주했던 청년도 중년도 아닌 세 남자(<다운 바이 로>)를 지나 한 중년 남자가 도착하는데, 그는 네 갈래 길의 교차점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길 위에서 시간을 묻는다. <브로큰 플라워>는 철지난 돈에게 보내온 분홍 편지(편지 자체가 누군가의 농담일지 모르니, 행여 편지를 보낸 여자와 아들의 정체에 대해 묻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기를)와 꽃다발·가운·그림·명함·바지·기름통·타자기에 관한 코미디이거나 자기가 보내야 했을 편지를 받은 남자의 어설픈 추리극 아니면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며 적어가는 쓸쓸한 일기장 중 하나다. 네명의 여자가 한번씩 등장할 동안 우리는 ‘돈의 사생활’을 들춰보게 되고, 죽은 여자의 무덤 앞에서 비에 젖은 그를 보며 연민의 심정도 맛본다. 하지만 <브로큰 플라워>는 <러스티 맨>처럼 회한 가득한 작품은 아니다. 돈의 걸음걸이는 한치의 조급함이라곤 없이 유유자적하며, 분홍색 소품과 뽕짝거리는 음악은 가벼운 웃음을 동반한다. 그렇게 느린 속도와 유머로 짜여진 <브로큰 플라워>는 태피스트리와 같아서 오돌토돌한 면에서 간혹 앙금과 슬픔이 느껴진다 해도 슬쩍 비키면 포근한 자리가 옆에 있다. 모든 계절엔 끝이 있음을 알게 된 남자는 그의 곁에서 꽃이 시들어도 이제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혹시 그의 내일이 궁금하다면 그건 언젠가 자무시의 다음 작품에서 보면 될 일이다. DVD가 자연스러운 영상을 보여주는 가운데, 부록으로는 ‘버스의 소녀’ 삭제 장면(2분), 슬레이터의 행렬인 ‘시작부터 마무리까지’(8분), 자무시의 목소리가 들어간 ‘농장 신’(4분) 등 짧지만 귀여운 것들이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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