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썬데이서울>은 추억의 주간지 ‘썬데이서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정치, 사회, 문화, 연예, 사건 실화 등 모든 분야를 다루되 야릇한 눈빛을 보내는 수영복 차림의 여인들 사진과 적절하게 버무려 적당하게 오락적이고, 적당하게 야했던 주간지 ‘썬데이서울’은 독자들의 은밀한 사랑을 꾸준하게 받았다. 일반 시사 잡지처럼 버스, 지하철에서 당당하게 말아 쥐고 다닐 수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옆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고속버스나 화장실, 혹은 삼촌이나 사촌오빠들의 방구석에서 언제든지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잡지였다. 68년에 창간되어 91년에 폐간된 이 잡지가 갖고 있던 오락성과 대중성은 묘한 매력과 향수를 자극하는 측면이 있어 모 인터넷 언론은 이 잡지를 자신들의 유일한 라이벌로 규정하기도 했다. ‘썬데이서울’적 가치를 영화의 얼굴로 선택한 <썬데이서울>은 온갖 무게 잡는 소재와 주제, 형식으로부터 벗어나 키치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세편의 이야기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 ‘틴 울프’는 사춘기의 2차 성징을 남다르게 겪는 소년 도연(봉태규)에 관한 이야기다. 학교만 가면 매일 얻어맞고 돈 빼앗기고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도연의 유일한 낙은 앞자리에 앉는 얼짱 퀸카 지연(고은아)을 보는 것이다. 그녀를 보는 동안, 혹은 그녀와의 로맨스를 상상하는 그 순간에는 그는 현실적인 고통을 다 잊고 무아지경의 황홀경에 빠진다. 단지 지연을 향한 <몽정기>나 <색즉시공>류의 성적 판타지를 도발하기 위한 원인을 제공할 뿐이다. 마치 <이중간첩>처럼 제목에서 변신의 내용을 다 폭로하고 있는 이 에피소드는 예상되는 결말을 지나치게 지연시키고, 정작 보여줘야 할 쇼킹한 장면을 두루뭉수리하게 처리함으로써 지리멸렬해진다. 게다가 성장통과 늑대인간을 결합한 아이디어도 마토우 사나미나 미도리 유카코의 늑대인간 만화들을 떠올리게 만들어 그다지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자동차 고장으로 어느 마을의 외딴집에 손님이 된 남자(박성빈)와 기괴한 가족을 그린 두 번째 이야기는 스필버그의 ‘어메이징 스토리’들 가운데 한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공포의 주체가 객체가 계속해서 역전된다는 설정은 흥미롭지만 기묘하게 늘어지는 편집 타이밍과 어색한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관객은 공포를 느껴야 할지 실소를 터뜨려야 할지 몸둘 바를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에피소드에서 감독이 ‘선데이서울’의 시절에 향수를 갖고 있는 관객을 위해 준비한 선물은 정소녀와 김추련이라는 그 시대의 스타 아이콘과 흑백 TV를 통해 선보이는 대학가요제 화면들이다. 그리하여 이 에피소드는 복고 취미와 호러 장르를 적절하게 배합하여 특별한 목적없이 선혈이 낭자한 화면들과 기괴한 결말을 이끌어낸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무협 판타지라 이름 붙일 만한데,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오토바이에 관을 연결하여 끌고 다니는 청년 태풍(김수현)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치열한 복수심을 뒷받침할 수 없는, 형편없는 무술 실력의 소유자로 우연한 기회에 발휘하게 된 의협심 때문에 한 정파의 무림소녀 영자(이청아)와 관계를 맺게 되어 무술을 연마한다. 열혈청년 태풍은 오로지 아버지의 원수를 향한 강한 적개심에 불타고 있기에 자신을 향한 영자의 간절한 눈빛을 알아채지 못한다. 태풍이 지나치게 진지한 태도로 복수와 응징에 목을 매는 까닭에 무림소녀와의 멜로 라인은 감정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산만한 느낌만 주고 사라진다. 세편의 에피소드 중에서 코믹적인 요소가 가장 강한 이 작품은 무협영화의 비장한 클리셰들을 묘하게 비틀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게다가 이현우와 DJ DOC 등 빛나는 카메오들의 어색한 연기가 이 영화의 아마추어리즘적인 성격을 한층 강화하면서 감독의 말대로 ‘상식을 벗어난’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펀치 라인’은 에필로그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일용 엄니’의 캐릭터를 무한 확대하고 창조적으로 변형하여 새로운 생명력을 찾아낸 김수미의 힘 때문이다. 세편의 생뚱맞은 에피소드를 연결해주는 인물은 전재형과 용이 콤비인데, 그들이 직접 목격하게 된 최초이자 마지막 사건이 바로 김수미를 둘러싼 미스터리다. 가장 짧지만 가장 강한 임팩트를 가진 에필로그를 보고 있으면, 다른 에피소드들도 이 에필로그가 갖고 있는 절제와 압축의 미덕을 견지하고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극대화된다.
<썬데이 서울>은 코미디, 호러, 무협 그리고 미스테리까지 망라한 일종의 장르 영화 종합 선물세트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사건 현장을 무심히 지나치거나 풍문만 전해 듣는, 전재형과 용이 커플과 같은 입장에 머무르도록 만든다. 관객은 극의 어느 순간에 몰입해야 할지 모른 채 영화 내내 배회하다가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관람자가 갖게 되는 일종의 ‘긴장’에서 비롯되는데, 적절한 시점에서 커트되지 않는 쇼트들, 적당한 억양과 리듬으로 구사되지 않는 대사들, 상황에 몰입을 방해하는 어색한 동선과 표정연기들이 관객을 불편한 상태로 몰아넣는다. 이 작품은 ‘웰-메이드’ 영화와 결별을 선언하고 엉뚱한, 발칙한, 기똥찬...상상’을 기치로 내걸면서 낯선 형식과 스토리 전개 방식을 택했지만,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그러한 ‘소격효과’를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바가 부재하기에 이 영화가 내세운 기치가 무색해진다. 낯설음을 감당할 신선한 상상력은 준비되지 않은 채, 설익고 어색한 연출력과 부조리한 서사가 충돌할 때 그런 ‘상상’의 대가는 가혹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썬데이서울’이 표방한 대중성과 소통하기에 이 영화는 너무 멀리 있는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