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아버지인 사울(리처드 기어)은 대학에서 유태교 신비주의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영리하고 음악에 재능이 있는 아들 애론을 편애했지만 어린 딸 엘리자(플로라 크로스)가 철자법 대회에서 최연소 우승을 거듭하자 딸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단어의 의미와 어원만 듣고 모르는 철자를 떠올리는 엘리자. 사울은 그 재능이 단어의 핵심에 다가가 신과 직접 대화하는 카발라 수행방법을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흥분한다. 그러나 그 사이 아내 미리엄(줄리엣 비노쉬)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떠올리며 불안해하고, 아버지에게 소외된 애론은 힌두교에 빠져든다.
마일라 골드버그의 소설을 각색한 <다섯번째 계절>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어린 소녀의 이야기인 것처럼 시작된다. 벌써 히브리어를 해석할 줄 아는 오빠의 그늘에 가려졌던 엘리자는 눈을 감고 머릿속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나씩 글자를 떠올리고, 나뭇잎 무늬 원피스에서 글자 모양 덩굴을 피워올리며 몰랐던 단어의 철자를 조합한다. 그러나 <다섯번째 계절>은 그런 신비한 암시와는 관계가 많지 않은 영화다. 대물림되는 초능력과 계시에 관한 이야기인 듯하지만, 사실은 봉합해두었던 가족 개개인의 상처가 밀고 올라오며 빚어지는 분열과 화해의 영화인 것이다.
유태교도인 사울은 성령의 빛을 감당하지 못해 세상이 깨어졌으며 그 깨어진 조각을 다시 붙이는 것이 신을 섬기는 인간의 사명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는 정작 자신의 가족이 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한다. 미리엄은 빈집을 돌아다니며 반짝이는 작은 물건을 훔치고, 히브리어를 공부하던 애론은 힌두교 집회의 열기에 휩싸이지만, 사울은 오직 엘리자의 영적인 재능에만 집착한다. 그 모든 걸 보는 이는 엘리자이고 선택 또한 엘리자의 몫으로 주어진다. <다섯번째 계절>은 이처럼 진부한 주제를 강론하기 위해 언젠가는 중요한 비밀이 드러날 듯한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것은 연필 자국을 따라 흩어지는 알파벳이나 종이학의 날갯짓처럼 독창적인 이미지의 형태를 취할 때도 있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비밀을 아무리 암시해보아야 진짜 스릴러처럼 긴장되기는 힘든 일이고, 자칫 허무하다는 느낌까지 줄 수도 있다. <다섯번째 계절>은 독특한 가족영화가 되기 위해 지나치게 멀리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