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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가슴에 감독의 피가 흐른다, <싸움의 기술>의 김응수
김수경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6-01-16

1961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김응수는 당시 명문이던 군산 제일고에 입학할 때만 해도 배우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300∼500원 하던 삼중당문고를 10권씩 끼고 살면서” 변화는 시작됐다. 처음에는 소설가를 지망했지만 갈수록 연극과 영화로 마음이 기울어졌던 김응수는 연극영화과 원서를 사서 무릎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4km나 걸어가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부친은 “부자의 연을 끊자”고 답했다. 울면서 원서를 찢어버리고 친구 집에 얹혀 지내며 술 마시며 소일하던 그에게 서울예대 연극과가 떠올랐다. 의외로 대학 재학시에는 “대단한 선배들이 즐비했던 목화에 들어가기 무서웠다”고 그는 말했다. 고민 끝에 “3년쯤 연습실 청소하면 단역이라도 주시겠지” 하고 입단한 목화에서 김응수는 <운상각>의 주연을 따내며 빠르게 도약한다.

“당시에는 연극언어가 가진 표현의 한계를 참을 수 없었다.” 이윤택이 연출한 <오구>의 주인공을 맡고 오태석의 애제자로 대학로에서 승승장구하던 김응수가 영화연출을 공부하러 일본으로 떠난 이유였다. “김응수를 10년간 목화의 주인공으로 기용하려던” 오태석의 만류와 꾸중에도 그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야마 부시코>를 보고 오랫동안 존경하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일본영화학교 입학전형은 이미 기간을 넘긴 상태였다. 목화의 일본 공연에서 그의 연기를 눈여겨봤던 후지타 겐(이마무라 쇼헤이 작품의 시나리오 작가)이 그를 특차 형식으로 논술과 면접 시험에 응하게 했다. 그곳에서 김응수는 외국인으로는 처음 졸업작품의 연출을 맡는다. 재일동포 남자의 정체성을 다룬 <사자의 계절>은 평론가 사토 다다오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졸업을 앞둔 그에게 “네가 원하는 어떤 일본 감독의 연출부라도 일하도록 추천하겠다”라고 말했다. 김응수가 택한 인물은 다큐멘터리 <가자! 가자! 신군>으로 유명한 하라 가즈오 감독이었다.

일본 생활이 7년으로 접어들자 김응수의 인생은 다시 한번 요동친다. “매일 피눈물이 흐르는 지독한 향수병에 걸린” 그에게 김상진 감독의 <깡패수업> 일본 촬영이 절묘하게 연결됐다. 처음에는 연출부로 참여한 김응수는 김 감독의 제안으로 단역 출연한다. 이후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이때 “중학교 때부터 목화의 연극에 심취했던” 임상수 감독이 그를 찾아와서 출연을 제안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시작으로 김응수가 임 감독의 전작에 출연하는 오랜 인연의 서막이 오른다. <그때 그사람들>의 시나리오를 가져와서 임 감독이 김응수에게 “형이 하고 싶은 역을 고르라” 했던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1월에 촬영이 시작되는 임 감독의 신작 <오래된 정원>에서도 그는 응수라는 본명으로 출연한다. <그때 그사람들>에 이어 백윤식과 호흡을 맞춘 <싸움의 기술>에서 그는 주인공 병태(재희)의 아버지 병호로 분했다. “담배는 뭐 피우냐?”라고 병태에게 묻는 병호에게는 실제 두딸의 아버지인 김응수의 삶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병호는 아내를 자신의 총으로 쏜 극한의 죄책감에 시달리며 판수(백윤식)와 어울리는 아들 병태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지 못하는 안쓰러운 인물이다. 백윤식은 판수와 병호가 마주 앉은 다방 장면의 김응수에 대해 “제대로 감정을 누르고 가는 정말 흡족한 연기”라고 평했다.

한편 김응수는 박춘식으로 출연한 <청연>의 일본 프로덕션에도 기여했다. 일본 배우들의 의사소통과 프로덕션 일정을 준비한 그에겐 연출의 꿈이 남아있어 보인다. <깡패수업>부터 인연을 맺은 싸이더스F&H 차승재 대표가 “너는 왜 시나리오 안 가져오냐?”라고 하면 “나오면 당신 회사랑 한대?”라고 농담하는 김응수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학교 시절 75점을 준 시나리오를 품고 있다. “절반은 이마무라 선생님 몫이기 때문에 공동각본 타이틀이 들어갈 것”이라는 그 대본이 영화화되면 우리는 감독 김응수를 만나게 될 것이다. 현재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와 박철희 감독의 <예의없는 것들>에 출연 중인 김응수는 KBS 주말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에서는 “고고장 가고 술 잘 먹는” 이상한 신부로 안방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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