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지구 온난화로 도시가 수몰되고 자원이 고갈된 미래. 자원을 소모하지 않고 기능을 다하는 로봇이 널리 보급된 가운데, 사이버트로닉스 사의 하비 박사(윌리엄 허트)는 사랑의 감정을 소유한 최초의 로봇 데이빗(할리 조엘 오스먼트)을 죽은 아들의 모습을 본떠 개발한다. 아들이 5년째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헨리(샘 로바즈)와 모니카(프랜시스 오코너) 부부에게 입양된 데이빗. 엄마의 이름이 입력된 순간부터 데이빗은 모니카를 절대적으로 사랑하지만, 코마에서 깨어난 친아들 마틴이 데이빗을 질투하면서 사고가 연발하자 부모는 데이빗을 말하는 곰인형 테디와 함께 숲에 버린다. 데이빗은 엄마가 읽어준 <피노키오>를 구원의 예언으로 믿고 자신을 ‘진짜 아이’로 만들어 엄마의 애정을 돌려줄 푸른 요정을 찾아나서고, 도망중인 지골로 로봇 조(주드 로)와 동행이 된다. 로봇을 테러하는 폐기물 축제와 환락 도시 루즈 시티의 모험에서 살아남은 둘은 맨해튼의 하비 박사를 찾아가지만 거기서 견디기 힘든 진실에 직면한 데이빗은 투신한다. 물 밑에서 푸른 요정 동상을 만난 데이빗이 기도를 끝없이 반복하는 가운데 2000년의 시간이 흐른다.
“오너라, 인간의 아이야.
물을 지나 황야를 건너,
요정의 손을 잡고,
세상은 네가 이해하는 것보다 더 많은 울음으로 가득하니.”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 Review
죽은 거장과 살아 있는 천재의 도킹이라는 외면하기 힘든 유혹으로 오랜 기다림을 도도히 강요해온 영화<A.I.> 는, 창백한 포말을 토하는 바다 위를 흐르는 내레이션으로 막을 연다. 미래의 세계는 멸망은 면했으나 피폐했고, 오르가(생명체)와 메카(로봇)의 두 ‘종족’이 공존하고 있다. 디스토피아를 다룬 흔한 블록버스터 같은 서문을 낭독한
<A.I.> 는 그러나 파도를 헤치고 지구를 구하러 나서는 대신, 그 광포한 대양에 가장 슬픈 소리를 내며 흘러든 작은 시냇물을 따라간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연약한 ‘심장’을 갖고 태어난 한 아이에게 영화를 송두리째 바친다. 이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태양계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인 동시에, 우주의 무게를 짊어진 무거운 주제를 풀어가는 슬기로운 해법처럼 보인다.
초간편 사용 매뉴얼이 딸린 데이빗은 미래 중산층의 가전제품이자 고급 장난감이며 한번 입력된 대상을 육신이 폐기되는 날까지 사랑하도록 프로그램된 인공지능 로봇이다. “그의 사랑은 진짜, 그러나 그는 가짜였다”는 카피는
<A.I.> 의 저변을 복잡하게 흐르는 패러독스들 중 제1항. 모니카와 헨리 부부의 현관에 나타난 데이빗의 희끄무레한 실루엣은, 스필버그 감독이 <미지와의 조우>와
<E.T>의 외계인을 처음 우리에게 소개한 순간처럼 아련하고도 사랑스럽다. 판유리문 뒤에 숨어 백일몽같이 집안 곳곳에 어른거리던 데이빗이 마침내 모니카로부터 코드를 입력받던 날, 백열 후광으로 눈부시게 밝혀진 배경은 E.T와 엘리엇의 ‘교령’을 추억하게 한다.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신전의 석벽에 조각된 설화만큼 낡고 또 낡은 베드타임 스토리다. <A.I.>의 이야기 회로는 <피노키오>와 <밤비> <오즈의 마법사>가 스케치하고 스필버그가 <슈가랜드 특급>부터 <후크>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재현해온, 요람 잃은 어린이의 오디세이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형상을 하고도 인간이 이름을 불러주기만 기다려야 하는 피조물의 고통은 <프랑켄슈타인> <블레이드 러너> <토이 스토리> <바이센테니얼 맨> 등에서 이미 충실히 연구된 테마다. 그러나 예상 못할 전개도 놀라운 에피소드도 애시당초 있을 수 없는 실내 시퀀스들로 구성된 <A.I.>의 초반 1시간은, 특별한 부류의 재능만이 구현할 수 있는 경지의 정묘(淨妙)한 영화적 매혹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데이빗의 탄생, 입양, 최초의 거부반응, 우연한 식탁의 웃음이 가져다준 관계의 해빙을 좇아 평범하게 흘러가면서도, 영화가 계산한 감정의 벡터 속으로 완벽하게 관객을 포섭해낸다. 능숙하다 못해 보이지도 않는 손길로 감정의 경혈(經穴)을 짚어내는 촬영과 편집, 지극히 자연스러운 미래 의상과 프로덕션 디자인, 위풍당당한 평소 취향을 걷고 영화의 은근한 긴장과 품격을 유지한 존 윌리엄스의 음악. 이 모든 요소를 유선형으로 모아 은어처럼 매끄럽고 우아하게 헤엄쳐 나아가는 <A.I.>의 제1장에는 꼼꼼한 스토리보드를 옆구리에 낀 스탠리 큐브릭의 유령이 출몰한다. 하긴 이 유려함은 최고의 스필버그 영화로부터도 그다지 멀지 않다.
<A.I.>의 페이지를 들추며 두 감독의 지문을 감식하려는 시도는 부질없지만, 가장 감성적인 큐브릭 영화이자 가장 지적인 스필버그 영화라는 총평에는 이의가 없을 성싶다. 어느 때보다 냉철한 <A.I.>의 스필버그는 도입부의 강연장면에서 선명한 화두를 던진다. 사랑할 줄 아는 로봇을 만들었을 때 인간은 그 사랑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사고하고 감각하는 존재에 대한 착취와 모독은 종의 차별과 무관한가. 스필버그는 이 물음들을 데이빗과 지골로 조의 모험이 휘황한 스펙터클 속으로 나아가는 중반 이후에도 부단히 상기시키며 영화의 키를 단단히 움켜잡는다. 하지만 이 항해에서 중도 하선하지 못하도록 관객의 소매를 붙드는 것은 역시 아이의 눈물. 데이빗을 바라보는 관객이 느끼는 아픔의 큰 부분은 그 애가 눈을 깜박일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온다. 엄마의 일거수일투족, 엄마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데이빗의 유리알 같은 동공은 진짜 아들 마틴에 지지 않으려고 먹지 못하는 음식을 씹다 얼굴이 허물어질 때도, 수영장 밑바닥에 홀로 버려졌을 때도 동그랗게 열려 있다. 스필버그는 혹시 ‘인공 감성’이 만들어진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발명자가 아닐까 싶을 만큼 정밀하게 감정의 수로를 설계한다. 그리고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조숙한 재능에 완공을 맡긴다. “전 음식을 못 먹지만 식탁에 앉는 일이 좋아요” 같은 대사, “엄마와 헨리를 사랑해요. 햇살이 빛나요. 나랑 마틴은 엄마의 진짜 아들이고 테디(곰인형)는 아니에요”라는 색색 크레용으로 쓴 편지에 시큰했던 관객은 “엄마, 진짜가 아니라서 미안해요, 버리지 마세요”라는 울부짖음에 이르면 마음이 저려 귀를 틀어막고 싶어진다. 어린아이나 동물의 상처를 카메라 앞에 벌리는 것은 영화가 섣불리 범하는 착취다. 그러나 데이빗은 마냥 귀엽게 울고 웃는 아이가 아니라 번민하고 싸우고 깨닫는 캐릭터이며, 극단적 사랑에 휘말린 불안한 영웅이다.
스필버그는 선악의 판가름에도 몹시 신중을 기한다. 마틴이 다칠까봐 데이빗을 버리는 부모의 행동이나, 로봇을 혐오하고 인간성을 예찬하는 사람들이 벌이는 폐기물 축제는 잔혹하지만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인간사’로 그려진다. 한편, 뛰어난 영화가 흔히 그러하듯 <A.I.>는 영화의 운명에 대한 코멘트로도 읽힌다. 현대인의 대표적 가상 현실이자 감정의 거울인 영화의 모험은 어디서 끝날 것인가. 삶에서 실재와 환상의 힘을 어떻게 저울질할 것인가. 영화의 구경꾼인 우리는 무엇에서 위안을 구하는 것일까. 현대 대중영화의 토대를 흔들어놓고 비난과 예찬을 한몸에 받아온 장본인 스필버그는 아마도 <A.I.>의 관객이 그 정도의 은유를 짐작해도 개의치 않으리라.
‘관객 고문’의 귀재인 스탠리 큐브릭의 센스와 ‘관객 접대’의 달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센시빌리티가 잉태한 시험관 아기인 셈인 <A.I.>는 일단 큐브릭의 컨셉 위에 스필버그 영화의 잠재력을 꽃피운 성공적인 합 명제로 보인다. 다만 스필버그는 끝내 인간성을 로봇이 희구할 만한 ‘무엇’으로 고집하고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인간은 존재의 비밀을 쥐고 있다”는 신념을 설파한다. 모르긴 해도 그것은 큐브릭이라면 무릅쓰지 않았을 수고 아닐까. <A.I.>는 스케일 큰 플래시 포워드로 마지막 장을 넘긴다. <와호장룡>의 용을 닮은 처연한 눈빛으로 심연에 자기를 던진 데이빗은 빙하기가 지난 2천년 뒤 얼어붙었던 기원과 함께 깨어난다. 그리고 영원 같은 단 하루를 같이 보낸 엄마 곁에 누워 두 눈을 감고 달콤하게 ‘소멸’한다. 꿈을 꾸는 안드로이드. 이것은 서로를 잃어버리고 서로를 구원한 가족이 오래오래 함께했다는 전형적인 스필버그식 해피엔딩일까. 아니면 그저 차디찬 한쌍의 죽음일까. 잠든 데이빗을 토닥이는 우리가 애착하는 것은 그의 인간다움일까, 아니면 인간에게 결핍된 맹목적이고 순정한 감정일까. 큐브릭을 만난 스필버그는 망설임과 물음표로 풍부해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거짓말의 최고수가 시를 쓰기 시작했다.
김혜리 기자 vermeer@hani.co.kr
▶ A.I.
▶ <A.I.> 제작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