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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째 작품 <천년학> 준비하는 감독 임권택
사진 이혜정문석 2005-11-11

“99번째든 100번째든 나에겐 언제나 첫 영화예요”

11월2일의 태흥영화 사무실에는 온화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연출부와 제작부로 보이는 청년들이 웅성거리는 테이블 주변의 벽에는 커다랗게 확대된 신별 분석표와 캐스팅표, 촬영 후보지의 사진 등이 단정하게 붙어 있었다. 이 가정집을 개조한 사무실 2층 벽이 빽빽하게 메워져 있다는 얘기는 거대한 작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징표이기도 하다. 이 작전의 이름은 <천년학>이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연출작’이라는 부제급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게 될 <천년학>은 이청준의 단편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삼으며, <서편제>의 맥락을 잇는 이야기다. <천년학>의 주인공은 의붓아버지 유봉의 광기어린 예술혼 때문에 눈이 먼 송화(오정해)와 유봉과 배다른 동생 송화를 떠났던 동호(김영민)다. 그러니까, <천년학>은 동호가 유봉과 송화 곁을 떠난 뒤부터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게 된다. 아직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어떤 영화적 형식미가 표출될지는 알려지지 않은 상태.

사무실 저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 미지의 작전 내용을 속속들이 품고 있는 절대자의 묵묵한 모습이 보인다. 생애 100번째 연출작 <천년학>을 준비하고 있는 임권택 감독의 표정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심했지만, 굳은 어깨는 한달이 채 남지 않은 촬영에 대한 긴장을 드러냈다. 하지만 막상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거장의 표정은 상기됐고, 목청의 톤도 올라갔다. 그는 채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고민과 희망을 털어놓았다. <천년학>에 대한 그의 이야기 속에선 100번째 작업에 대한 기대감과 새로움을 계속 창조해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수시로 교차하고 있었다.

-요즘 바쁘시죠.

=좀…. 이제 막 몰아 찍어야 하니까. 한 3개월 동안에 다 찍어내야 하니까요.

-이번에는 촬영기간이 좀 짧네요.

=이 영화는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이 아닌데, 내가 그렇게 몰아치기로 찍은 지가 하도 오래돼가지고. (웃음) 그렇게 될는지…. 옛날에는 한 20일 만에 영화가 완성돼 나왔으니까. (웃음)

-촬영은 언제쯤 시작할 생각이십니까.

=11월 중순에서 하순, 이렇게 잡고 있는데, 내년 2월, 3월까지 찍을 것 같네요.

-지금 일정대로라면 칸영화제에 닿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글쎄, 될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알기로는.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그쪽 사람을 만났더니 ‘기다리는 데까지 기다리마’라면서 ‘다 해서 보내라’, 이런 얘기까지 하더라고요.

-올 초에는 5월부터 촬영에 들어가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기다리는 분들이 꽤 있었는데.

=늦어진 제일 큰 이유가 시나리오요, 시나리오. 왜 그러냐 하면은, <서편제>라는 전편이 주는 인상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느냐 하는 문제가 걸려 있고, 얘기 자체의 구성이며 영화적 형식도 옛날에 비해서는 그 인상이 달라져 가야 하기 때문에 시나리오에서 제일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이제야 제일 큰 얼개가, 좌우간 끝났으니까, 이제야.

“나이가 들면서 사랑한다는 게 소중하다는 걸 알았지요”

-그럼 올해 초 당시에는 얼개가 안 잡혀 있던 상황이었습니까.

=아니, 여러 가능성을 놓고 있었죠. 또 이청준 선생의 몇몇 단편소설을 <천년학>에 도입하는 문제도 여러 각도로 생각하고 했는데, 결국 <선학동 나그네>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결국 빙 돌아서 처음으로 다시 돌아왔던 거죠. (웃음) 그러니까 굉장히 많은 시간을 그렇게 돌고 돌아서 이제야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 거죠.

-시나리오는 언제부터 준비하셨습니까.

=1년이 다 됐어요. 지난해 이맘때쯤 시작했으니까.

-시나리오를 만드는 데 어떤 점을 가장 고민하셨습니까.

=판소리가 배경에 많이 깔리는 영화지만, 판소리를 앞세우는 게 아니고 사랑 얘기를 이제 한번 해볼까 하니까, 이게 어려워서…. 늙어가지고 사랑 얘기를 하려고 하니까(웃음)… 좀 힘이 들더라고.

-사랑이라고 하면….

=물론 이성간의 사랑이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그런 비애스러움을 전편에 담고 있는데, 결국 그 사랑의 감정을 판소리로 이렇게 승화해가는 과정, 그런 얘기예요.

-그러니까 <서편제> 때의 동호(유봉으로부터 도망친 송화의 오빠. <서편제> 당시 김규철이 연기)와 송화의 사랑인가요.

=그렇죠. 두 사람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른데, 단지 유봉이라는 소리 선생이 거둬먹이면서 가족이라는 틀로 묶인 거지. <서편제>에서 동호는 혼자 사는 과부의 아들로 돼 있고, 송화는 유봉이 어디선가 데려다가 키우는 그런 관계거든. 그래서 윤리적으로는 지켜야 할 아무 근거도 없으면서 가족이었다는 것이 그렇게 사랑을 옥죄고 이런 것이죠. 이 영화는 <서편제>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오래 머뭇거리고 허우적대고 해서는 안 된단 말이에요. 그대로 따로 한편의 영화가 돼야 하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주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그런저런 것이 이렇게 사람을 죽여버리는 거야. (한숨 섞인 웃음)

-임권택이라는 이름과 사랑 이야기는 솔직히 잘 연결이 안 됩니다.

=나로서는 정말…. 사랑 얘기를 내가 도무지 찍은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인 거요, 처음. 나이가 들면서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생각하게 된 건지….

-예전에도 사랑 얘기는 찍으신 적이 없으셨나요.

=몰라. 60년대에는 어쨌는가 모르겠는데, 다 기억을 할 수가 없으니까. (웃음) 그때도 내가 뭐 사랑 얘기 좀 하면 옆에서 말렸으니까. 어설픈 짓 하지 말라고. (웃음)

-왜요.

=내가 경험을 한 게 없거든. 거짓말 같지만, 누구를 미치도록 사랑한 적이 없었단 말이요. 그 나이에는. 그러니까 안 될 것을 했다가, 아이고 그런 짓 그만 하라고 해서…. (웃음)

-그러니까 <천년학>을 임권택 감독 최초의 러브스토리라고 해도 되겠네요.

=어 그렇지, 러브스토리. (미소를 띠며)

-첫 러브스토리란 면에서는 조금 긴장되지 않으십니까.

=아니, 원래가 늘 긴장하면서 사는 것 아니요. 늘 턱걸이로 사는데. 저거는 기왕에 내가 해왔던 영화와는 또 다른, 더 거듭난 영화여야 한다는 것이, 그런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뒤통수를 아주 꽉 잡고 있으니까.

-하여간 이전 영화에 비해선 더 드라마틱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기왕의 영화보다는 훨씬 농도가 짙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게, 나는 뭔가 드라마틱한 것을 위해서 얘기를 막 꾸미고 인위적인 조작이라고 할까, 이런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무지 노력을 해왔던 감독이란 말이에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예전의 그런 맥락으로 가겠지만, 그동안 내게 많이 쌓인, 훈련된 것들이 있잖아요. 우리가 편하게 받아들이는 일상 같은 느낌을, 아주 힘있게…. 일상도 들여다보면 그 안에 드라마틱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끌어내서 좀 강한 영화를 만들려고 해요.

“나의 형식미 안에 속해 있으되, 형식에서 벗어난 영화”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굳이 <서편제>의 속편 격인 이 영화를 차기작으로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청준씨의 <서편제> 연작을 보면,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이렇게 크게 세개가 있는 거요. 그런데 애초에 <서편제>를 찍을 때는 <선학동 나그네>까지를 포함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선학동 나그네>는 그 무렵에 영상으로 드러내기에는 너무나 힘겹고 한계가 많고 해서 포기를 했던 거거든. 그런데 지금은, 물론 시간이 너무 걸렸지만, 나 자신도 이제는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도 생겼고, 또 하나는 그런 몽환적인 분위기의 화면을 해낼 만큼 컴퓨터그래픽 부분이 굉장히 발전돼 있어요. 내가 뭣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냐 하면은, 가령 <춘향뎐>이나 <취화선> 때 내가 컴퓨터그래픽을 통해서 여러 시도를 했는데 아무도 알아차린 사람이 없어요. 심지어는 <취화선>에서 불가마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조차 유럽 친구들이 ‘거 영화가 잘 가다가 그런 데서 컴퓨터그래픽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치명상을 입는다. 그러지 말고 그냥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충고했는데 뒤에 가선 할 말이 없게 돼버렸으니까.

-몽환적인 분위기의 화면이라면….

=원작에도 나오지만, 예를 들어 물 위의 그림자가 학이 되어 비상한다든가, 방파제로 막혀 뭍이 된 곳에 물이 차오르고, 뭐 이런 거죠. 이 영화에서는 상당한 길이로 CG가 쓰여져서 학이 날고 물이 차는 그런 어떤 몽환적인 분위기를 영상으로 만들어내요. 우리 CG팀도 이제는 구현이 되겠다고 하더라고.

-그럼 판타지적인 요소도 있나요.

=조금은 있다고 봐야지.

-지금 <서편제>의 뒷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현대를 살면서 속도나 삶이 주는 어떤 빠른 리듬이나 이런 것에 지쳐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삶 자체의 속도를 좀 유장하게 가야 할 필요가 점점 커지는 것 같아서. 그래서 해보고 싶어.

-이 영화는 언제부터 마음속에 두고 계셨나요.

=<서편제> 이후로 한동안은 완전히 단념했어요. 내가 무슨 인기에 영합하고 장삿속을 생각했다면 바로 만들었어야 하겠지만. 그런데 한 5∼6년도 넘게 덮고 완전히 잊어버렸다가 서서히…. 그런 게 있어요. 그것을 해야 하지 않냐 그런 것이 마음 안에서, 저 바닥에 잠재돼 있다가 슬슬 모습을 드러내면서 나를 충동질하는 게 있거든.

-<선학동 나그네>는 서른쪽 남짓한 단편소설입니다. 원작에 여러 이야기를 추가하셨겠죠.

=원작에서 추가된 이야기는 이런 얘기요. 누이가 장님으로 살고, 늘 만날 수 없고, 만나고자 하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정황을 살고 있어요, 동호는. 그리고 누이의 소리가 웬만하다고 하더라도 이제 장님이 되니까 열심히 그 일을 거들어줄 사람도 없고, 고수(鼓手)도 없고…. 그러니까 동호에겐 자기가 고수가 돼서 자기의 북하고 누이의 소리가 만나면 큰 이룸을 얻을 것이라는 그런 게 소망인 거예요. 그래서 뭔가 노력을 하는 거죠. 아무래도 두 사람이 왜 그렇게 평생을 두고 사랑해야 하는가 하는 그런 과거의 편린들이 들어가게 되겠죠.

-사실, 임 감독님 지지자들의 가장 큰 궁금증은 일단 이 영화가 어떤 형식의 영화가 될 것인가 하는 겁니다.

=기왕에 내가 어설프게나마 구축해온 그런 형식으로부터 확 벗어날 수는 아마 없을 거요. 그랬다간 실패하는 쪽으로 들어가기 딱 좋으니까. 그러나 기왕에 해왔던 형식으로부터 상당히 많이 벗어나 있구나, 하는 쪽이요.

-어떤 평론가는 이번 영화의 형식미가 <춘향뎐>보다도 더 난이도가 높을 것이라고 추측하던데요.

=그건 내가 지금 장담할 수 없어요. <춘향뎐>을 보고 외국의 꽤 유명한 사람이 완전히 저건 전위적인 필름이라고 한 적도 있다고. 우리 안에서만 그렇게 안 보는데…. 그래서 또 다른 그런 느낌의 영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결국 일반적인 멜로 장르영화는 아니겠죠.

=그런 영화를 하면, 저놈 늙어가지고 이상해졌다고 할 터이니…. (웃음)

-그래도 뭔가 잡히지 않습니다. 예컨대 <춘향뎐>은 모든 영화언어를 판소리로 풀어내셨잖습니까. 그러면 이번에는….

=<춘향뎐>을 할 때도 ‘아 이런 영화를 해야지’ 하는 막연한 신념만 있었지, 그리고 그 신념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치열하기 했을 뿐이지, 처음부터 구체적인 것은 없었단 얘기요. 어찌 보면 제작자나 모든 스탭들이 1개월이나 찍을 때까지 잘 몰랐다니까. 우리가 무슨 영화를 찍고 있는지. (웃음)

-그렇다면 <천년학>에 임하는 신념은 어떤 것인가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 것을 알면서, 그런 비애스러운 어떤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데, 이 사람들이 소리꾼들 아니냐고. 그러니까 그 사랑의 얘기와 소리라는 것을 어떻게 잘 매치시키고 기왕에 해왔던 방식으로부터 또 다른 방식을 모색해서 그것을 기왕의 영화들과 차별화하느냐는 어려움이 또 있는 거요.

“시나리오, 헌팅, 세트, 대략은 준비가 되었어요”

-시나리오 작업을 이청준씨와 함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서편제> 때는 이청준 선생이 크게 관여를 안 했어요. 그런데 <축제>에서부터 함께 일을 했죠. 이 선생이 자기 어머님이 치매로 돌아가시기까지, 그리고 장례식을 겪었던 얘기를 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거기서 이것을 영화로 한번 해봅시다, 했던 거요. 그런데 그것도 참…. 시나리오도 없이, 그저 삼일장 하는 순서에 따라 영화를 찍자고 한 거요. 대사는 현장에서 이청준 선생이 쓰고. 그런 데서 많은 교감이 있었던 것 같아. 이번에는 아예 시나리오 자체를 같이 쓰는데, 소설이라는 장르를 사는 분들이 영화대본쪽으로 오면 많은 벽을 느끼고 그래요. 그런데 이 선생은 이제 그런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어요.

-두분이 합의하에 쓰시는 거군요.

=이청준 선생이 영화라는 특수성, 그런 것까지 깊이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부분은 내가 하고, 대사는 거의 다 이청준 선생이 쓰고. 다 합의하에 하는 거죠.

-그래도 감독님은 영화를 찍다가 다 바꾸신다던데.

=영화가 끝나면 시나리오도 그때 끝나는 거요. (웃음) 늘 그런 거였어. 등급위원회에 내는 심의대본이 결국 시나리오가 되는 셈이요.

-헌팅도 미리 다니셨다고 하던데요.

=미리미리 다녔죠. 지난해 말부터. 스탭들과도 다니고, 이청준 선생과도 다니고. 이번에는 준비가 먼저 되고 있는 거예요, 시나리오는 되지도 않았는데. (웃음) 오픈세트 지은 것도 우리 돈 써서 한 거라면 할 말이 없는데, 가령 주막 세트 같은 데는 장흥군과 전라남도가 전액을 대서 지어줬어요. 또 광양 세트는 광양시와 전라남도 예산으로 미리 지어놓았단 말이에요. 그러니 이제 와서 만약 안 한다고 하면 코미디하는 꼴이 되겠지. (웃음)

-세트가 다 지어졌나요.

=그렇지. 광양 세트는 봄에 지어진 거예요. 매실농장 안에 지어놓았는데, 올해따라 매화꽃이 안 좋아서 인서트로 찍었는데 실패했어요. 필름하고 경비만 잔뜩 들이고.

-촬영지에서 시나리오를 쓰셨나요.

=현장의 조건을 봐가면서 써야죠. 현장의 조건이란 게 이런 거 아녜요. 실제로 학처럼 생긴 산이 있거든. <선학동 나그네>를 썼던 장소가 소설상에서 드러내놓는 그런 산을 끼고 있는 거예요. 그것이 영화라는 매체 안에 수용이 가능하냐, 이런 것도 점검해야 하니까.

-촬영지는 다 정하셨나요.

=큰 것은 다 끝났어요. 장흥과 광양에 있는 오픈세트에서 많이 찍을 거고, 제주도에서도 좀 찍을 거고.

-제주도요.

=거기의 풍광을 좀 담아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억지로 그리로 가는 게 아니고, 송화의 고향이 거기였던 거요. 송화가 죽고 싶은 어떤 절망 속에 빠졌을 때 어느 기간을 살게 되죠.

-<서편제>는 판소리가 남도라는 풍광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영화였습니다. 이번에는….

=그것도 중요한데…. 그러나 그거는 <서편제> <춘향뎐>을 통해서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서편제> 때의 영상과는 많이 다를 거라고. 많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서편제> 때는 그런 배경이 주는 정한과 인물의 어떤 삶을 판소리와 어우러지게 담아내려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이제 관심이 그쪽이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대체 풍광이 어떻게 보여진다는 이야기인지.

=그거를 지금 날더러 이야기하라고 하면 영화 이미 다 돼버렸게. (웃음)

-<천년학>이라는 제목은 어디서 출발했나요.

=애초에는 <선학동 나그네>로 가려고 했는데, 제목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 <천년학>이라는 얘기를 했어요. 이태원 사장이 그걸 타이틀로 했으면 좋겠다 해서 그렇게 된 거죠.

-김수철씨가 만든 <서편제>의 주제곡 제목이 ‘천년학’ 아니었나요.

=그때 그 곡명도 이청준 선생이 지어줬다고, 거기서 연상이 돼서 <천년학>이 된 거죠. 그것이 타이틀이 될 줄은 이청준씨도, 나도, 아무도 몰랐지.

“늘 나이만큼 찍는 것이지요”

-영화의 배경은 언제가 되나요.

=1950년대로부터 70년대 초나 될까 싶네요. 그리고 주된 배경은 <서편제>로부터 20년 뒤 정도요.

-사실, <서편제>에서는 시대배경이 잘 드러나지 않잖습니까.

=내 영화는 늘 어느 시대인가를 심어가면서 그 시대가 주는 어떤 질곡을 담아가는데, <서편제> 때도 싹 외면했잖아. 이것도 그런 방식이에요.

-굳이 외면하시려는 것은….

=아니, 하려는 얘기가 너무 많으니까. 그런 데다 관심을 뒀다간 영화가 복잡해지기 때문이죠.

-<서편제>는 제작을 추진하던 <태백산맥>이 정치적인 이유로 막히면서 시작됐고, 결국 <태백산맥>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됐습니다. 너무 앞선 질문 같지만 <천년학>도 이후 어떤 작품의 징검다리가 되겠습니까.

=이것은 나이와 관계되는데, 아까 말했던 그거요. 우리가 그동안,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봐도, 너무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삶을 살아왔는데, 그 속도를 늦춘다는 게 얼마나 삶에서 소중한 것인가를 아주 절감하는 나이로 온 것 같아. 늘 나이만큼 찍는다는 소리를 하는데 그런 거지. 내가 <길소뜸> <족보> <깃발없는 기수> 이런 영화를 할 때만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어떤 질곡에 대한 관심이 컸던 나이였어요. 그런데 그것을 지금까지 끌어안고 살아왔는가 돌아보면, 내가 그런 시대에 대해서 아주 정떨어져 하고 지겨워하고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을 자꾸 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자꾸 개인적으로 변해온 것 같아.

-그러면 앞으로는 시대적 맥과 끊고 가겠다는….

=그거는 모르겠다고, 나도. 살면서 또 어떤 형태로 그런 것이 영화 안에 스며들지는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에요.

-<서편제>를 준비하실 때는 조상현씨의 <춘향가>를 여러 번 들으셨고, 결국 그것이 <춘향뎐>으로 이어졌습니다. <천년학>에도 영감을 준 판소리가 있습니까.

=<서편제>와 <춘향뎐>은 판소리가 주는 어떤 감동의 세계를 십분 화면 내에 담아서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이 주였다면, 여기에서는 판소리를 일종의 소품, 효과음으로 사용하려 하고 있다고. 그렇다고 판소리를 아예 치울 수는 없겠지. 소리가 주는 감동이 있긴 한데 그것을 영화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겠다는 거지. 이야기를 풀어주고 주인공의 내면을 보여주고 하는 의미 정도로 쓰일 거요.

-영화음악은 어떤 분이 담당하시나요.

=아직은 발표할 단계가 아닌데, 현대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외국에 사는 한국 분이에요. 현대음악과 판소리가 잘못 어우러지면 불협화음이 나게 마련인데, 그것을 엄청 훌륭하게 조화시키는 작곡가를 만났기 때문에 그이로 하여금 영화음악을 맡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예전 인터뷰에서는 <천년학> 안에 사계절을 담는다고 하셨거든요.

=안 그러려고. 애초에는 사계절을 담고자 했는데, 기왕의 영화들이 다 그래왔는데 또 그러고 있어야 하냐는 자성 같은 게 생겨서. 거기에 의지하는 것을 버림으로써 내 영화가 새로워지겠다는 생각을 한 거야. 자연에 대해서 크게 의존하지 않으려고. 옛날에는 한컷을 만들어내려고 광선을 기다리고 소중하게 다뤘는데 이젠 그런 짓은 안 하겠다는 거죠.

-이번에도 <서편제>의 <진도아리랑>이 흘러나오는 롱테이크 같은 명장면이 등장할까요.

=그건 가봐야 알겠는데.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 그때도 <진도아리랑>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고, 거기 청산도 가는 길도 좋다는 생각을 했었지, 거기에서 <진도아리랑>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었어요. 그런데 내 안에서 여러 자료들이 굴러다니다가 어떤 것을 계기로 번뜩…. 그런 세계예요. 미리부터 그려놓은 게 아니라고. 여러 흩어진 자료가 안에서 따로 구르고 또 이쪽은 드라마대로 따로 구르다가 어느 날 서로 만나게 되고 이런 거지.

-<서편제>는 한국영화 사상 1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였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반응을 기대하십니까.

=그게 사실 100만이 아니요. 단성사 단관에서만 100만을 동원한 거니까. 지방에서는 전혀 집계가 안 됐기 때문에 이태원 사장은 300만∼400만 되지 않겠나 그런 얘기를 해요. 그런데 지금으로 치면 몇 십만으로 끝날 영화라고. <서편제> 개봉하고 1∼2주 동안은 사람이 안 들어왔단 말이요. 단관이라서 버티다가 결국 불이 붙은 건데, 지금은 1∼2주 동안 사람 안 들어오면 다 끊어버리지, 그렇게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서편제>의 후광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10년이 훨씬 넘었는데, 그 후광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할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이거는 이거대로 한 독립된 영화로서 봐야 하지 않나 하죠.

“<서편제>하고 유사하구나 하는 소린 들으면 안 된다는 오기가 있어요”

-최근 캐스팅을 마무리하셨습니다. 동호 역으로 연극배우 김영민씨를 캐스팅하셨던데요.

=주인공이 뭐인가 인상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인데, 우수도 있어야 하고 슬픔도 있어야 해요. 제일 중요한 것은 몸 전체로 한을 풍기고 있어야 하는 점이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딱 맞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 이번에 만난 거죠. 오디션을 봤는데 그중 하나가 그 사람이더라고. 정말 잘 고른 것 같아. 아주 나를 살려주려고…. (웃음) 분위기가 그냥 뿜어져 나오니까. 내 경우에는 오디션으로 뽑아서 써도 영화를 하면서 의심하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전혀 의심할 필요가 없는 연기자를 만난 것 같아. 오디션에서 내가 운이 좋다 생각할 만한 사람을 만난 것은 처음이야.

-오정해씨는 다시 기용하셨습니다.

=그런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을 어디서 끌어다쓰기가 힘들잖아요. 소리도 하고, 외모도 그렇고, 연기도 그렇고. <서편제> 때는 하면서도 속으로 이게 될는지 어떨는지 고민이 많았어요. 외모로 봐서는 좋았는데 영화를 감당할는지 상당히 의구심을 가지고 했었거든. 그래서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연기를 시키질 않았다고. 하나 지금은 많이 훈련도 되고, 타고난 것이 있고 해서….

-감독님께서 싫어하시는 질문임을 압니다만, 도리없이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천년학>은 감독님의 100번째 영화입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시나요.

=100번째란 것을 부인할 길이 없잖소, 내가. (웃음) 사실, 처음에 나는 아주 가볍게 생각했어요. 100번째는 좀 쉬어간다는 느낌으로 할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그게 안 된 거지. 나도 100번째라는 것이 대단히 부담이 되면서도 자극이 돼요. 내 영화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거니까. 남들은 일부러 갖고자 해도 안 되는 것 아니에요. 좋게 보면 아주 좋은 거죠. 99번째건, 100번째건 어떤 영화에 들어가면 내게는 그게 항상 첫 번째 영화예요. 왜 그러냐면, 전에 만들었던 영화와 유사한 것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철저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이번의 <천년학>도 <서편제>하고 유사한 것이구나 하는 소리를 들어서는 절대로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오기나 야망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누가… 제길…. (호탕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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