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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장선우 감독, 그의 광기가 그립다 (+불어 원문)

그 남자의 마지막 도발

2000년 박재동 화백과 함께 몽골로 간 장선우 감독

영화는 태생적으로 도발적이다. 불어의 ‘provoquer’(도발하다)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생기게 하다’이고 두 번째는 ‘충격을 주다’이다. 그래서 이 단어는 이른바 일곱 번째 예술이라는 영화예술의 두 가지 기능을 아우른다.

소설가였을 때 이창동 감독은 상상력을 단어로 표현하는 데 그쳤지만, <오아시스>를 연출할 땐 서울의 한 아파트에 실제로 코끼리와 터번을 쓴 인도 사람들을 등장시켰다. 칸영화제에서 <지옥의 묵시록>을 소개한 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이 작품은 베트남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베트남 그 자체다” 라고 말했다. 한 감독이 실제 사건을 영화화하는 방법을 생각하기 전에 얼마만큼이나 그것을 환기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젊은 시절, 루이스 브뉘엘 감독은 도시의 전차 안에서 소극(笑劇)을 벌이곤 했다. 첫 번째 정거장에서 친구 중 한명이 매춘부로 꾸미고 전차에 오른다. 경찰복을 입은 또 다른 친구가 두 번째 정거장에서 올라타선 가짜 매춘부를 쓰다듬기 시작한다. 그리고 중산층 신사 모습의 브뉘엘이 올라타선 “이 사회가 정말로 막가는구나”라고 소리치기 시작하는데…. 이 놀이는 단지 승객의 반응을 보고 즐기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영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영화인은 한 장면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가 만들어낸 상황에 반응하는 세계를 관찰하는 특권을 가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장선우 감독은 본질적 영화인이라 할 수 있다. 지금 그의 작업에 대한 미학적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작가와 비교할 수 없는 도발의 힘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장선우 감독이 <꽃잎>을 찍을 때, 학살을 재확인하기 위해 그는 광주 시가지에 실제 시위를 만들어냈다. 이어 그는 사건의 머리를 돌려 시나리오의 방향으로 이끌고 갔다. 형식적으로 강한 어조의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이 작품은 ‘광주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광주 자체’인 것이다. 허구는 우선 광주 시민의, 이어 관객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거짓말>과 <나쁜 영화>의 많은 장면들은 카메라를 숨겨놓고 찍은 것 같다. 감독은 지하철 안에서 나이 많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희롱하게 한다. 승객은 브뉘엘의 전차 안 승객처럼 그들 자신이 구경거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이들을 쳐다본다. <거짓말>은 극장을 벗어나 사회의 격렬한 반응을 만들어낸, 영화를 변혁의 도구로 인식한 세대로부터 도출된 생산물로서의 작품이었다. 장선우 감독은 하나의 영화를 연출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현상 즉 언론, 검열, 대중 등등을 뒤섞은 일종의 커다란 해프닝을 연출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마치 다큐멘터리 작가처럼 영화 속 배우들을 인터뷰하기도 한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좀더 상업적 제작시스템을 편입하기 위한 시도가 실패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장선우 감독은 가장 커다란 화염병을 만든 것이다. 이번엔 한국영화를 폭파시켜 자신의 무아경의 제단에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다. 반응이 확실히 나타난 것이, 장 감독은 논리적으로 업계에서 배제됐다(미국의 마이클 치미노 감독, 프랑스의 레오스 카락스 감독 그리고 다른 많은 과대망상자들처럼…). 그리고는 많은 제작비가 요구되는 영화를 찍으려고 몽골로 떠났는데, 시작조차 하지 않은 작품이기에 볼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가 몽골 모험이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모험에 정말 흥미를 느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부 제로 게임에 거는 도박사나 마찬가지로, 이 두 가지 프로젝트의 경우 그에게 동기를 부여한 것은 너무나 단순하게도 자기 자신의 파멸이라는 광경을 연출하고자 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 이후 몇년, 섹스는 더이상 사회에서 별로 금기시되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것은 자본에 도전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도발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것이었다. 즉, 은행의 돈뭉치 위에 앉아 불을 붙이고 절망에 빠져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주위 얼굴들을 쳐다보는 것. 언젠가 장선우 감독의 새 작품을 볼 날이 있을까? 마치 그가 몽골에 남아, 정신착란의 꿈에 사로잡혀 대초원에서 길을 잃고 있을 경우와도 좀 흡사하다 하겠다. 그의 광기가 몹시도 그립다.

L’ultime provocation de Jang Sun-woo

Le cinema est par nature provocant. Le mot ≪ provoquer ≫ possede deux sens en francais. Le premier signifie ≪ faire advenir ≫ et le second ≪ choquer ≫. Il reunit donc bien deux fonctions du septieme art.

Lorsqu’il est ecrivain, Lee Chang-dong transcrit son imagination en mots mais lorsqu’il realise Oasis, il fait veritablement entrer un elephant et des indiens en turban dans un appartement de Seoul. Suite a la presentation de Apocalypse Now, Coppola disait a Cannes : ≪ mon film n’est pas sur le Vietnam, mon film est le Vietnam ≫ Il indiquait combien un realisateur provoque un evenement reel avant de penser a la facon de le filmer.

Pendant sa jeunesse, Luis Bunuel faisait des farces dans le tramway de sa ville. Une de ses amies montait a la premiere station deguisee en prostituee. Un autre ami habille en policier montait a la seconde station et se mettait a peloter la fausse prostituee. Puis Bunuel montait, deguise en bourgeois, et se mettait a hurler que la societe perdait decidement toutes ses valeurs… Ceci ne servait qu’a regarder les autres passagers et s’amuser de leur reaction. Sans le savoir, il faisait deja du cinema. Un cineaste provoque donc une scene mais a aussi le privilege de regarder le monde reagir a la situation qu’il a inventee.

A ce titre, Jang Sun-woo aura ete un cineaste essentiel. Je ne porte pas ici de jugement esthetique sur son travail, je crois simplement qu’il a deploye une force de provocation incomparable. Lorsqu’il tourne A Petal, il cree une veritable manifestation dans les rues de Kwangju pour la reconnaissance du massacre. Puis, il detourne l’evenement et l’oriente dans le sens de son scenario. Ce film, que l’on peut juger formellement emphatique, n’est pas ≪ sur Kwangju ≫, il ≪ est Kwangju ≫. La fiction provoque une reaction de la population de Kwangju tout d’abord, puis des spectateurs. Je crois qu’un certain nombre de scenes de Lies et de Bad Movie ont ete tournees en camera cachee. Jang faisait flirter un homme age et une jeune femme dans le metro. Les passagers, tout comme ceux du tram de Bunuel, regardaient le couple sans savoir qu’ils etaient eux-memes l’objet du spectacle. Lies etait une machine a creer des reactions hors de la salle, dans la societe, un produit issu d’une generation qui concevait le cinema comme une arme revolutionnaire. Jang ne mettait pas en scene un film mais un phenomene, une sorte d’immense happening qui melait la presse, la censure, le public… Il interviewait d’ailleurs ses propres acteurs pendant le film comme un documentariste. On a cru que Little Match Girl etait une tentative ratee pour integrer une production plus commerciale. Or, sans doute inconsciemment, Jang avait compose son plus gros cocktail molotov. Il s’agissait cette fois de dynamiter le cinema coreen, de le sacrifier sur l’autel de son delire. La reaction a bien eu lieu puisque Jang a ete logiquement banni par l’industrie (comme Cimino aux USA, Carax en France et encore bien d’autres megalomanes…). Puis, il partit en Mongolie tourner un film tres cher qu’on ne verra pas puisqu’il ne l’a meme pas commence. Je ne crois pas que cette aventure mongole ou celle de Little Match Girl l’interessait vraiment. Comme un joueur qui mise tout sur le zero, ce qui le motivait dans ces deux projets etait peut-etre tout simplement de mettre en scene le spectacle de sa propre destruction. Des annees apres Lies, le sexe n’etait plus vraiment un tabou dans la societe. Il lui restait a defier l’argent. Il atteint alors le stade ultime de la provocation : il s’assit sur un gros tas de billets de banque et y mit le feu, regardant autour de lui des visages ahuris et desesperes. Reverra-t-on un jour un film de Jang Sun-woo ? C’est un peu comme s’il etait reste en Mongolie, perdu dans une steppe pleine de reves dements. Sa folie me manque terribl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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