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데자네이루 최대의 빈민가. 신의 도시라는 의미가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 역설로 다가오는 도시 ‘시티 오브 갓’. <신시티>는 차라리 장난이었다. 동정없는 아이들, 미래를 믿지 않는 아이들이 지배하는 이곳은 눈앞에 펼쳐진 지옥이다. 코흘리개부터 20살 가까운 청소년들까지, 온갖 종류의 총으로 무장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은 슈퍼마켓과 여관, 동네를 지나가는 배달트럭을 털고, 마약을 배달하고, 서로에게 총질하며 젊음을 관통한다. 제아무리 성실한 삶도 앞뒤 가리지 않는 폭력과 무질서 속에 꿈을 저당잡히는 가운데, 이들 모두는 맨살을 드러낸 힘의 논리를 일찌감치 생존의 법칙으로 받아들였다. 정말 소름끼치는 것은 만화적이고 영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했던 <신시티>를 능가하는 이 도시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영화 <시티 오브 갓>은 이처럼 모두가 외면하고 싶었던 브라질 슬럼의 탄생과 성장을 애증어린 시선으로 지켜본다. 그러나 전세계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제작비의 열배가 넘는 수익을 거둬들인 <시티 오브 갓>에 대해, 성공담을 먼저 언급하는 것은 왠지 부족하게 느껴진다. 성과를 이야기하기 전에, 아니 성과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비참한 현실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적어도 이 영화에 한해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현실이 소설을 거쳐 영화화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스크린 너머까지 계속된 논쟁들을 소개한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브라질에선 무려 60만명이 각종 범죄로 희생됐다(27년간 계속된 앙골라의 내전으로 인한 희생자는 35만명). 상상을 초월한 범죄와 계급격차, 인종차별로 악명 높은 브라질의 슬럼을 사람들은 ‘파벨라’라고 부른다. 최악의 파벨라, 시티 오브 갓은 천국 같은 휴양해변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저주받은 도시는 리우 인구의 10%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자, 현재 1만5천명에 이르는 젊은이들이 마약상에 연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시티 오브 갓>은, 60년대 초반 도시의 빈민과 끊임없이 몰려드는 이주자들을 시야에서 사라지게 한다는 목적으로 ‘계획’된 빈민도시의 변화를 그대로 스크린에 재현했다. 강도짓은 하되 살인은 하지 않던 1960년대의 갱들은, 마약이 도시의 아이들을 점령하기 시작한 70년대에 이르면 거리낌없이 살인을 일삼는다. 서로의 구역을 인정하고 나름의 규칙으로 도시를 지배하던 합리적인 갱은 사라지고, 무의미한 편가르기와 복수극에 혈안이 된 독재자만이 살아남는다. 엉뚱한 사람을 총으로 쏴놓고 범행을 뒤집어씌우긴 했어도 범죄자를 잡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는 있었던 경찰은 이제, 마약판매상의 상납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면 도시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 시티 오브 갓에서 불과 6km 밖에 거주하는 리오의 중산층 중 그 누구도, 무의미한 전쟁에 목숨을 던지는 빈민가 아이들에게 관심갖지 않는다. 국가적인 무관심 속에, 도시 전체는 끝모르는 타락을 거듭한다.
경험과 10년의 조사를 바탕으로 한 원작
촬영장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원작자 파울로 린스,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마네 갈리나를 연기한 Seu Jorge(왼쪽부터).
영화 <시티 오브 갓>의 소름끼치는 생생함 대부분은 동명의 원작소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티 오브 갓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 파울로 린스의 실제 경험과 10년에 걸친 성실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1997년 출간 당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가난은 무능력을 낳고 무능력은 고립을 낳는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어린 린스는, 삼바 음악의 가사를 쓰면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발견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곧 총격전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문학을 통해 생존을 건 도약을 시도했고, 소설은 성공했다. 덕분에 중산층 이상 브라질인들은 내부자의 시선으로 파벨라를 바라볼 만한 기회를 가지게 됐다. “파벨라의 내부와 외부는, 절대 교류하지 않는 완전히 다른 두 세계다. 엘리트들은 파벨라의 존재를 애써 무시했고, 모든 기회와 부를 박탈당한 파벨라는 바깥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한다.” 1980년대까지 사회를 향한 증오로 가득 찬 공격적인 시를 썼던 린스는, 피끓는 울분을 가라앉히고 파벨라를 둘러싼 사회를 냉정하게 바라본다. 300명도 넘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30년에 걸친 시티 오브 갓의 모습을 재현한 그의 소설은, 시티 오브 갓의 날뛰는 폭력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비난이 아닌 이해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감독 “파벨라 출신 비전문배우 기용” 원작자 설득
40년 넘게 중산층 백인사회에서 살아왔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원작을 접한 충격을 이렇게 회고한다. “신문과 뉴스에서 봤던 파벨라의 모습은 온통 외부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것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내가 내 나라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됐다. 그것은 내 인생을 통틀어 나를 가장 강력하게 변화시킨 순간이었다.” 메이렐레스는 소설 <시티 오브 갓>의 영화화를 제안한 여덟 번째 감독이었다. 상업광고 감독으로 십여년간 명성을 쌓으면서 몇편의 TV쇼와 시리즈를 연출했고, 두편의 코미디영화를 공동연출하면서 업종전환을 모색하던 메이렐레스는 언뜻 보면 <시티 오브 갓>의 연출자로서는 부적절해 보인다. 영화적 능력도, 영화적 명성을 바탕으로 한 제작 가능성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게다가 그는 백인 중산층 출신으로 평생 단 한번도 파벨라를 거닐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메이렐레스는 “파벨라 출신의 비전문배우들을 기용하겠다”는 포부를 앞세워 반신반의하는 린스를 설득한다.
그러나 사회학 논문을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수집된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원작을 각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인물들이 20, 30페이지에 걸친 짧은 인생을 비극적으로 끝맺고 사라지는 등 600페이지에 달하는 원작은 수많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은 주인공이자 내레이터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파벨라를 탈출하는 린스 자신과, 갱단의 사진을 신문에 팔아 유명해졌다는 그의 친구를 섞어서 창조한 주인공은 그렇게 태어났다. 영화화를 위해서 주요 등장인물을 가공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후반부에 등장하는 갱단의 전쟁은 전적으로 실화를 토대로 한 것. 체포된 갱단 두목 마네 갈리나가 방송 카메라를 향해 “날 안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아는 사이 같기만 해도 반대편의 손에 죽었어요”라고 내뱉는 장면은 실제 뉴스릴을 그대로 재연한 것으로,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화면에선 그 뉴스를 확인할 수 있다.
대본 없이, 일상을 재연하는 현지 배우들
원작이 지닌 최대의 무기가 생생한 실화라면, 영화가 주는 최고의 충격은 다큐멘터리처럼 실제에 근접한 아이들의 연기다. 능숙하게 무시무시한 총기를 다루고, “(총을) 손에다 쏴줄까, 발에다 쏴줄까”라고 묻는 갱단 두목에게 손을 내미는 일곱살 남짓한 아이의 표정에는 지옥 같은 공포가 선연하다. 여자의 마음을 얻는 재주는 전무한 갱단 두목이 비뚤어진 상실감에 사로잡히는 순간에는 악마의 기원을 목격하는 것처럼 소름이 돋는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갱단 두목의 죽음을 카메라에 담는 주인공의 표정에선 터질 듯한 심장박동이 느껴진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을 현지에서 비전문배우로 조달해야 한다고 믿었던 메이렐레스는, 파벨라에 정통한 전문가 카티아 룬드를 공동감독으로 섭외했다. 시티 오브 갓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마이클 잭슨의 <데이 돈 케어 어바웃 어스> 뮤직비디오를 리우 내의 파벨라에서 제작할 당시 현지 코디네이터를 맡았던 룬드는 시티 오브 갓 안에 연기학교를 연다. 그리고 10:1의 경쟁률을 뚫고 학교에 입학한 200여명의 아이들과 함께 6개월간 연기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의 마지막 코스는 파벨라의 일상을 다룬 단편영화 <황금의 문>을 제작하는 것. 촬영감독과 두명의 감독, 수십명의 아이들은 그렇게 실전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비전문배우를 다루는 켄 로치 감독의 연출방법을 참고했다는 메이렐레스는 배우들에게 대본을 주지 않았다. 그저 각 장면의 상황과 목표를 명확히 전달했을 뿐이다. 어차피 이들은 영화가 담고 있는 세상에 관해서라면 감독보다도 익숙하다. 카메라 앞에서 일상을 재연하는 이들은, 그 어떤 배우도 흉내낼 수 없는 생생한 속어를 섞어 대사를 완성했다. 촬영은 9주 만에 끝났다. 정작 문제가 됐던 것은 헥토르 바벤코(<거미 여인의 키스>)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점. 바벤코가 브라질 뒷골목 청소년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린 영화 <피쇼테>(1981)의 주인공은 갑작스런 유명세에 시달렸다. 그러나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상황 등 현실적인 장벽 앞에 좌절될 수밖에 없었고, 6년 뒤 그는 무장경찰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메이렐레스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 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그곳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믿었다. 촬영 중에도 갱단과 영화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일깨웠던 메이렐레스와 룬드는 촬영이 끝난 뒤에도 60명에 이르는 아이들을 후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