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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배우로 복귀한 <오로라공주>의 문성근
사진 오계옥이영진 2005-11-03

“배우로서는 이제 슬슬 철이 드는 것 같다”

문성근은 여느 배우들과 다르다. 대중과의 만남에 거리낌이 없고, 스스럼이 없다. 벽을 만들기보다, 허물기 위해 무진장 노력한다. 인터뷰 장소로 효창공원 근처의 한 기사식당을 택한 걸 보면 안다. “사회 보러 오셨나요?” 김치찌개를 한술 뜨다 말고 옆 테이블에서 날아든 질문에 싫은 내색 않고 일일이 사정을 일러주는 걸 보면, 더더욱 그렇다. 마땅한 인터뷰 장소가 없나 재차 고민하다 결국 밥숟갈 놓고 자리를 뜨는 기자의 뒤통수에 그가 던진 한마디. “내가 무슨 심은하야? 같이 걸어다니면서 이야기하면 되는 거지.” 그러니 인터뷰도 매한가지다. 날을 세운들 소용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담소(談笑)가 되고 마니까. <질투는 나의 힘>(2002) 이후 한동안 여의도에서 활동하다 <오로라공주>의 오성호 형사 역을 맡아 충무로로 회귀한 ‘배우’ 문성근을 만났다.

-새벽에 산에 다녀왔나? 등산복 차림인데.

=요즘 나 양복 잘 안 입는다.

-등산복이 평상복인 셈인가.

=이렇게 입고 다니면서 한 서너 시간쯤 짬이 나면 산에 간다. 서울 시내에 있을 때는 삼각산에 간다. 아니면 일산 집 근처 정발산에 간다. 해발 98m니까, 산이라기보다 언덕이지. 그래도 왔다갔다 뱅글뱅글 돌면 1시간이 넘는다.

-김운경 작가(<서울의 달> <파랑새는 있다> <옥이 이모>)의 권유로 산을 타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옷이랑 장비랑 배낭이랑 다 주겠다면서 꼬시더라. 서너번 따라가봤는데 좋던데. 지난해 4월 선거 끝나고 나서 휴가가 주어졌다. 그 이후로 1년 정도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한가했던 시기였는데. 이상하게 놀아도 맘이 편치 않더라. 그러던 중에 김운경씨 따라서 산을 타면서부터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은 것 같다. 산에 가면 마음 수련하러 오신 분들 많다. 그분들하고 스치면서 이래저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창동 감독이나 명계남 대표 등도 본업으로 복귀했는데. 산에는 같이 안 다니나.

=이창동은 몇번 권유했는데 싫다고 하더라. 본인 말로 사대부 집안 출신이라나. 심지어 막창 같은 음식도 안 먹는다. 사대부가 먹는 음식이 아니라고. (웃음) 이창동은 좀 엄살이 심한 편이다. <오아시스>는 시나리오 대로 찍은 영화인데, 그 시나리오 쓰고서도 이건 영화로는 불가능하다고 그냥 나한테 읽어보기만 하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이번 신작 시나리오 쓰면서도 머리 쥐어뜯고 있다는데 엄살 같아서 안 믿는다. 다만 1년 넘게 공익근무하느라 휴지기가 있어서 조금 힘들긴 하겠지. 그럴 때는 산에 가는 게 최고인데. 명계남은 전에는 좀 산을 탔는데 요즘은 제작자로 배우로 바빠서 안 다니는 것 같다.

-올해 <씨네21> 파워50 기사에서 앞으로 연기에만 ‘전념하겠다’고 쓴 것에 대해서 항의했었는데.

=절대로 그렇게 쓰지 말라고 했던 건데. 언론에서는 굳어진 표현들을 마구 쓰는데, 문제는 일반 사람들이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정치 참여는 민주공화국 시민이라면 의무 아닌가. 전념이라는 표현에는 그런 의무를 금기시하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깔려 있다. 그래서 싫다.

-<오로라공주> 촬영장에서 예전과 다르게 밤샘 촬영이 힘들다고 했었다.

=청주 쓰레기 매립장에서 좀 힘들었다. 냄새가 심해서 좀 그랬지. 방은진 감독도 처음 헌팅 때는 그렇게 냄새나는 곳인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 체력적으로는 그때 빼고는 별로 힘들지 않더라.

-완성된 영화를 봤을 텐데. 만족하나.

=에그 뭐. 그냥 그런 거지. 아쉬움이야 항상 남는 것이고.

-3년 만에 다시 하는 연기인데….

=내가 좀 잘 잊는 편이다. 일을 계속 하면 축적이 좀 될 텐데, 다른 일을 하면 전의 것들이 백지가 되어버린다. 이번에 다시 연기하니까 배우로서 갖고 있던 심성 구조나 마음 상태 이런 것들조차 다 날아가버렸더라고. <오로라공주> 시작하면서 신인 같은 마음이라고 한 적 있는데 정말 그랬었다. 모르겠고, 안 되더라니까.

-방은진 감독이 배우로서의 정서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좀 줬나.

=그 친구도 나를 곁에서 보는 게 안타까웠을 거다. 사실 감각을 되살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배우로서) 휴업을 하다가 다시 하려니까 긴장이나 부담이 좀 있었는데. <오로라공주>는 결과가 어찌됐든, 개인적으로는 터널 통과를 한 것 같다. 햇빛 속에 나온 것 같고. 마음이 편해지더라. 지금은 <한반도> 찍고 있는데 긴장이나 부담이 <오로라공주> 때보다 좀 덜하다.

-촬영현장 공개 때 캐릭터나 인물에 대해 질문하면 회피했다. 그날 취재진은 한국영화 발전 방안에 관한 강의만 듣다 왔는데. (웃음)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기가 민망하더라니까. 터널 속에 갇혀 있어서 그런지 이야기를 하고 싶지가 않더라고. 답답하기도 하고. 또 영화의 성격상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게 부담을 주는 것도 있고. 오 형사를 난 정서소통에 장애가 있는 인물로 설정했는데, 그래서이기도 하고.

-목사가 되고 싶은 형사라는 설정이 좀 가볍게 그려진 것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오 형사는 순정에 의해서 구원받는 인물이고, <오로라공주>를 멜로영화처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선지, 기도를 하는 오 형사 장면이 좀더 절실했으면 어땠을까 싶던데.

=내 표현이 좀 부족했다고 본다. 형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속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푹푹하고 괴롭고 힘든가. 기도라는 게 부적응자의 발버둥이기도 하고 괴로움의 표현이기도 한데, 잘 부각시키지 못해 좀 아쉽다.

-방은진 감독과는 아무래도 배우니까 소통하는 데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전에도 그렇게 말했었고. 하지만 스타일이 달라서 의견의 차이가 있었던 적은 없었나.

=새로 시작하는데 내 스타일이 어디 있나. 그냥 적응을 해야 하는 입장인 거지.

-형사라는 직업을 맡은 건 처음이다.

=고양경찰서에서 촬영하면서 형사들 책상에서 한달 동안 일어났던 강력사건들을 요약해놓은 잡지를 봤다. <오로라공주> 같은 사건들이 수십건 쫙 붙어 있더라니까. 그거 보니까 형사의 심성이라는 게 백번 이해가 가더라. 연극 <날 보러 와요>나 영화 <살인의 추억>의 경우, 먼저 취재했었던 <그것이 알고 싶다>쪽 자료를 많이 참고했었는데. 진행자였던 나도 그때 화성 관계자들 만나고 그랬으니까 형사들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책을 보고 나니 또 다른 차원의 충격이 오더라.

-올해 초에 이은주씨 사고가 있고 나서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 응한 모습을 봤다. 평소에 배우들에게도 심리치료가 있어야 한다고 자주 말해와서 그런지 충격이 좀 큰 것 같았다.

=심리학자가 배우랑 같이 캐릭터도 만들고 끝나면 같이 풀기도 하고 그러면 좋을 텐데. 과하게 감정이입이 되면 그런 사고가 일어나는 법이고. 인물을 들락거리다 보면 피로감 때문에 삶이 황폐해지게 마련이다. 이은주의 경우, 연기자라는 직업병에 젊은 여성이라는 차별적 요소가 더해져 그런 사고를 당한 것이고. 참 안타깝다. <주홍글씨> 시사한다고 처음으로 나한테 전화를 했는데 다른 일 때문에 못 갔다. 그 일 있고 나서 그게 그렇게 속상하더라고. <오! 수정> 이후 3∼4년 만에 처음 연락한 건데.

-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 ‘문성근’을 치면 “문근영이 문성근씨 딸이라면서요?”“문성근씨는 국회의원이나 장관 안 해요?”라는 질문이 뜬다. 아주 가벼운 농담이거나 궁금증일 수 있지만, 요즘 젊은 관객에게 문성근은 영화배우라기보다 다른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것 아닌가 싶다. 배우로서 대중과의 접점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상업영화의 배우로서 어떻게 이미지를 가져가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그만두고 나서 좀 지랄 같은 역할들을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세상밖으로> <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등. 나도 배우다, 연기자다 하는 일종의 표현들이었지. 그런데 지금은 인위적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별로 없다. 그냥 관심있는 거, 재미있는 거,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 하면서 사는 거지. 내 삶 자체가 다면적이고 중층적인데 그걸 어떻게 하겠어. 다만 좀 성실하게 살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후회가 들긴 한다. 쉬면서 이런저런 자서전이나 평전을 꽤 많이 봤는데. 마오쩌둥, 덩샤오핑, 저우언라이, 호치민, 간디, 말론 브랜도 등등. 참 열심히들 살았구나 싶더라. 특히 호치민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더라. 그렇게 싸웠는데 2차 세계대전 끝나니까 프랑스가 개입해, 미국이 개입해. 그런데 그런 굴곡을 기가 막히게 통과하더라고. 우리 해방정국에 그런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더라면 싶더라니까. 어찌보면 호치민뿐만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그냥 살고 있는 사람 중에도 그런 분들이 있을 거다. 남에게 해끼치지 않고 행복을 누리는 그런 분들 보면 부럽다.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에서 총리 역할을 맡았는데. 어떤 인물인가.

=아주 현실적인 사람. 좋은 사람이지. (웃음) 청와대 각료회의 장면을 얼마 전에 찍었는데 그냥 길가던 사람 앉힐 수 없다고 전부 연극배우들에게 부탁해서 촬영했다. 그러니까 현장 분위기가 보통 열정적인게 아니지. 게다가 강우석 감독이 그 분위기를 몰아서 찍으니까. 사실 8, 9월에 작품을 하자고 할 때는 이번 영화에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면서 11월쯤에 들어가서 내년 4월까지 한 6개월 찍는다고 했는데. 10월1일 크랭크인한 다음 벌써 10번 넘게 찍었다. 지금 속도로는 1월에 촬영이 끝날 것 같다니까.

-<한반도>는 긴장이나 부담이 덜하다고 했는데. 한결 연기하는 게 편할 것 같다.

=이번엔 대사가 주야장천이다. 게다가 생활대사도 아니다. 그러니까 골이 빠개진다. 줄줄이 떠드는 대사만 해도 10개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언제서부턴가 현장에 갈 때 대사를 잘 안 외워간다. 연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경마장 가는 길> 때 문장이 너무 길어서 외워간 적을 제외하곤 쭉 그랬었다. 그런데 이번엔 안 되겠더라. 그저께는 NG만 14번 냈다니까. 하는 수 없이 어제 촬영 때는 대사를 달달 외워서 갔다. (웃음)

-오랫동안 감독과 배우로서 함께 작업해온 인연이 있지만, 가끔 강우석 감독에 대해 지나치게 우호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강우석을 일방적으로 옹호한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건 전적인 오해다. 강우석을 산업에서 중요한 기능을 가진 인물로 평가하고 현안이 생기면 의논해왔다. 그러나 그와 늘 의견이 같았던 것도 아니다. 99년인가. 영진위 1기 출범 때에는 강우석의 독주 시절이었다. 그때, 내가 영진위 부위원장으로서 이은, 강제규, 차승재 등에게 투자조합 정책을 도입할 테니 조합을 매개로 3사가 연합해서 시네마서비스에 대항할 수 있는 영화사를 만들라고 했으니까. 강우석 단독체제는 한국영화에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 그랬었다. 지난해 강우석 감독이 프리머스를 CJ에 내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데, 영화계로서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고 본다. 부율조정이나 다양한 중소 영화의 유통망 형성에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극장망을 잃었기 때문이다. 강우석을 돕는 차원이라기보다 한국 영화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을 고민한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한 거다.

-몇년 다른 일 하다가 영화계에 돌아와서 느낀 점이 있다면.

=요즘은 황정민이 잘돼서 좋더라. 나중에 알았는데 <지하철 1호선>을 했더구만. (김)민기 형한테서 포장하지 마라, 멋있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 진정성으로 디밀어라, 그런 충고를 들었다고 하던데. 자세를 잘 배운 거지. 정재영도 비슷한 이야기하고. 어디서 연기를 시작했느냐를 따지는 건 아니고, 배우라면 연극무대를 거쳐볼 필요가 있다. 무대에 서면 돈이 없어서 관객이 없어서 배고프고 외롭지만 중요한 경험이다. 한달 두달 공연하면 캐릭터가 내재화된다고. 몸에 코드로 남는 것이고.

-본인 스스로는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

=요즘 감독들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는 거. <오로라공주> 초벌 편집 보고 나서 나중에 완제품을 보니까 ‘야 은진이 대단하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 동시에 내가 참 대단한 감독들과 일을 했지만 진심으로 존경을 했나 싶기도 하고. 반성을 하게 되더라니까. 감독들 한명한명이 소우주인데, 난 그들만큼 열심히 살아왔나 하고 말이다. 요즘 들어서야 철이 드나 보다. 남녀 사이에서 남자는 평생 철이 안 든다지만. 그건 맞는 말인데. (웃음) 배우로서는 이제 슬슬 철이 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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