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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사진 작가 이전호 [2]

포스터는 광고이자, 또하나의 세계

성공 가도에 걸림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제작자, 감독의 뜻과 자신의 뜻이 일치하지 않아 물러서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전호에게 그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순수 사진이 아니라 광고 사진을 전공한 이전호는 영화포스터가 갖고 있는 천성의 제한적 기질을 충분히 이해하고 습득한 듯싶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으로 많이 본다. 처음에는 작업자의 입장이 훨씬 컸지만, 이제는 내가 관객이라면 저 포스터를 보고, 저 영화를 보러 가고 싶을 것인가를 많이 생각한다. 이 영화가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을 내가 했다면, 그걸 관객에게도 똑같이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을 거라면 순수 사진을 해야지 뭐 하러 이거 하나.” 천성적으로 광고를 넘어서지 못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표현 세계이고, 영화를 둘러싼 또 하나의 의미 창출인 영화포스터에 대한 이전호 작가의 생각이다.

바꿔 말하면, 영화가 뛰어나야 영화포스터의 표현도 더 자유로워진다. 그 예가 되는 에피소드 하나. “나에게 <사마리아>는 굉장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아직 제본도 안 된 A4용지 묶음의 시나리오를 딱 받았는데, 거기에 김기덕 감독님이 포스터 비주얼은 이랬으면 좋겠다고 손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게 있었다. 사마리아 여자 두명의 모습이 빅 클로즈업되어 있는 거였다. 그걸 참고로 종교쪽으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컨셉이 나신의 수녀 복장을 한 모습으로 결정됐다. 종교계도 그렇고, 심의쪽도 그렇고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런 건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배우의 부모가 난리가 난 거다. 원본 필름을 자신들에게 보내지 않으면 고소, 고발 조치하겠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고, 그래서 지금 나한테 원본 필름이 남아 있지 않은 딱 하나의 작품이 바로 <사마리아>다.” 그렇다면 그 뒤로 그 소녀와 부모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영화가 좋아 상받으니까 모든 게 다 해결되더라.” (웃음)

포스터계를 접수한 진정한 테크니션

이전호 작가는 종종 동료들에게 “테크닉에 능한 작가”라는 수식을 얻는다. 영화광고디자인회사 ‘꽃피는봄이오면’의 김혜진 실장은 그에 대해 “무엇보다 시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고, 여러 영화들을 할 만큼 다양한 색깔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전호 작가에게 ‘테크닉이 능하다’는 그 의미에 대해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나는 내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데이터로 만든다. 그런 게 조명을 어떻게 하느냐 등의 기술적인 면보다 훨씬 중요하다. 합의점을 찾고, 시안이 결정되고, 컨셉이 정해지고 나면 그걸 바탕으로 어떻게 찍을지 데이터를 잡아내는 게 내 몫이다. 나는 막연한 걸 안 막연하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인 거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가족>을 그 예로 들려준다. 늦여름에 붙여야 할 포스터였지만 가을 느낌이 나야만 하는 상황, 30도가 넘는 여름 속에서 이전호 작가는 정공법으로 가기로 한 시안을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 골목 어귀에 서 있는 부녀의 아련한 정서를 가감없이 담아 호평을 받았다. 즉, 이전호 작가에게 테크닉이란 카메라와 조명을 다루는 기술을 넘어 시안의 컨셉을 이해하는 기술이고,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이고, 그 자체로 다른 첨가 없이도 완성본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기술이다.

어쩌면 이전호 작가는 이제 막 진짜 전성기를 시작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 활로를 열어젖히도록 한 동력은 명료하기만 하다. 배우들의 해석을 존중하는 소통의 태도, 영화포스터의 상업적 숙명에 대한 유연한 이해도, 다른 변형 과정이 필요없을 정도로 이상의 근사치에 가까이 가보려는 기술적 완결성에의 시도, 그것들이 바로 이 작가의 손길이 닿은 영화포스터들이 지금 극장을 도배하고 있는 이유다.

이전호의 오! 마이 기네스북

“제일 적극적인 배우는 최민식이었지”

-가장 비쌌던 소품은.

=<누구나 비밀은 있다>의 여배우 세명이 입었던 드레스. 세명의 드레스 값을 합쳐서 1억5천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최대한 고급스럽게 하자는 의도에 맞추기 위해 홍콩에서 공수해온 거고, 유명 디자이너가 한벌씩밖에 안 만드는 그런 옷이었다.

-가장 긴 촬영시간이 소요됐던 영화는.

=<페이스>. 밤샜다. 배우들한테 물어보면 알 텐데, 나는 굉장히 빨리 찍는 편이다. 평균 네댓 시간이면 끝난다. 그런데 <페이스>는 세트가 복잡했고, 앵글 잡기가 애매했다. 배우를 어디에 놓아야 하는가 등의 문제를 고심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가장 많은 배우가 출연한 포스터는.

=알다시피, <새드무비>.

-가장 많은 스탭과 일한 작품은.

=<무영검>. 중국 현지에서 촬영했는데 내가 그때 부탁한 건 두 가지뿐이었다. 강풍기 팀하고, 연무기 팀을 조금만(!) 구해달라는 것. 그런데 팀당 현지 스탭 30명씩이나 왔다. 도합 60명. 그래서 바람을 좀더 세게 해달라고 한마디 속삭이기만 하면, “바람을 좀더 세게, 바람을 좀더 세게!”라면서 30명이 복명복창을 해댔다. 연무기 팀도 마찬가지고. 그 광경이란…. 그래도 컨트롤은 꽤 잘된 편이었다.

-가장 의견 제시를 적극적으로 하는 배우는.

=최민식. 그는 완전히 동화되어서 찍는 스타일이다. <올드보이>의 경우에는 최민식씨가 제안한 컨셉으로 찍은 포스터도 있었다. “나는 지태 존재를 모르고, 지태는 나를 끌어안고 있는 거 어때”라고 한 게 실마리가 됐다.

-가장 연출시키기 어려웠던 배우는.

=이병헌. 자기가 해야 하는 게 명확히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되는 배우다. 어떤 감정이며, 어떤 느낌이고, 왜인지, 이게 전달이 안 되면 모호해지는 스타일이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작업할 때 이병헌이 지어야 하는 표정은 전지전능하면서도 여유로운 어떤 것이었다. 가령 침대에 누워 있는 드라큘라를 여자들이 유혹하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는 그런 느낌을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내가 헷갈려서 전달이 안 됐다. 그랬더니 이병헌도 역시 기다렸다. 충분히 의도를 전달하고 났더니 그제야 놀라울 정도로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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