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무라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간장선생>
●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간장선생>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임을 알린 바 있다. 그렇다면 대담한 블랙유머와 수수께끼 같은 야비함의 대가인 일본의 이 73살(지금은 75살- 역자 주) 거장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들을 전체적이고 특징적으로 대범하게 반복함으로써 마지막 작품을 마무리짓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는 98년 뉴욕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고 <우나기>에 이어 성공적으로 개봉된 <간장선생>은 그 끔찍했던 태평양전쟁의 막바지를 살아내려 몸부림친 일본 어느 시골의 의사 아카기 선생과 그의 환자들의 이야기다. 하층민들의 삶을 그린 이마무라의 여느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생동감있고 불경스러우며 이상할 정도로 명랑한 이 작품은 전후 치열했던 천재 중 하나인 사카구치 안고의 여러 단편들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마무라는 시골 의사의 아들이었으며 (이 영화는 선친에게 바쳐졌다) 그 자신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십대 소년이었던 것이다.
숏과 숏 사이의 톤이 아주 상이한 이 영화의 오프닝은 전형적으로 이마무라적이다. B-29 미군기가 구름 같은 연기를 피워올리며 공중에서 폭격을 가하는 사이, 저 아래 땅 위에서는 한때 창녀였던 십대 소녀 소노코가 순진한 남자를 유혹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바로 그때 이 커플은 나비넥타이를 맨 영웅적이고 거칠 것 없는 아카기 선생의 출현으로 방해를 받는다. 아카기는 칵테일 재즈음악을 배경으로 해변과 마을을 돌진한다.
이 어촌마을에서 모든 환자들의 증상을 간염으로 진단하는 바람에 “간장(肝臟)선생”이라는 별명을 얻은 아카기 선생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질병과의 전쟁이라는 싸움터에서 이런저런 실험에 열중하며 “하늘에는 폭탄이, 땅에서는 간염이”라는 표어 아래 저돌적으로 싸우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나 뭔가에 사로잡힌 듯 정신없이 살아가는 인간은 비단 간장선생뿐이 아니다. 술취한 승려들, 아편중독 의사들, 그리고 섹스 페티시스트들 등 모든 마을사람들이 망라되는 것이다. “도저히 어찌 고쳐볼 도리 없음”이야말로 인간본성을 설명하는 이마무라적 표현이다. 군대는 노인들에게 민간 방위(civil defense)를 가르치느라 여념이 없으며, 미신이 과학과 함께 경쟁하다가 대개는 결국 승리해버린다. 소노코는 아카기 선생 밑에서 일하려다가 고아가 된 혈육들에게 이런 호소마저 듣는다. “사랑하는 누나, 우리 배고파, 제발 다시 창녀가 되어줘.” 이마무라는 이 황당한 세계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다(아마도 네덜란드인 군인을 죽도록 두들겨패는 인종차별주의자 군인 한명만 빼고).
영화 막바지, 아카기는 시체를 파헤치고 간장을 떼어내며 거대한 현미경을 들이대는 등 정말 돌아버린 듯한 과학자로 변신한다. 이 현미경은 아무래도 영화 프로젝터와 수상쩍을 정도로 닮은 모습이다. 어떤 평론가는 어째서 이 현미경을 통한 관객 입장에서의 주관적 시점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느냐며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아마도 이것은 꿈틀대는 박테리아의 클로즈업이 이 미친 엉망진창 흙탕물 도가니 같은 인간세상에 대한 이마무라의 시각과 지나칠 정도로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선지 이마무라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엉망진창 영화를 만들기 좋아합니다.”
영화감독으로서 이마무라는 정선되고 예의바른 아름다움을 봉쇄해버리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아무렇게나 헤집어놓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기이한 특이체질은 그의 캐릭터들뿐 아니라 이마무라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결과인 것이다. 어쨌든 아카기 선생의 다음 행보는 절대 예측불능이다. 감독은 고래와 물의 요정과 버섯구름을 포함하는 묵시록적인 시(詩)를 아카기의 마지막 언명으로 제시하면서, 그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는 기이함을 함께 엮어내었다. (<빌리지 보이스>1999.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