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신민아)에게 동건(류승범)은 천지창조 조물주다. “그동안 잠들어 있어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세상을 동건씨가 저에게 보여주니까요.” 앞이 보이지 않는 해주에게 동건의 허풍과 수다는 더없는 위안이고 행복이다. 우연한 선행으로 해주를 알게 되고, 이후 그녀의 눈과 손과 발이 되기를 자처한 동건. 잠자는 숲속의 공주 곁에는 백마 탄 왕자가 서야 로맨틱한 판타지가 완성된다고 믿는 동건은 자신을 근사한 외모의 귀공자 타입으로 속이고서 해주와의 만남을 이어간다.
<야수와 미녀>는 제목이 일러주듯, 험상궂은 외모 때문에 콤플렉스를 안고 사는 청년의 우여곡절 연애담이다. 동건의 시련은 각막이식수술을 받은 해주가 시력을 되찾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마법에서 풀렸지만, 그 순간 백마 탄 왕자는 마법에 걸린 개구리 왕자가 된다. 어서 빨리 자신의 눈으로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해주의 독촉을 피해 흉터투성이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은 동건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성형수술까지 고민하게 되고, 급기야 “하와이에 가 있다”는 거짓말을 꾸며낸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해프닝은 또 다른 해프닝을 몰고 오게 마련. 눈먼 여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1인3역을 해야 하는 <안녕! 유에프오>의 상현보다 숨어서 자신의 존재와 해주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야 하는 ‘우주 괴물’ 동건의 고투는 더 처절하다. 그러나 해피엔딩의 결말을 예감하는 동화의 기운을 듬뿍 수혈받은 탓에 비참한 동건을 보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괴롭진 않다. 복수혈전 대신 애정혈전의 도우미를 자청하는 구룡파 넘버2 최도식을 비롯해 여타 캐릭터들 또한 하나같이 선하고 비현실적인 것도 로맨틱한 설정의 맛을 돋운다.
다만, 해주가 믿는 진실과 동건이 만들어낸 거짓이 나란히 병치되어 충돌하는 전반부를 지나면 류승범의 즉흥연기로 가려졌던 약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이 믿고 있던 동건의 모습으로 준하가 나타나지만, 해주는 일편단심. 근사한 외모에 검사라는 번듯한 직업까지 등에 업고서 해주에게 프로포즈하는 준하 또한 <야수와 미녀>의 예정된 로맨스를 위해 쉽게 의지를 꺾는다. 동건의 애인 되찾기는 곧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아 찾기의 여정이기도 할 터이지만, 한국 로맨틱코미디가 반복하는 이벤트식 사랑 만들기를 뒤쫒기 바쁜 영화에서, 그런 고민은 무리이고 사치이다. 외모 지상주의라는 세태를 비꼬는 설정으로 뜸을 들인 영화는, 결국 순정예찬론을 부르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