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라는 영화가 있었다. 감독 박철수보다는 각본 김수현과 배우 윤여정의 크레딧이 유난히 돋보였던, 딱 20년 전에 만들어진 섬뜩한 복수극. 앞부분은 방송인 홍 여사(윤여정)가 홀로 키우던 고3 외동딸의 수난극이었다. 매춘 사냥꾼들에게 학교 앞에서 납치된 뒤 윤간당하고 남성들의 노리개로 길들여지는 끔찍한 시간이 흘러간다. <어미>의 진면목은 그 다음이다. 되찾아온 딸은 수렁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하고 어미는 절규한다. 제 새끼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통곡의 시간을 보내고 어미는 사냥에 나선다. 애초부터 공평무사한 법 따위는 없다는 현실을 늦게 깨달은 어미는 칼과 쇠사슬과 염산과 면도칼로 찌르고 조이고 녹이고 잘라버린다. 응징의 강도가 압도적이었거니와 부유한 지성인에서 야생의 어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윤여정의 분노는 더할 나위 없이 살벌했고, 또 공분의 대상으로 삼을 법했다. 아버지는 부재하고 남성은 광포한 폭력 그 자체였던 <어미>는 5공 말기 그 시대의 공기를 닮기도 했다.
20년이 흘러 <오로라공주>가 만들어졌다. 배우 겸 감독이 된 방은진과 배우 엄정화의 크레딧이 유난히 눈에 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발화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까지 타오른 엄정화표 캐릭터는 화사한 미소로 남성을 도발 혹은 추월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빌려본 각본을 보고 제발로 찾아가 배역을 받아냈다는 엄정화의 선택이 하필 ‘오로라공주 스티커를 붙이는 연쇄살인범 정순정’이라는 건 뜻밖인 듯하지만 오히려 일관성 있어 보인다. <싱글즈>에선 희롱하는 남자의 바지를 벗겨 사무실 바깥으로 쫓아내는 데 멈췄지만 여기선 팬티까지 내리고 가위를 꽂는다. <어미>의 그 어미에 바짝 다가섰을 뿐이다.
방은진은 박철수가 아니어서 어미를 시대와 장르에 맞춰 진화시켰다. 우선, 윤여정은 뒷단락의 주인공으로 극에 방점을 찍는 역할에 한정됐지만 엄정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원톱 플레이를 펼친다. 타이틀이 올라가기도 전에 산적꽂이로 고급 백화점을 찾은 30대 계모(유혜정)를 작살낸다. 이어 로데오 거리의 옷가게 여주인(현영)을 석고로 생매장한다. 다음은 남자들이다. 돈으로 여자를 후리는 청담동 축복웨딩홀 사장(김용건)과 승객에게 꼭 껌을 권하는 친절한 택시운전사(김익태), 그리고 마마보이 기질이 다분한 갈빗집 아들(박효준)이 기기묘묘하게 죽어나간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경찰도, 관객도 정순정의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 피살자들 사이의 어떤 연관도 발견되지 않으니 경찰은 그냥 몹쓸 연쇄살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
특징적인 건, 연쇄살인 스릴러에서 프레임 바깥으로 밀려나던 범인의 얼굴과 표정을 처음부터 또렷이 프레임 중앙에 배치한 구도다. 방은진은 정순정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관객과 정면 게임을 벌이기로 작정했다. 범인이 누군지 시작부터 밝힌 뒤, 그녀는 왜 잔혹살인극을 펼치는가, 에만 집중하도록 장르의 관습을 슬쩍 흔든다. 용감하게도, 범인의 정체만 일찌감치 밝힌 게 아니라 오로라공주로 치환된 6살짜리 딸이 모종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배경까지 초반부터 암시하고 나선다. 이 자신감은 다섯 번째 살인 이후 밀도를 높이는 스릴러 특유의 장치에 많이 기대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진화’라고 이름붙인 가장 중요한 이유를 그곳까지 가서 찾을 필요가 없다.
<오로라공주>의 어미가 사냥한 이들의 죄는 싸가지 없음이다. <어미>처럼 명백히 인간백정 같은 짓을 한 이들이 있다. 그들이 오로라공주 사건의 실제 주역이다. 하나 어미는 이웃에게 싸가지 없게 무관심했던 이들까지, 더 많은 그들을 망설임 없이 징벌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명쾌히 이해하지 못하고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싸가지가 없는 죗값을 피로 치러야 한다는 극렬한 처방이 한국영화에 존재했던가. 직접 주먹을 날리거나 성기를 밀어넣거나 하지 않아도 이기적인 너는 징벌당해야 한다, 그게 이 시대의 윤리학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역설적이게도, 결정적으로 주춤거리는 대목 또한 여기다.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싸가지 없게 만들었다. 죽어도 싸다는 동의를 만장일치로 얻고 싶었겠지만 덕분에 중요 조연들 대부분이 기계적인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생명력이 온전하지 못하니 어미의 과감한 윤리학이 결과적으로 미약해지고 만다.
재밌는 캐릭터는 강력반 오 형사(문성근)와 변 반장(최종원)이다. 오 형사는 출동하는 차 안에 십자가를 걸어놓고 경찰서 책상 위엔 성경책을 두고 기도와 아멘을 일삼아 읊조린다. 피살 현장에 도착하면 기도부터 한다. 형사에서 목사로 변신하려는 그는 종교적 구원과 용서를 갈구하는 상징물이다. 반면 변 반장은 말끝마다 ‘과학’을 부르짖는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좁혀가라고 부하들을 채근하는 그는 ‘과학수사’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 이 종교와 과학의 이항대립은 가짜다. 오 형사는 “치사해서”란 이유로 목사가 되겠다는 미래를 때려치우고, 변 반장은 수사를 진전시키는 과학적 결과물을 하나도 내놓지 못하고 늘 끌려다니기 바쁘다. 어미를 소외시키거나 포위해들어갔던 (남자의) 종교와 과학은 우스꽝스런 가짜였다.
또 다른 진화라 부를 수도 있을, 작은 변화 하나. 부재하진 않으나 부재에 맞먹는 비겁함을 보였던 아버지가 마침내 회개하고 어미와 손잡는 광경이다. 반성하는 아버지(남자), 좀더 정확히 말하면 치사함을 떨쳐낸 아버지는 어미의 괜찮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이 비로소 열렸다. 연민어린 동정이 먼저이긴 했다. 오로라공주가 늘 불렀던 노래에는 슬픈 아버지가 등장한다. 오로라공주는 <은하철도 999>의 마쓰모토 레이지가 삼장법사를 대체해 넣은, 애니메이션 <별나라 손오공>의 주인공이다. 요는 오로라공주가 삼장법사처럼 마냥 자비를 베풀지는 않는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