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은 없다. 모든 사랑이 영원을 약속하면서 시작되지만, 그것이 끝없이 이어질 수는 없다. 불미스런 일로 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국 나이가 들어 둘 중 하나가 죽음을 맞이할 때가 되면 그 사랑은 더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니, 감정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관계로서의 사랑은 결국 항상 이별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새드무비>는 네 커플을 통해 이별을 향해 가는 사랑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첫째 커플은 소방관 진우(정우성)와 수화통역사 수정(임수정)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진우가 수정의 동생 수은(신민아)을 화재 사고의 불길에서 구해주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수정은 진우가 화재를 진압하다 큰 사고를 당하지나 않을까 항상 마음을 졸이며 생활해야 하는 신세다. 놀이공원에서 백설공주 탈을 뒤집어쓰고 관람객을 즐겁게 해주는 수은의 상대는 같은 놀이공원의 아르바이트 초상화가 상규(이기우)다. 청각장애인인데다 그날의 사고로 얼굴에 화상까지 입은 수은은 어딘가 덜떨어진 듯한 귀여운 남자 상규에게 호감을 느낀다. 탈을 쓴 상태에서 그는 상규를 집적거리지만, 맨얼굴로는 만날 자신이 없다. 그리고 하석(차태현)과 숙현(손태영)이 있다. 백수 하석은 권투선수의 스파링 파트너로 얻어맞아가며 데이트 비용을 조달하지만, 대형 할인마트의 파트타임 직원 숙현은 이 가난한 연인과의 관계를 끝내려 한다. 숙현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던 하석은 연인과 헤어지려는 사람의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대신 전달해주는 ‘이별 대행업’을 시작한다. 마지막 커플은 연인이 아니라 엄마와 아이다. 직장일에 열심인 커리어우먼 주영(염정아)은 갈수록 삐딱해지는 아들 휘찬(여진구)이 야속하다. 그러나 휘찬 또한 밤마다 늦게, 그것도 술에 취한 채로 들어오는 엄마에 대한 불만이 크다. 교통사고를 낸 주영은 병상에 눕게 되고, 휘찬은 그런 엄마가 “늦게까지 일도 안 하고 술도 안 마시고 내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어서 좋”다.
이 네 커플은 서로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진우와 수정이 쇼핑할 때 숙현이 카운터에서 계산을 한다거나, 진우가 부상당했다고 생각한 수정이 병원을 찾았을 때 휘찬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본다든가, 밤늦은 공원에서 하석과 휘찬이 만나는 정도다(하석과 휘찬의 에피소드는 또 한번 등장하지만 그건 스포일러다). <새드무비>는 네 커플이 오묘하게 얽히는 앙상블보다는 날씨를 통해 이들 사이를 관통하는 등압선을 만들어낸다. 여덟명의 캐릭터를 빠르게 보여주는 영화의 초반부, 맑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이 여우비 속에서 그들의 심상이 드러나고 영화의 결말이 암시된다. 화재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에서 항상 비를 기다리는 수정은 이 비를 반기고, 수은은 빗물 위에 떨어진 자신의 초상화를 발견하며, 휘찬은 늦게 마중나온 엄마에게 투정을 부린다. 권투 링 위에서 무자비하게 얻어맞던 하석이 비를 바라보고 있을 때 가슴 한구석은 서늘해진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장마가 시작되면서 이들 네 커플의 심상은 다시 한번 어두워진 하늘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새드무비>를 지배하는 것은 플롯이나 캐릭터보다는 이별의 전조와 징후들이다. 진우가 수정에게 프로포즈를 준비하고, 하석이 숙현을 감동시키기 위해 이별대행업을 벌이며, 수은이 상규의 초상화 모델이 될지를 고민하고, 휘찬이 주영의 일기장을 통해 엄마의 진심을 알아가는, 이 모든 사랑의 심화 과정은 결국 급작스레 다가오는 이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기도 하다. <새드무비>의 부제를 ‘사랑과 이별에 관한 네 가지 연구’라 붙인다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화재 사건 뉴스만 봐도 마음에 칼자국을 입고 마는 수정이나 “늘 곁에 있을 수 있으니 엄마가 매일 아팠으면 좋겠다”는 아들의 말을 듣는 주영의 마음이 짐작가듯, 이들 네 가지 이야기는 모두 우리 언저리에 맴돌고 있는 삶의 단편들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러닝타임 내내 ‘새드무비’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언니한테 프로포즈는 했어요?’라는 수은의 수화에 “어? 남자 소개시켜줘?”라고 알아듣는 등 거듭되는 진우의 ‘사오정’스런 모습이나 실연 사실을 알리러 다니는 하석의 에피소드들은 쏠쏠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특히, 수은이 백설공주 탈을 쓴 채 상규를 가지고 노는 모습은 영화에 청량한 햇살을 뿌린다.
하지만, <새드무비>는 지나치게 안전한 길을 선택한 듯 보이기도 한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예측가능한 수로를 따라 흘러간다. 그나마 네개의 에피소드가 서로 연관을 가지지도 못해 각 커플이 뒤얽혀 발산되는 시너지 효과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새드무비>는 네개의 정통 멜로 에피소드가 평이하게 결합된 옴니버스영화 같은 느낌마저 준다. 그런 데서 비롯된 빈 자리는 화면을 꽉 채우는 배우들의 얼굴 클로즈업과 핸드헬드숏으로 끊임없이 흔들리는 영상으로도 메꿔지지 않는다. 오히려 강박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미지들은 보는 이의 감정을 너무 앞지르기 일쑤다. 대사 또한 감정이 고조될수록 더욱 직접적이고, 좀더 비현실적 느낌이 된다. 자잘한 에피소드가 축적시켜놓은 감정이 후반부에 가서 폭발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드무비>에는 눈길을 뗄 수 없게 하는 한 가지 요소가 있다. 당대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젊은 배우들이 한꺼번에 등장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배우들이 한 스크린 안에서 숨쉬고 있는 모습은, 아역 여진구를 제외하고 모두 싸이더스HQ 소속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이 영화의 제작사가 싸이더스HQ와 같은 뿌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화려한 캐스팅은 불가능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