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드라마 칼럼
[드라마칼럼] 드라마 <하늘이시여>를 싫어하는 결정적인 이유

때리고 부수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드라마 <하늘이시여>

두 달 전 일이다. 집 앞 계단을 내려가는데, 한 여자 아이의 다급한 비명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소리 나는 쪽을 보니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소년이 동생인 듯한 여자 아이를 들쳐 업고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동생을 보쌈 하듯 들쳐 멘 소년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고, 반대로 소녀의 얼굴은 척 보기에도 공포에 질려 있었다. 물론 장난으로 시작한 일일 것이다. 동생을 재미있게 해주고 싶어하는 오빠의 마음도 알 것 같다. 그러나 동생의 비명과 발버둥을 무시하는 수준이라면, 그것은 이미 장난이 아닌 ‘힘 자랑’일 뿐이다.

‘장난이었어.’ ‘너를 위해서 그런 거야.’ ‘다 웃자고 한 일인데 괜히 그러는구나’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너를 위한 일’, ‘웃자고 하는 일’은 의외로 위험한 발상에서 비롯할 때가 많다. 상대를 위한 일인가는 그의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 이상 잘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상대를 잘 안다는 섣부른 자만심을 ‘선한 의지’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짚어볼 일이다.

그 폭력적인 장면이 웃음을 유발하는 코드라니..

SBS 드라마 <하늘이시여>는 요즘 무리한 설정으로 비난을 사고 있다. 숨겨진 딸을 며느리로 맞이하려는 어머니의 이야기라니, 나 역시 그 의견에 공감한다. 그러나 내가 이 드라마를 싫어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드라마 중간 중간에 배치된 코믹 요소들 때문인데, 그것이 너무나 폭력적인 데다가 ‘상대를 위한 일’이라는 영 내키지 않는 명분까지 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악을 금치 못했던 장면은 할머니가 손녀에게 뱀술을 먹이는 장면이었다. 힘 센 오빠가 뒤에서 그녀를 붙들고, 한 아주머니는 그녀의 입을 억지로 벌릴 용도인 숟가락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몸에 좋은 거라면서 뱀술을 들이댄다. 손녀의 나이는 적게 보아도 스물 셋.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나이임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공교롭게도 뱀술의 색깔은 갈색, 게다가 억지로 떠먹이기까지 하니 사약 받는 장희빈이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본인이 싫으면 몸에 좋은 ‘뱀술’도 ‘사약’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모두들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에, 오빠는 한 술 더 떠 누구는 없어서 못 먹는단다. 어이 없게도 이 장면은 드라마의 재미를 살리는, 웃음을 유발하는 코드로 쓰인 듯 했다.

한강이 쓴 <몽고반점>이라는 단편에도 억지로 음식을 먹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하늘이시여>와는 전혀 다르게 묘사되는데,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 2년 전 여름의 초입, 처제는 그의 집에서 손목을 그었다. 그의 가족이 평수를 넓혀 이사한 뒤 처가 쪽 식구들이 모두 모여 점심을 먹던 자리였다. 처가 식구들은 고기를 유난히 즐기는 편인데, 처제가 어느 날부턴가 채식을 한다면서 고기를 먹지 않은 것이 장인을 비롯한 모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모양이었다. 처제가 딱할 만큼 말라 있었으므로, 그들이 그녀를 심하게 나무란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베트남 참전 용사 출신의 장인이 반항하는 처제의 뺨을 때리고, 우격다짐으로 입 안에 고깃덩어리를 밀어 넣은 것은 아무리 돌아봐도 부조리극의 한 장면처럼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몽고반점>의 아버지와 <하늘이시여>의 할머니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한 쪽은 폭력적으로, 다른 한 쪽은 온화하게 그려지는 시각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몽고반점>의 시각이 일반적이라고 본다. 누구라도 입 속에 음식이 밀어 넣어지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억지로 입을 벌려서 뱀술을 먹이는 일이나, 뺨을 때리면서까지 고기를 먹이는 일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폭력이다.

때리고 부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별 일 아닌 것처럼 묘사되는 장면들 속에 숨겨진 폭력이 때로는 더 무섭고 소름 끼친다. 예를 들어 <겨울연가>의 박용하, <여름향기>의 류진, <천국의 계단>의 신현준이 연기했던 남자들은 어땠나? 너무나 애절한 사랑을 보여준 그들은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 여주인공을 겁탈하려고 했다는 이력을 갖고 있다. 어찌나 슬프게 묘사되었는지, 그 순간 겁탈하려 했는지, 그저 터프한 포옹을 하려 했을 뿐인데 여자가 오해한 것인지 헷갈린다.

폭력은 폭력으로 그리자. 괜히 ‘너를 위한 일’, ‘너를 사랑해서 그랬어’ 따위의 미사여구를 달아 헷갈리게 하지 말자. 어린 조카와 함께 TV를 시청하더라도, 차라리 드러내놓고 폭력적인 장면들을 볼 때가 마음이 편하다. 총 쏘고 싸움질하는 장면들이 보기에 더 편하다니, 이건 또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