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퀴어 멜로물인 이 영화는 특히 남성 동성애에 집중하면서, 보길도라는 공간과 동백꽃이라는 소재로 단단하게 묶여 있어, 구성상의 통일성 결여라든가 주제끼리의 충돌과 같은, 옴니버스 구성이 빠지기 쉬운 함정들을 잘 피해나간다. 게다가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안 되었던지 택시 운전사 진욱이 각 작품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영화를 여는 첫 번째 작품은 최진성 감독의 <김추자>이다.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만나 사랑했던 두 남자가 원치 않게 헤어져 9년 만에 재회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김추자는 왕근의 딸 이름이기도 하고, 그의 연인이었던 춘하가 늘 입에 달고 다녔던 노래들을 부른 가수이기도 하다. 왕근은 연인에 대한 기억을 딸 이름에 아로새김으로써 여전히 옛사랑과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영화는 소문준 감독의 <떠다니는, 섬>인데, 여기서 ‘섬’은 보길도를 지칭하는 지리적 이름인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다’의 그 섬이기도 하다. 둘만 있으면 행복하리라는 생각으로 섬으로 찾아들었던 진욱과 연후. 하지만 2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진욱은 마음이 공허해지는 것을 느끼며 스스로 섬이 되어간다. 그리고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한다. 마지막 작품인 이송희일 감독의 <동백아가씨>는 게이였던 남편의 진실을 그의 사후에야 알게 된 여성의 눈을 통해 동성애에 접근한다. 남편의 옛애인 현수를 찾아 보길도에 들어 온 그녀는 행복한 현수 커플을 보면서 증오와 화해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나간다.
1500만원이라는 믿어지지 않는 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동성애에 대한 낯설지만 익숙한 시선을 담고 있다. 동성애를 단순히 센세이셔널한 소재로 소비하고 있지 않은 작품들이라는 것이 신선하다면 신선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는 새로움을 찾기 힘들다. 세 단편은 순서대로 동성애자의 내면부터 시작해서 그 둘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 밖의 인물까지 포착해가는데 전체적인 연출력에서도 뒤쪽으로 갈수록 안정적인 양상을 보인다. 거친 사운드와 다소 난감한 ‘가요비디오’ 그리고 서툰 핸드헬드가 감상에 방해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 안에서 그들만의 섬에 갇힌 그들을 섬 밖으로 나오게 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