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카이틀, 로버트 드 니로, 실베스터 스탤론, 레이 리오타라는 화려한 배역진은 이 영화를 조금은 궁금하게 만들다. 어두운 뒷골목을 누비던, 아니 영웅, 반영웅을 자처하던 스타들이 경찰이 되어 모두 한 마을에 산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해비>라는 저예산 영화로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탁월하게 묘사해 내는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캅 랜드>에서도 주요한 세 인물을 각각 다른 위치에 배치시킨다.
스탤론이 연기한 프레디는 경찰이 되고 싶었지만 사고로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바람에 그토록 갈망하던 뉴욕시경 시험에 낙방한 인물. 레이의 배려로 캅 랜드를 돌보는 보안관 일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쪽 귀를 희생하면서 살려낸 여자는 다른 경찰관의 아내가 되어 있는 상태. 그에게 경찰은 인생의 목표인 동시에 거부의 대상이다. 캅 랜드를 지배하고 있는 레이 역의 하비 카이틀은 자신의 조카를 숨기기는 했지만 마을의 신변을 보장하기 위해 조카를 물 속에 처박는 전형적인 교활한 인물. 로버트 드 니로는 레이의 뒤를 추적하고, 보안관 프레디를 부추기어 진실을 찾는 내사관의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두 인물에 비해 다소 성격 묘사가 약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들을 데리고 맨골드 감독은 “나는 단순한 도덕적 게임을 만들고 싶다”라는 자신의 영화관을 피력해 간다. 문제는 이 마을의 거대한 배후가 있다는 것이고, ‘경찰들의 땅’은 마피아가 세웠다는 아이러니를 발견하는 것이다. 흔히 이런 장르의 영화를 슬라이 무비(Sly Movie)라고 일컫는데, 슬라이는 뒤에서 몰래 교활한 음모를 꾸민다는 뜻이다. 비록 새로운 슬라이 무비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를 엮어내는 신인감독의 재능은 빛난다. 느릿하면서도 장면마다 함축적으로 주인공들의 심리를 드러내는 스타일은 이미 자신만의 화법을 보여준다. 영화 시작처럼 화려한 도시를 빠져나와 1970년대 미국의 변방으로 들어가보면, 고요하지만 그곳 역시 도시 못지 않게 이미 썩을 대로 썩은 황무지가 돼 있었던 것이다.
황무지 위에서 한 남자는 영웅이 되어(그는 10대에 이미 물에 빠진 여인을 구하고 한쪽 귀의 기능을 상실한 영웅이었다), 그곳을 지배하는 레이에게 총구를 겨눈다. 마지막 총격전이 슬로모션으로, 우리에게 천천히 그러면서도 강렬하게 각인되는 것은 불을 뿜는 총구에서 좌절한 자의 욕망이 번뜩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스탤론은 그런 점에서 여전히 할리우드의 미국신화에 의해 소비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 속의 어눌함은 <록키>보다 세련되고 인상적이다. 특히 이 배역을 따내기 위해 40파운드나 체중을 늘렸다는 후문은 그의 변신에 기대감을 불어넣는다. 오죽했으면, 타임지는 “지금, 드디어, 그는 배우가 되었다”고 평가할 정도였을까.
그러나 모호한 분위기를 강조한 만큼 관객의 가슴을 후련케 하는 명쾌함과 카타르시스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다소 긴 호흡은 지루하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에 보아온 할리우드 ‘캅’ 영화들이 코미디 일색이거나 엉뚱한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것에 반해 <캅 랜드>라는 제목은 촌스럽지만 그들만의 세계를 바라보는 진지함이 깃들어 있다. 개봉당시 박스오피스 1위에 2주간 올랐던 작품.
할리우드 주류를 거스르다
감독 제임스 맨골드
리브 타일러를 무모해보이는 여종업원으로 등장시킨 저예산 장편 극영화 <해비>(1995)로 미국 독립 영화계와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제임슨 맨골드 감독은 웨스트포인트 근처의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서 자랐다. 그가 사는 마을 근처에는 경관과 소방관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들이 지닌 자긍심과 변방에서 살아야 하는 이중성 때문에 마을 분위기는 기묘했다 한다. 맨골드는 이를 보며 오래 전부터 경찰을 소재로 한 영화를 꿈꿔왔다고 고백했다. <캅 랜드>의 시나리오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경우처럼 오랜 시간 경찰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많은 인터뷰를 거쳐 완성됐다.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올리버와 친구들>(1988)을 제외하고는 고작 두편의 장편 극영화를 만들기는 했지만 그에게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다. 그것은 많은 평자들의 지적처럼 <해비>와 <캅 랜드>가 일정한 스타일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캐릭터 중심의 전개방식이 그렇고, 인물들의 이면을 드러내는 성격 묘사가 탁월한 점도 닮았다. 하긴, 두 영화 다 직접 각본과 연출을 도맡았으니 닮을 만도 하다. 특이한 것은 그의 영화가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다. 어여쁜 여종업원이 새로 등장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해비>), 경관 하나가 자살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살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캅 랜드>). 단순하지만 이 질문은 미국을 바라보는 도덕적 질문이다.
그러므로 주인공들에게 선과 악의 구별은 불필요하다. 다분히 할리우드 주류 영화의 특징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는 것인데, 이러한 모호한 캐릭터 설정의 원인을 감독은 외로움에 병든 미국인들의 소외된 모습을 통해 그려낸다. <캅 랜드>의 프레디나 <해비>의 주인공들로부터 이것을 확인하기란 손쉬운 일이다. 최근에 그가 한 일은 <걸, 인터럽트>(1999)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일. 시나리오를 쓸 줄 아는 재능을 겸비한 아직은 할 일이 많은 30대 초반의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