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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쓰기 10계명 [4] - 신예작가들의 연습 노하우

충무로의 신예작가들이 밝히는 시나리오 연습 노하우

이야기의 뼈대 만들기를 먼저 습득하라

<쉬리2> 쓰고 있는 정재호

이 사람은 여느 신예작가와 다르다. SJ(스토리 앤드 조이 프로덕션)를 이끄는 대표이사 직함은 신예와 어울리지 않는다. 여섯 작가를 거느리고 CJ와 LJ와 협력관계를 맺어 굵직한 8개의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으며, 강제규 감독과 <쉬리 2>를 함께 쓰고 있고, 무엇보다 10월이면 촬영에 들어갈 <조용한 세상>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습작기를 거치고 이제 세상에 처음 시나리오를 냈다는 점에서 신예작가임은 분명하다. 앞에 ‘주목할 만한’이라는 수사를 보태야 하겠지만.

좀더 정확한 수사는 PD형 작가가 될 것이다. 현장에서 경험을 많이 쌓았고, 산업으로서의 영화에 대해 누구보다 예민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경영학, 미국에서 2년 동안 방송, 다시 국내에 돌아와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다는 것도 여느 작가와는 다른 이력이다. 삼희기획이라는 광고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현진영화사와 맥이 닿아 기획실장으로 들어갔다. 하다보니 영화를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감독을 하고 싶다는 꿈이 먼저 있었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회의와 프리 프로덕션에 참여하면서 “하다보니 모든 것을 주도하게 되고, 나아가 답답해서 직접 써보는” 현장 체험적 글쓰기가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영화에 입문하기 전부터 자신을 위해 시나리오를 꾸준히 썼다. 나중에 다시 손볼 시나리오도 다섯 작품이나 된다. 직업상 읽어야 하기도 했지만, 방대한 기존 시나리오들을 읽으며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영화를 보면서 매장면을 정지시킨 뒤 시나리오로 옮겨보는 작업이 그만의 노하우다. “물건이 뭔지 알려면 해체해보는 게 가장 빠르다.” 그리고 거기에서 뼈대를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100% 새롭게 만드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체력이 안 되면 글을 쓸 수 없다고 믿는 아침형 작가이며, 꿈은 <매트릭스>처럼 상업적이면서도 철학을 지닌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쓰기 시작하면 무조건 끝까지 간다

<양아치 어조>의 박수진

마태복음의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는 구절이 아무 맥락도 없이 떠오른다. 박수진씨는 이십대 중반에 대학에 들어갔지만 이십대 후반에 삼성문학상 희곡부문에 당선된 뒤 일찌감치 전업작가의 길을 걸었다. 절친한 조범구 감독이 옆에 있어 첫 시나리오부터 영화사와 계약을 맺었으니 습작 시나리오라 할 것도 없다. 영화과 지망생이었으나 줄줄이 낙방하고 우연히 오태석의 이름 석자를 듣고 극작과로 지망을 바꿔 대학에 갔다.

어려서부터 전업작가였으니 그냥 써보게 되더라는 게 첫 시나리오 <보이스 삐>를 쓴 소감이다. 첫 작품에 이어 쓴 것은 <양아치 어조> <뚝방전설>이다. 아무래도 시나리오는 희곡과 다르니 자기만의 수업시대를 가졌다.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 시나리오를 구해 헤질 정도로 보고, 그 다음 영화를 보고 비교했다.

그러나 첫 시나리오를 들고 가서는 PD에게 장점보다 단점을 많이 들었고,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얼마든지 고칠 수 있고,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쓸 때마다 가장 고민이 되는 것은 ‘내가 쓴 이야기가 영화가 될 수 있을까’이다. 양념과 ‘뻥’을 할 수 있으며, 서브텍스트로 치장할 수 있는 ‘꺼리’인가를 늘 고민한다. 엽기적이고 코믹하게 쓰면 영화화가 더 쉬울 수 있지만 그렇게 타협해야 하는지도 번번이 고민한다. 그는 자료를 수집한 한 뒤 꼼꼼하게 쓰는 유형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끝까지 내달려 쓰는 유형이다. “심하면 끝까지 써버리기도 하는데 그럼 나중에 고칠 때 힘들어진다”고 한다. 계약을 맺고 목돈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신용카드로 생활비를 메워야 하며, 다섯살 난 딸이 안 놀아준다고 신경질을 부리는 것도 고민이다. 시나리오 지망생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무조건 써서 완성해보라고 당부했다. 단편이라도 일단 써봐야 자기 스타일을 알 수 있으며, 하나를 완성할 정도의 노력파라면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건 식은 죽 먹기가 아닐까 하는 게 그의 격려다. 물론 ‘소림사 주방장의 비법’ 따위는 따로 없지만 말이다.

로버트 맥기의 가르침 그대로

<말아톤>의 윤진호

윤진호 작가는 <말아톤>을 쓰기 전에 시나리오 수업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제대하고 한겨레 문화센터 강좌를 듣기는 했지만 “직장인이 대부분이어서 반쯤은 졸고 있었고 무언가 써보라고 하지도 않기에” 두달 만에 그만두었다.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그가 스승 대신 택한 교재는 다른 시나리오, 그리고 몇년이 지난 뒤에는 로버트 맥기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를 읽었다. 다세대 주택 몇백채가 들어선 시화에서, 스스로 감금된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말아톤>을 쓴 그는, “맥기의 성실한 문하생”이 되었다. “어찌 보면 맥기의 책도 오랜 세월 강의하며 쌓아온 구라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나 같은 초보자가 상업적인 틀이 필요한 시나리오를 쓸 때는 매우 유용했다.” 장편 시나리오는 습작 하나를 썼을 뿐인 그는 맥기가 가르치는 대로 시나리오를 그래프에 맞춰보기까지 했다.

초보라고는 해도 그가 책만 보고 5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시나리오를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윤진호 작가가 습작으로 쓴 시나리오는 자신의 기억을 투영한 80년대 배경의 성장영화. 시나리오는 다른 장르보다 형식이 중요한데, 소재마저 낯설다면, 제대로 쓰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는 것을 써라. 이 지론은 <말아톤>과 그가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와도 연결된다.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정윤철 감독과 뜻이 맞아 <말아톤>을 같이 쓰면서 두 사람은 실화의 주인공 형진군과 그 가족, 특수학교 학생, 그들의 가족을 두루 만났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관찰이 최선이었던 것이다. 작품과 거리를 두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성급하게 2, 3고를 내놓는 대신 차분하게 결과를 되돌아보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대종상 각본상을 공동수상한 윤진호 작가는 지금 <일요스페셜>에서 방영됐던 어느 입양아 이야기를 쓰고 있다. 실화를 고집한 건 아니지만, 여러 아이템 중에서 안전한 소재가 선택된 것 같다고. 공동작가에서 단독작가를 거쳐, 그의 마지막 꿈은 감독이다.

우선 무엇이든 써보라

<봄날은 간다> 각색한 이숙연

조성우 음악감독이 <봄날은 간다>의 각색을 해보라고 부추겼을 때, 이숙연(36) 작가는 “시나리오 습작 한번 해본 적 없다”며 발을 뺐다. 방송사를 잘 아는 작가를 구했으면 한다는 허진호 감독의 말에 자신이 출연하는 음악 프로그램의 작가를 추천했던 조성우 음악감독은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숙연 작가는 우연히 찾아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허진호 감독이 ‘소리와 봄에 관한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들었고, 지문 쓰는 법도 모르던 초짜 시나리오 작가는 보름 만에 뚝딱 자신의 첫 번째 습작을 토해냈다. 다행히 허진호 감독은 몇달 후 다시 연락을 해왔고, 조성우 음악감독을 통해 조심스레 건넨 그의 습작은 “대사나 감성이 좋다. 처음 쓴 거 맞냐?”는 후한 평가를 얻었다. 얼마 후 그는 류장하, 신준호 등 당시 허진호 감독의 연출부에 합류했고, “너무나 위대한 영화”는 그의 곁에 “저절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봄날은 간다> 이후 이숙연 작가에게는 ‘멜로 전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박흥식 감독의 <햇빛 쏟아지던 날들>과 허진호 감독의 <외출>을 다듬은 그는 얼마전 “사랑이 시작될 무렵 영화가 끝난다는 설정이 맘에 들었던” 좋은영화의 <오늘> 시나리오 작업을 끝내고 현재는 블루스톰에서 ‘어떤 남자와 어떤 여자의 러브스토리’를 매만지고 있는 중이다. 본인은 “첫 작품의 후광을 입었다”고 하지만 밀려드는 러브콜이 우연의 연속만은 아니다. 불문학을 전공한 그는 유년시절부터 “매일 글 한줄을 써야 마음이 풀렸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를 둔 엄마라서 합숙은 꿈도 못 꾸지만” 여전히 그는 방송사 작업실에서 다른 작가들 몰래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매일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게 도움이 된다”는 그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 “덜컥 학원 등록부터 하진 말라”고 충고한다. “뭐가 부족한지 알아야 배워도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단 쓰기로 맘먹었으면 끙끙대지 말고 자기 안에 있는 것만 뱉어서 훌훌훌 쓰라”는 것. “초고는 한달을 넘기면 곤란하다. 어차피 초고에서 반은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라”고 경험을 전한다. 그처럼 자신만의 워밍업 방식을 개발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이숙연 작가의 경우, <봄날은 간다>은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중 애잔하면서도 낙천적인 <20년전>을, <오늘>은 길버트 오 설리번의 <얼론 어게인>을,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러브스토리는 최신 대중가요를 틀어두고 자유롭게 연상을 이어갔다고. “기회가 되면 멜로는 많이 써보고 싶다”는 그는 지금까지는 감성에 호소해서 글을 불러냈다면, “아귀가 딱 들어맞는 탄탄하고 치밀한 구성의 똑똑한 영화”도 언젠가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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